“어떻게 불교학생회에 오게 됐나요?” 개강법회 날, 둘러앉은 총불이들의 면면. “구글도 페북도 직원들에게 명상 가르치는데, 학교 다닐 때 명상 배워두면 도움 될 것 같아서요.” “교양과목으로 불교 들었는데 괜찮더라구요. 인생철학으로 배워 두려구요.” “역사에 관심 많아서요.” “템플스테이 가서 쉬고 싶어서요.” “앞에 지도법사 스님이 하버드 출신이셔서 유학 준비하는데 도움 많이 받았어요.”

각자의 현재 욕구와 삶의 방향성에 대한 똑 부러진 이해와 행동력을 갖춘 모범답안들을 내놓는다. “음, 뭔가를 얻으려 왔군요.” 지성은 차고 넘치는데 감성과 영성은 메마른 듯한, 감동을 주기엔 2% 아쉬운 모범답안들.
 

서울대 총불교학생회원들과 함께 한 지도법사 운성스님.
서울대 총불교학생회원들과 함께 한 지도법사 운성스님.

그때, 쑥스럽게 이야기를 꺼낸 법우들이 있었으니…. “불교는 제게 부모님의 종교일 뿐이었어요. 방학 때 친구들이랑 여행 갔는데, 버스 안에서 우연히 한 스님을 마주쳤어요. 근데 언제 다시 볼지도 모를 저한테 절 명함도, 불경도 아닌, 밥 잘 챙겨 먹고 다니라고 덥석 10만원을 쥐어주시는 거예요. 제가 만난 종교인들은 죄다 자기 종교 믿으라고 끌어당기는 말만 했는데. ‘아! 불교는 이런 게 가능하네? 뭔가 스케일이 큰 종교구나!’ 저도 살면서 스님들처럼 그렇게 마음 쓰며 살고 싶어서요.”

“동아리 소개 부스에서 우연히 불교학생회 사람들이 달걀 구워 먹으며 웃고 있는 걸 봤는데, ‘아, 나도 저 사람들 속에 있고 싶다!’ 싶더라구요.” “그냥, 설명할 순 없지만, 이 캠퍼스 안에서 스님의 얼굴을 뵙는 것만으로도 회복되는 게 있는 것 같아서 왔어요.”

“음, 지식을 넘어 지혜의 눈이 상당히 밝은 법우들이 모였네요? 앞으로 여러분이 쏟아낼 살아있는 법음들이 기대되네요. 모두 환영합니다!” 드디어 총불법당 감성지수와 영성지수 충전 완료! “그런 의미에서, 오늘 뒤풀이는 스님이 10만원 쏜다!” (총불이 대동단결-기립박수 짝짝짝) 

대학생 전법의 현장에 몸담은 지 적지 않은 세월이 지나고 있지만, 여전히 들려오는 말은 “그걸 꼭 주지 스님도 아닌 스님이 해야 해요?”이다. 영 틀린 말은 아닌 것이, 대학생 전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주지(give)!’다. 책 사 주지, 장학금 주지, 법문해 주지, 상담해 주지, 뒤풀이 밥 간식 지원해주지, 깜짝 선물도 주지! 분초를 아껴가며 사는 필자의 삶이지만, 가장 소중히 여기는 그 ‘시간’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정성 없이는 지속해 낼 수 없는 길.

학기 초 대학 캠퍼스들엔 이웃종교 동아리들의 화려한 유혹전이 펼쳐지는데, 무료로 심리검사에 진로상담, 취업 알선, 오감을 자극하는 신나는 활동들까지 겸비해, 한번 물면 안 놓치는 공격적인 전도를 한다. 나도 상담심리 전공자니까 그분들 같은 유혹전이라도 펼쳐봐야 하나도 싶지만, 불교학생회는 그저 묵묵하고 자연스러운 정법(正法)에 의지할 뿐이다.대단히 전략적인 기획력이나 교단의 든든한 물질적 지원과 혜택은 많지 않지만, 붓다꽃씨가 감동하여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는 길에 필요한 건, 생각보단 거창한 게 아닐지 모른다.

지금 저 불교학생회 문을 스스로 열고 들어온 이 한사람이 곧 온 우주임을 알아보는 밝은 시력과, 그가 오늘 하루 남몰래 흘렸을 눈물과 아픔의 내용들을 깊이 존중하여 온 존재를 기울여 들어줄 수 있는 청력(聽力), 실컷 울고 난 법우에게 차 한 잔 우려주며 그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봐 주는 일, 그렇게 가랑비에 옷 젖듯 육바라밀이 법우들의 삶 속으로 스며들길 기다려 주는 일.

대학생 전법은 숱한 선언들의 연속이 아니라, 지금 여기 ‘한 사람의 실천행’이 걸어가는 엄중한 발자욱이니…. 하여 먹물옷 휘날리며 캠퍼스를 가로지르는 ‘한 스님의 존재의 힘’은 지대한 것! 매서운 겨울을 지나 붓다꽃씨 향기롭게 피어난 봄날의 캠퍼스, 올해도 개나리 흐드러지거든 총불이들에게 ‘걸으면서 쉬는 법(걷기명상)’을 알려줘야겠다. 이렇게 또 걷는다.

[불교신문3569호/2020년3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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