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스님의 열반일 삼아 차 올리며 불법 대향연

화엄대찰 부석사가 삼짇날 의상대재를 맞아 무량수전에서 스님을 모시고 법문을 청하고 있다.
화엄대찰 부석사가 삼짇날 의상대재를 맞아 무량수전에서 스님을 모시고 법문을 청하고 있다.

음력 3월 3일 삼짇날은 본격적으로 봄을 알리는 명절이다. 삼짇날 무렵이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고, 뱀이 동면에서 깨어나며, 나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에 제비를 먼저 보면 운수가 좋다하여 ‘제비마중’으로 기다리거나, ‘삼짇날 뱀과 노랑나비를 보면 길하다’는 속신으로 봄을 반긴다. 

화엄대찰 부석사에서는 삼짇날을 의상대사의 열반일로 삼아, 스님의 가르침을 새기며 사부대중이 지극한 마음으로 의상대재(義相大齋)를 봉행한다. 시대에 따라 양상은 조금씩 달라져도 개산조(開山祖)를 기리며 그 뜻을 이으려는 불자들의 신심과 긍지는 깊고도 크다. 

삼짇날 춘다례 전통

삼짇날은 양수 3이 중첩된 중삼일(重三日)로, 예로부터 봄날의 양기가 충만한 길일이라 여겼다. 이에 나라에서는 이날 일흔이 넘는 노인들을 위해 기로연(耆老宴)을 열고, 아녀자들은 삼짇날부터 한 달이 넘도록 용왕당과 삼신당을 찾아 아들 낳기를 빌었다. 삼짇날을 답청절(踏靑節)이라고도 부르는데, ‘답청’이란 들판에 나가 꽃놀이와 함께 파릇파릇한 새 풀을 밟으며 봄의 생명력을 즐기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고대로부터 삼짇날이면 산천에 제사를 지내 국태민안을 빌었고 신라시대에는 대덕(大德) 스님을 천거하는 중요한 의식을 치렀다. 이날 절에 가서 불공을 올리면 기도의 효험이 크다고 여겨 삼짇불공이 성행했는가하면, 산 생명을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방생법회 또한 삼짇날의 중요한 불교의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중삼(重三)이 지닌 길상의 의미를 불교에서도 중요하게 여겼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삼짇날과 9월 9일 중양절(重陽節)은 봄ㆍ가을의 양기 충만한 날로 짝을 이룬다. 이를테면 민간에 “약수는 중삼(3.3)부터 중구(9.9)까지 효험이 가장 크다”, “중양절에 강남 간 제비가 삼짇날에 돌아온다”는 속설이 전한다. 모두 양수 3과 9가 거듭된 명절의 생명력을 중시하면서 이를 기억하기 위한 담론들이다. 

〈삼국유사〉에는 신라 경덕왕 때 충담(忠談) 스님이 매년 3월 3일과 9월 9일에 다구(茶具)를 들고 남산에 올라 삼화령(三花嶺)의 미륵세존께 차를 올렸다는 기록이 전한다. 신라의 탑과 부도에 차를 공양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듯이 불교의 헌다의식은 이른 시기부터 정착되었고, 부처님과 조사스님께 올리는 중삼다례ㆍ중구다례가 성행하였다.

또한 토착신앙에 따라 이른 시기부터 천지신명에게 지낸 제사를 비롯해, 유교에서 중시하는 시제(時祭)의 시기가 모두 중삼과 중구로 귀결된 것은 이날이 지닌 길상의 의미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신라 해동화엄의 초조(初祖) 의상스님을 기리는 의상대재는 이처럼 부처님과 역대 조사스님들께 올린 춘다례의 전통을 잇는 의례이다. 삼짇날을 의상스님의 열반일로 삼아, 법회를 열고 차를 올리며 스님의 생명력을 새기는 불법의 대향연이 펼쳐진다. 
 

조사당에서 의상스님에게 차를 올리는 모습.
조사당에서 의상스님에게 차를 올리는 모습.

