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로 온 세상 멈춘 듯…강남 봉은사에 홍매화 만개하다

영각 홍매화를 바라보는 참배객, 모아진 두 손에서 간절함이 전해진다.
영각 홍매화를 바라보는 참배객, 모아진 두 손에서 간절함이 전해진다.

누군가 서울 봉은사에 봄꽃이 한창이라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세상은 멈춘 듯하지만, 시간은 그렇게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13일 오후 4시 카메라를 챙겨 봉은사 일주문 격인 진여문 앞에 섰다. 사찰에 들어서자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명 또는 많아야 2명이 띄엄띄엄 보인다. 또한 대웅전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갈래 길들로 흩어진다. 산보삼아 오른쪽으로 올라 도량을 큰 게 도는 둘레길로 향하는 이들도 있다.
 

영각의 활짝 핀 매화가지 사이로 미륵대불 상호가 보인다.

봉은사도 다른 사찰들과 마찬가지로 코로나 여파로 사부대중이 한자리에 모이는 법회는 중단했다. 대신 매주 일요일 오전10시 코로나 국난 극복기도와 축원 그리고 주지스님 법문을 유튜브 생방송으로 전하고 있다.
 

일주문 격인 진여문에서 왼편으로 보이는 홍매화.

진여문에서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왼편 홍매화다. 공양간인 향적원과 실내교육과 행사가 이뤄지는 보우당은 규모가 제법 큰 전각인데 이곳 지붕과 처마는 홍매화의 멋진 배경이 되어주었다. 법왕루를 올라 오른편 새로 지은 전각이름이 매화당이다. 작년에 낙성식을 마치고 기념으로 매화를 심었는데 용케도 올해 꽃망울을 터뜨렸다.

봉은사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사찰의 사사(寺史)인 <봉은사>에 실려 있는 ‘비밀의 전각-매화당’편이 소개되어 있다. 사찰과 사명대사 그리고 매화에 관련된 이야기다.
 

올해 첫 꽃망울을 터트린 매화당 홍매화.

예부터 전하는 말에 만력 32년(1604년) 사명대사가 일본에 갔다 돌아오면서 나가사키와 사쓰마 사이에 정박하고 있던 중국 상선에서 매화를 얻어 돌아왔다고 한다. 또한 현재 봉은사 심검당 동남쪽에 사명대사가 머물었던 매화당의 옛터가 있었다하니, 봉은사는 예부터 매화와 인연이 있는 사찰이다.

이젠 또 다른 매화를 찾아 나선다. 대웅전 오른쪽으로 오르면 영산전이 나오고 사찰 외곽 둘레길을 만난다. 여기서 미륵대불로 향하다 보면 영각이라는 조그만 전각 주변에 사람들이 멈춰서 있다. 멈춰서 곳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영각 바로 옆 홍매화가 탁월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사진동우인 사이에는 제법 소문난 매화다.
 

영산전 목련도 곧 피어날 기세다.

영각 근처 사찰에서 가장 오래된 전각인 판전이 자리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시선은 매화에만 머물려 있다. 경판을 보관하는 장경각인 동시에 예불을 드리는 불전으로, 경판보관 및 예불 기능을 병용하기 위해 독특한 창호 구성을 갖추고 있다. 정면 처마에 걸려 있는 현판에는 ‘판전(板殿)’ 두 글자가 양각되어 있는데 추사 김정희(1786~1856)의 글씨이건만, 꽃 피는 봄에는 홍매화의 인기에 밀린다.
 

노란 산수유꽃도 도량을 장엄하고 있었다.

다만 때가 때인지라 누구 하나 소리 내지 않고, 서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고개를 들어 매화를 바라볼 뿐이다. 그 시선에는 근심을 잠시 내려놓은 편안함이 보인다. 멈춰선 이곳에 들리는 건 풍경소리뿐. 매화가지 사이로 미륵대불 상호가 보인다. 엷은 염화미소를 짓고 있다. 눈으로 전해지는 안심법문이다. 매화를 비롯한 봄꽃들이 도량을 장엄할 뿐 아니라, 찾아든 이들에게 마음의 위안도 전해주고 있었다.

[불교신문3568호/2020년3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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