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름없는 영웅을 만나다
서울 본동종합사회복지관 복지사들


들어가자마자 체온측정 손세정
휴관이라 휴무? NO…더 바빠
도시락 싸고 배달에 방역까지
“은혜 어찌 갚을까…자식보다 났다”

4월22일 동네잔치 열리길 고대
“그날, 문 활짝 열고 맞이할 것”

코로나19가 세계를 덮어버린 지금. 팍팍한 일상 속에서도 훈훈한 감동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름 없는 영웅들 혹은 숨은 주역들이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코로나맵’을 만들어 무료배포한 대학생, 사관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구 현지로 떠난 간호장교들, 고생하는 의료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자 손 편지와 선물을 전하는 많은 시민들까지. 이들의 노고는 우리나라를 선진국 중 선진국으로 해외언론이 대서특필하게 만들었고, 사재기 안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소개되면서 세계인으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이름 없는 영웅들은 또 있다. 바로 사회복지 최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복지사들이다. 그들의 숨은 이야기를 전한다. 복지관의 철저한 감독과 지도아래 안전하게 취재가 진행됐음을 밝힌다. 

서울 본동종합사회복지관은 2월부터 휴관하고 있지만 복지사들은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3월12일 한 주민의 집을 방역하고 있는 본동복지관 복지사.
서울 본동종합사회복지관은 2월부터 휴관하고 있지만 복지사들은 더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3월12일 한 주민의 집을 방역하고 있는 본동복지관 복지사.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를 ‘팬데믹(세계적인 대유행)’으로 공식 선언한 3월12일. 서울 본동종합사회복지관을 찾은 날이다. 본동사회복지관은 사회복지법인 혜명복지원이 지자체로부터 위탁운영하고 있는 불교계 복지시설이다.

지하철 9호선 노들역이 가깝게 있지만, 여기서부터 10분간 계속 오르막길을 올라 동네 꼭대기에 이르러서야 만날 수 있는 복지관이다. 특히 이날은 평소와 다르게 마스크를 착용하고 오르는 터에 숨이 턱까지 닿고 답답해 숨을 고르느라 중간에 몇 번을 쉬고서야 복지관 입구에 도달할 수 있었다.

본동복지관이 시설을 휴관한 것은 2월14일. 벌써 한 달 남짓이 됐다. 오가는 사람이 없이 썰렁한 복지관에 들어서자마자 마주치는 건 체온측정기와 손세정제, 그리고 방문객 명부였다. 출입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일일이 체온을 재서 표기하고, 손제정제를 사용하도록 하며, 누가 언제 왔는지까지 작성을 해야 비로소 복지관에 발을 들일 수 있었다. 철저한 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시설 내부에서도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눈만 보이는 얼굴들을 향해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곧장 찾은 곳은 지하에 있는 식당. ‘반야경로식당’은 평소 어르신들에게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곳이었지만, 지금은 일주일에 두 차례, 도시락과 간편식 등을 분류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지역 저소득층 세대에게 전해줄 도시락으로 가득했다.

원래는 매일같이 도시락을 배달해왔지만, 코로나19 영향으로 일주일에 2~3회로 횟수를 줄였다. 게다가 도시락 배달은 자원봉사자나 노인일자리사업 참가자의 몫이었지만, 현재는 오롯이 복지관에서 근무하는 복지사들의 할 일이 됐다.

도시락은 자주 배달가지 못해 보관이 용이하고 유통기한이 넉넉한 간편식 위주로 꾸려지지만, 본동복지관이 반드시 지키는 원칙이 있다. 한 가지 이상 반찬은 직접 조리한 것을 챙긴다. 영양을 생각해서 취한 조치다. 이날은 숙주나물무침이 도시락 반찬에 포함됐다. 

오전10시경. 채비를 마친 복지사들이 저마다 손에 도시락을 들고 출동하는 시간이다. 먼 곳은 차량을 이용해 배달을 나가고 가까운 곳은 골목마다 돌며 복지사들이 직접 배달한다. 모두 135세대가 도시락 배달 대상지다. 배달도 중요하지만 도시락을 받는 분들의 안부와 안전 점검도 중요한 목적이다. 또 하나, 집집마다 방역작업도 빼놓을 수 없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복지사들은 도시락 배달도 직접 하며 주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점검하고 있다.
코로나19 발발 이후 복지사들은 도시락 배달도 직접 하며 주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점검하고 있다.

복지사들과 함께 따라나섰다. 좁은 골목을 따라 가면 다세대주택에 딸린 작은 문이 나오고 그 문을 통과해 담벼락을 따라 더 좁은 길을 내디디면 나오는 철문들. 그 철문 안 작은 공간들마다 도시락을 기다리는 분들이 있었다.

76세 윤○○ 할아버지는 거동이 불편한 구순 넘은 어머니와 함께 산다. “어르신, 도시락 왔어요.” “아이고, 매번 이러니…내 이 은혜를 어찌 갚을까?” 도시락을 전해준 복지사의 대답은 명쾌하다. “그저 건강하시기만 하시면 돼요.” 화장실과 방안 곳곳에 방역 작업이 시작되자 한 걸음 물러선 윤 할아버지의 뒷모습에선 고마운 마음이 묻어났다. 

