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로 읽는 금오신화] <3> ‘만복사저포기’…무상 깨닫고 현실로 돌아오라
[불교로 읽는 금오신화] <3> ‘만복사저포기’…무상 깨닫고 현실로 돌아오라
  • 오대혁 시인 · 문화평론가
  • 승인 2020.03.25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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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혁
오대혁

<금오신화>의 첫 작품인 ‘만복사저포기’에 대해 초기 학자들은 ‘생사를 초월한 남녀의 사랑’을 주제화한 작품이라 이야기했다. 나중에는 기일원론, 성리학적 인성론(人性論)까지 가세했다. 그래서 “부처가 남녀의 결합을 주선한다는 모티브 역시 부처조차 이들의 진실하고도 인간적인 소망을 외면할 수 없었다는 역설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김명호, 1984)라고까지 이야기하게 된다.

이는 작품을 인간 정욕을 긍정하기 위한 사상 투쟁의 산물로 평가하는 것으로, 작품의 실상에 부합하지 않는다. ‘만복사저포기’는 애정을 긍정하기보다는 부정하며, 무상(無常)한 삶을 뛰어넘는 길을 열어주고자 한 작품이다. 

만복사에서 정업(淨業)을 닦던 존재인 양생은 부처님과 저포놀이를 한다. 저포놀이에서 이긴 양생은 아름다운 아가씨를 배필로 맞는다. 그런데 이때 부처란 누구인가? 불상이라면 쇠붙이거나 돌덩어리일 따름인데, 어찌 그와 놀이할 수 있을까? 실은 그 부처님은 다름 아닌 양생 자신이다. 조실부모하여 장가도 들지 못하고 절간에서 홀로 살며 수행을 거듭해오던 존재다.

작품 말미에 꿈속에 나타난 여인이 부디 ‘다시 깨끗한 업을 닦아’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수행을 하던 양생이 “한밤 등불 꽃으로 점치며 창 아래 시름하네”라며 좋은 배필을 얻으려는 욕망을 일으킨 데서 모든 문제는 발생한다. 

양생과 사랑을 나눈 처녀귀신, 그리고 함께 시를 주고받은 여인들은 모두 왜적이 침입한 난리에 목숨을 잃은 존재들이다. (왜적의 분탕질과 노략질로 시신들이 산처럼 쌓였던 때가 있었으니, 그로 인한 민중의 고통을 처절하게 느낀 김시습의 눈물이 보인다.) 그들의 해원(解寃)은 명혼(冥婚)이라는 형식을 요구했고, 다른 여귀들과 달리 주인공 여귀는 양생과 연분을 맺음으로써 한풀이가 가능했다.

그런데 그것은 실상 양생의 의식 세계에서 벌어진 공(空)이요, 환(幻)이었다. 여귀 김 씨가 “내일 아침 땅을 말아 동풍이 불어오면, 한 토막 봄날의 꿈인 것을 어찌한단 말인가”라고 표현할 때 등장하는 ‘춘몽(春夢)’이었다.

양생은 3일 동안의 만남이 끝나고 여인을 위한 재(齋)를 올리면서 “저승과 이승이 떨어져 있음을 알면서도, 물과 물고기가 만난 즐거움을 나누었습니다. 인생 백 년을 함께 늙으리라 여겼더니, 어찌 하룻밤에 슬픔과 고통을 겪을 줄 알았겠습니까?”라고 인생무상이라는 깨달음을 노래한다.

마음은 본래 들여다볼 수 없이 공(空)한 것인데, 그 세계에 현상으로 인식되는 귀신이 나타나 사랑을 나누었던 것이다. 이는 조동오위(曹洞五位)의 정중편(正中偏), 곧 공(空)이요 환상인 세계에 색(色)이요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는 원리에 부합한다.

양생은 아무 일 없는 본체에서 애욕이 불러일으켜 커다란 분별심을 낳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는 지리산으로 들어가 약초를 캐며 살았는데, ‘부지소종(不知所從)’, 즉 어디서 어떻게 세상을 마쳤는지 모른다고 작품은 마무리된다. 
 

금오신화를 집필한 김시습의 무량사 다례재 모습.
‘금오신화’를 집필한 김시습의 무량사 다례재 모습.

이를 두고 불교에 대한 회의 또는 비판(김일렬, 1982)이라 하기도 하고, 도선적 지향으로(최삼룡, 1982), 세상에 대한 초월적 태도(박희병, 1997) 등으로 보기도 한다. 그런데 그것은 다시 깨끗한 업을 닦아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라는 여인의 바람을 실천한 것이다.

“어젯밤엔 초라한 마을에서 자더니, 오늘 아침엔 상원(上苑)에서 노니네. 본래부터 지위의 차례가 없으니, 어느 곳에서 종적과 유래를 찾겠는가?”(김시습, ‘백장단삼종자재(百丈端三種自在)’) 

깨달은 자가 나아가는 자유자재한 경지, 윤회의 사슬을 끊어버린 자가 지리산에서 약초를 캐며 자유롭게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부지소종’이다. 이는 진정한 정위(正位, 무상한 세계)에서 다시금 편위(偏位, 현실)로 나아간 것이다. 

결국 ‘만복사저포기’는 본래 부처인 양생이 애욕을 일으켜 인간사의 고통을 절절하게 느끼고, 다시금 본래의 모습을 되찾아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음을 이야기한 소설이다. 인간들이 겪는 다툼과 고통은 실상 본래 자신이 부처임을 깨닫고 현실 속에서 자유자재하게 살아가는 데서 해소될 것이라 본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나, 인간들은 온갖 욕망 속에 허덕이는데….

[불교신문3568호/2020년3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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