의상스님 기리는 불교축제 

사찰에서는 의상대재를 ‘아주 오래된 의례’로 기억한다. 부석사의 개산조이자 화엄종 초조를 기리는 이 지역 최대의 불교축제이기에, 수많은 불자들이 도량을 가득 메운 가운데 여법하고 환희롭게 이어온 추모재의 역사는 깊다.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의상스님은 중국 화엄종의 제2조인 지엄(智儼) 스님으로부터 화엄교학의 진수를 전수받고 돌아아, 676년 태백산에 화엄 근본도량으로 부석사를 세우고 입적할 때까지 이곳에 머물며 가르침에 힘썼다.

스님은 태백산에 대로방(大蘆房)과 소백산 추동(錐洞)에 초가를 지어 〈화엄경〉을 설했고, ‘부석사 40일회’와 ‘추동 90일회’ 등 강경법회에 대중이 운집하면서 그의 명성은 바람처럼 번져 배출된 제자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신라후대에는 제자들이 전국명산에 화엄십찰을 세워 진리의 법등을 잇고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오늘날 의상스님을 기리는 대재는 ‘법회-다례-법계도 돌기’의 삼단계로 봉행된다. 무량수전(無量壽殿)에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법문을 들은 뒤, 조사당(祖師堂)에서 스님께 차를 올리며, 마지막으로 화엄경판을 이고 스님이 만든 법계도(法界圖)를 따라 도는 정대불사(頂戴佛事)가 이어진다. 법회와 다례가 정적이라면 정대불사는 동적․주체적 참여로써 균형을 이루어, 동참자들은 사찰과 개산조의 정체성이 담긴 의례에 신앙적 만족도가 매우 높다. 

무량수전은 남향이지만 독존으로 모신 아미타불은 서쪽에 좌정한 채 동향하여 서방 극락정토를 주재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화엄사상에 따른 비로자나불 대신 아미타불을 모심으로써 부석사는 화엄사상에 미타․관음신앙을 수용한 아미타정토계 사찰로서 특성을 지닌다.

의상스님 또한 실천수행을 토대로 화엄선양에 전념하여 서민불교적인 미타정토신앙을 중시했다. 이는 당나라에서 돌아온 스님이 전법수행의 장소를 찾던 중 관음의 진신을 찾아 동해로 가서 관음도량 낙산사를 세운 데서도 잘 드러난다. 화엄사상의 연마 못지않게 실천행의 면모를 관음신앙과 미타신앙으로 보여준 것이다.
 

화엄경판을 이고 법계도를 도는 모습.
화엄경판을 이고 법계도를 도는 모습.

삼밀가지의 법계도 돌기

몇 해 전 참관한 의상대재에서는 <천수경> 염송으로 법회가 시작되었다. 소예참 형태의 예경의식을 올리는 가운데 아미타불 정근과 공양의식이 펼쳐졌고, 축원과 중단불공에 이은 큰스님의 법문으로 무량수전에는 법열이 충만하였다. 법회를 마친 뒤 모두 동쪽 산기슭에 자리한 조사당으로 올랐다.

의상스님이 절을 세우고 수행하던 이곳엔 그의 좌상과 함께, 스님을 따라 용이 되어 신라로 건너온 선묘낭자의 벽화도 그려져 있다. 종사영반으로 다례를 봉행하는 동안, 신도들은 차례로 의상스님께 절을 올리며 저마다의 소망을 빌었다. 

다례를 마치면 부석사에 전하는 화엄경판을 머리에 이고 무량수전 앞마당으로 이운하는 정대불사가 이어진다. 의상스님의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를 따라 돌며, 입으로 법성게를 외우고 마음으로 가르침을 새기는 신구의 삼밀가지(三密加持)로써 화엄도량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의상스님은 〈화엄경〉의 핵심사상을 210자로 축약해 7언 30구의 법성게를 만들고, 그것을 법계도로 도형화하였다. 중심의 ‘法’에서 시작해 ‘佛’로 마치도록 210자가 미로처럼 연결된 도형이다.

