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경
김두경

2월18일. 그날 이후 일상이 바뀌었다. 아이들 학원이 집중된 일대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나온 것이다. 학원 휴원을 시작으로 나와 아이들은 일체의 바깥 활동을 중지했다. 주위 친구들의 단체 채팅방에는 불이 났다. “이게 뭔 일이래?” “어느 집에 누가 밀접 접촉자래.” “어디 어디가 감염됐대.” “무섭다 정말.” 등등.

가능한 집에 머무는 것이 이 사태를 끝내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다. 잡힌 일정을 취소하고 모든 것을 집안에서 해결했다. 난 종일 뉴스를 틀었고, 학원 쉰다고 좋아하던 아이들은 슬슬 지루해했다. 쏟아지는 정보와 가짜 뉴스에 허덕이면서도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삼시세끼 밥을 차렸다.

어느새 우리 지역은 민폐와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지역색을 씌우고 정치 프레임까지 곁들여 싸잡아 비난하는 글을 볼 때면 한없이 씁쓸했다. 어떤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하루하루 지치고 황폐해져 갔다. 평범한 일상은 요원하기만 했다. 

그렇게 메말라 가던 마음에 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른 지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지속적으로 안부와 위로를 보내오는 것이다. 훈훈한 뉴스들도 등장했다. 도움 요청 한 번에 단숨에 달려온 의료진들, 가게 월세를 감면하거나 줄여주는 건물주, 봉사 의료진에게 숙소를 무상 제공한 숙박업체 소식이었다. 소비 위축으로 식재료를 버릴 위기에 처한 식당들의 사정이 SNS로 알려지자 순식간에 매진을 기록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혐오와 비난은 오래가지 않았다. ‘힘내라’, ‘이겨내자’라는 응원과 위로가 댓글 창을 수놓았다. 주고받는 메시지에도 용기와 의지, 긍정과 희망의 말이 오갔다. 말 한마디는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다. 말 한마디는 위기일수록 더욱 빛을 발하고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삽화=김두경
삽화=김두경

쓰레기를 버리러 며칠 만에 집 밖을 나갔다. 별안간 마스크 속으로 훅 끼쳐 들어오는 향기에 고개를 드니 미색 매화가 팝콘처럼 팡팡 피어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발밑에는 앙증스럽게 웃고 있는 청아한 봄 까치꽃까지! 이 난리 속에서도 봄이 불쑥 다가와 있었다. 

비록 지금은 온전히 즐기지 못하지만 분명 봄은 오고 꽃은 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희망의 말을 주고받으며 봄을 맞을 것이다. 그리고 꿈꾼다. 언젠가 다시 맞을 감사하고 평범한 일상을. 마음껏 봄꽃 향기를 음미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벚꽃나무 아래를 거닐 그 날을.

[불교신문3568호/2020년3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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