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두
이진두

“비나이다. 비나이다. 하늘님 땅님 용왕님 햇님 달님. 부처님 공자님 예수님께 비나이다. 천지신명과 조상님들께 두 손 모아 비나이다. 우리 아들 딸 손주 모두 평안하게 해주소서. 병들어 고생 안 하고 제발 제발 몸 건강히 잘 살게 해 주시옵소서. 옆 집 은아할매 아들 손주들도 건강하게 해 주시옵소서. 멍멍이 야옹이 꼬끼야도 안 아프게 해주시이소.

내사 팔십이 넘은 늙은 할망구라 언제 가도 할 말 없습니다. 저승사자님이 가자하면 언제든지 암말 없이 따라 가겠십니더. 더 살라꼬, 내 한 몸 더 살라꼬 벌지는 않겠심니더. 우짜든동 내야 괜찮으니 제발 제발 우리 아이들 곱게 크고 잘 살게 해 주시옵소서. 이렇게 손 모아 빕니다.”

할매는 언제나 당신 한 몸 보다 후손이 잘 살기를 손 모아 빈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동네가 시끄러울수록, 몹쓸 병이 나돌아 모두가 절절 맬 때면 할매의 두 손은 더욱 바쁘게 진하게 비벼진다. 당신 말마따나 팔십이 넘게 살았으면 많이도 살아온 거다. 그 긴 삶 속에는 전쟁의 뼈아린 상처도 있고 군사정권 때는 다 큰 아들이 정권에 반대하여 데모를 하다 총에 맞아 죽는 꼴도 겪었다.

갖은 풍상을 다 겪은 할매다. 그러나 이번처럼 병이 나돌아 사람을 겁나게 만드는 일은 처음이다. 절에도 마음대로 못 가게 생겼다. 큰 절들은 문을 닫았다. 할매 평생에 못 보던 일이었다. 부처님 앞에서 공부하고 아들 딸 잘 되라고 비는 것도 못하게 되었으니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할매는 바깥 나들이도 못하고 혼자서 빌기만 한다. 병들지 않기를 빌고 병으로 죽지 않기를 빌고 병이란 놈이 아예 이 세상에 없기를 빌고 또 빌 뿐이었다. 허나 어쩌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내 맘대로 할 수 없어 누구나 겪는 것이라는 것도 할매는 안다.

할매는 오늘도 두 손 모아 빌고 또 빈다. 내가 할 일은 이것뿐이라는 듯. 봄이 왔다. 그러나 할매의 봄은 오지 않았다. “봄님이시어. 봄 눈 녹 듯이란 말이 있지 않는교. 모든 나쁜 것들 다 녹여주시옵소서.” 할매는 오늘도 빌고 또 빈다. 

[불교신문3568호/2020년3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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