스님은 법계도의 인문(印文)이 외줄인 것은 여래의 일음(一音)을 표시하기 위함이요, 굴곡을 나타낸 것은 중생의 근기와 욕망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요, 하나의 길에 시작과 끝이 없음은 여래의 훌륭한 방편에는 특정한 방법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요, 첫 글자와 끝 글자가 중심에 와있음은 인과의 양위는 그 성(性)이 중도에 있기 때문이라 하였다. 

미로와 같은 도형을 따라감으로써 종교적 목적을 얻는 구도는 서양에서도 발견된다. 중세 사르트르대성당 바닥에 새겨놓은 미로 또한 번뇌에서 벗어나 성스러움에 도달하고, 그 길을 걸으며 명상과 기도의 시간으로 삼기 위함이다. 이러한 도형이 종교적 상징에만 머물지 않고 실제 수행과 의식에 활용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의상스님이 창건하고 꽃피운 화엄종의 본산에서 화엄경판을 이고 스님이 찬술한 법성게를 외우며 법계도를 도는 것은, 의례의 정체성을 온전히 드러내는 환희로운 종교축제의 면모를 지녔다. 최근에 경판훼손을 염려해 정대불사를 하지 않고 있으나, 법계도를 도는 정대이운은 의상대재의 핵심을 담고 있어 경전이나 모조경판으로 대체한 복원이 절실하다. 
 

화엄일승법계도.
화엄일승법계도.

화엄도량 정체성 담긴 의상대재

의상대재는 일반대중을 염두에 둔 축제로 확대하기보다는 신앙적 핵심요소를 중심으로 단출하게 설행됨으로써, 동참자의 결집력이 높고 종교의례 특유의 경건한 환희로움을 지녔다. 이러한 특성은 무량수전의 공간구조와 신앙양상에서도 일관되게 드러난다.

독존으로 모신 아미타불이 화엄일승(華嚴一乘)을 나타내듯, 무량수전은 넓은 법당이지만 군더더기가 없을뿐더러 기도의 방향도 오직 서방을 향하도록 되어 있다. 아미타불이 서쪽에 좌정해계심은 물론, 화엄성중을 모신 신중단과 지장보살을 모신 영단이 불단 뒤쪽 좌우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도들의 기도는 오직 서방정토를 향하듯 뚜렷한 방향성을 지니게 된다. 또한 불벽(佛壁)을 두어 요잡할 수 있는 전통구조를 지녀, 아미타불을 둘러싼 네 기둥을 따라 부처님을 돌면 자연스레 화엄성중과 만나고 지장보살을 만난다. 

오늘날 사찰마다 크고 작은 의식에서 법성게가 염송되고, 법성게를 염송할 때면 불단을 돌거나 그 앞을 돌게 마련이다. 따라서 의상스님의 화엄사상과 미타신앙이 구상화된 법당에서 그가 만든 법성게를 염송하며 불단을 도는 것은, 일상의 신행 속에 천년고찰의 사상적ㆍ신앙적 맥이 그대로 이어짐을 상징한다. 

특히 부석사의 신도들은 ‘화엄성중’ 정근을 중요하게 여긴다. 총무스님은 “신도들이 예불할 때 아미타불ㆍ관세음보살보다 신중단으로 약간 방향을 틀어서 ‘화엄성중’ 정근할 때 갑자기 소리가 커진다”고 하였다. 예로부터 ‘화엄성중은 자성을 깨우는 소리’라 했듯이 그야말로 모든 게 깨어나듯 장엄하게 울린다는 것이다.

세계의 중심을 비로자나불로 대변하고 그 깨달음이 빛으로 상징된다면, 화엄성중은 깨달음을 본질로 한 삼라만상을 나타낸다. 지상과 천상을 오가며 〈화엄경〉의 이상을 펼치는 화엄성중을 끊임없이 염송함은, 살아있는 신앙으로써 자성을 일깨우는 울림이라 하겠다. 

의상대재는 이러한 사찰의 정체성과 신앙체계가 결집된 의례이다. 법회에 화엄도량의 교화기능을 담고, 다례로써 개산조의 정신을 새기며, 법계도를 돌아 제법이 본래 부처의 자리로 돌아감을 수행정근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불교신문3567호/2020년3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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