두 번째 집은 유○○ 할머니 거처다. 여든넷 할머니의 방은 전기세도 아끼느라 어두컴컴했다. 마스크 살 요량으로 집밖으로 나서려 했다는 유 할머니는 “기다리다 안와서 나가려다 만났네” 반갑게 맞이했다. 그나마 바깥출입이 가능하면 다행이다.

여든다섯 김○○ 할머니는 부축을 받아야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다리가 불편하다. 복지사들을 반갑게 맞이한 김 할머니는 기자를 보자마자 할 말이 많다며 붙잡았다. “이 분들이 자식보다 났습니다. 도시락은 또 얼마나 맛있다고요. 본동복지관이 최고예요, 최고.” 복지관 자랑을 한 가득 털어놨다. 그렇게 도시락 배달은 오후12시30분 정도가 돼야 마무리된다. 

이렇듯 본동복지관의 월요일과 목요일은 오전 내내 도시락 배달 업무에 매진한다. 혹자들은 복지관이 휴관하니 복지관에서 근무하는 복지사들도 쉬는 게 아니냐고 여긴다. 하지만 직접 만나보고 찾아본 복지시설 종사자들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업무가 평소보다 더욱 많아졌다. 업무를 돕던 자원봉사자와 일자리사업 참가자들이 동참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시락 배달은 그 한 예일 뿐이다. 복지관 이용자들만 들이지 않을 뿐, 복지사들은 종전대로 출근해 맡은 업무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본동복지관 로비 벽에 걸린 TV에는 영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동네 어르신이 직접 휴대전화로 찍었다는 복지관 프로그램 장면이었다. 화면 속에는 어르신들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흥겨워하는 모습으로 채워져 있었다. “이 분들을 이곳에서 빨리 보고 싶네요. 정말 복지관을 아끼고 좋아해주셨는데.” 안타까움이 가득한 복지사의 말에는 동네주민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본동복지관이 관할하는 지역에는 다행히도 아직까지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아직까지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될 기미 없이 계속 길어지면서 복지사들도 업무와 스트레스로 지쳐가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괜찮습니다. 빨리 종식돼 하루라도 빨리 동네 분들을 스스럼없이 만났으면 하는 바람뿐입니다.” 도시락 배달과 함께 방역도 함께 진행한 김사랑 복지사의 소원은 이것이었다.

본동복지관 구성원이라면 손꼽아 기다리는 날이 있다. ‘야단법석 동네잔치 본동 한 그릇’이 그것이다. 2019년 4월부터 시작한 행사로 매월 셋째 주 수요일마다 주민들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하는, 그야말로 ‘동네잔칫날’이다. 2월과 3월은 코로나19 영향으로 복지관이 휴관함에 따라 열리지 못했다. 그래서 4월을 기다리고 있다.

최승희 본동복지관 부장은 “나도 인간인지라 바이러스에 걱정이 많다. 하지만 원래 역할에 충실하며 지역주민을 살피는 마음으로 지내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라 생각한다”며 “지금처럼만 하면 분명 잘 마무리될 것이다. 그러면 문 활짝 열고 맞이할 것이다. 그 날이 꼭 왔으면 좋겠다.”

4월22일. 야단법석 동네잔치가 열리기를 고대하는 마음으로 본동복지관 복지사들은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는 복지사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본동복지관 복지사들이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사랑의 하트를 보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는 복지사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본동복지관 복지사들이 주민들의 건강을 기원하는 사랑의 하트를 보냈다.

 

◼ 인터뷰 / 본동복지관장 법현스님

“코로나 피해를 줄이는 방법은 배려”

법현스님
법현스님

“정말 마음이 편하지 못합니다. 항간에서 복지시설이 바이러스의 숙주 같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서울 본동종합사회복지관 관장 법현스님은 복지시설은 지역주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휴관하면서 이용자들은 비록 오지 못하지만 복지관 내부는 더욱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취약계층 어르신 등을 수시로 모니터링하고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마스크를 구매해 중요한 시기에 주민들에게 나눠준 것은 혜안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반해 정치인이 갑자기 찾아와 무턱대고 봉사하겠다고 해서 돌려보낸 일도 있었다. 

“이 사태가 빨리 안정됐으면 바라는 마음뿐입니다. 그 날을 위해 우리들이 건강해야 합니다. 우리 몸은 나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현스님은 평소 직원들에게 “퇴근하면 친구 만나지 말고 빨리 집에 가라”는 지시를 입에 달고 산다. 

복지사이자 수행자이기도 한 스님에게 코로나19에 대해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자업자득”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지 않은가. 이 또한 언젠가 지나가겠지만 피해가 너무 크다.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배려가 중요하다. 마스크를 나누는 배려 등을 통해 마음이라도 덜 힘든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

본동복지관은 내년에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전한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도시재생사업 공간으로 현재 위치가 선정되면서 본동복지관은 흑석동 중앙대병원 근처로 옮기게 됐다. 법현스님은 “불교복지의 장점은 사람의 마음을 만져줄 수 있다는 것에 있다”며 “이를 극대화시켜 정(情)을 나누며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는 복지가 불교복지의 방향이 돼야 한다. 새로운 복지지설에서 이같은 복지방향을 설정하고 전개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김하영 기자 hykim@ibulgyo.com

[불교신문3569호/2020년3월2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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