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의 법무자성과 용서 -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이를 위해

모든 법에 자성 없음 알면
사랑 미움 증오 대상 없어져
오온 행위에 따른 인과만 존재

등현스님
등현스님

미움과 증오는 개인의 정신적, 신체적인 건강에 있어서 아주 해가 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사회와 국가, 세계를 파괴적으로 이끌기도 한다. 이와 같이 해가 되는 미움과 증오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모든 법에 자성이 없음(法無自性, 法空)을 보아야 한다. 이 세상에 본래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으며, 사랑하거나 미워할 대상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五蘊自性皆空). 

우리는 삶의 현실 속에서 사랑하고 미워할만한 사람, 이로움과 해로움 그리고 나에게 고통을 주고 기쁨을 주는 대상을 분명히 경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들에 자성이 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먼저 그러한 대상과 환경은 인연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좋은 환경은 좋은 인연을 나쁜 환경은 나쁜 인연을 지은 결과이다. 내가 사랑받을 인연, 도움 받을 인연, 기뻐할 인연을 지었기에 나에게 좋은 환경이 다가오는 것이다.

만일 내가 미움 받을 원인, 해를 받을 원인, 괴로움 받은 원인을 지었으면, 그와 같은 좋지 않은 환경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므로 경험되어지는 세계는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고, 인연의 법칙에 의해서 발생하고 변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 발생하고 변하고 소멸하는 세계를 유위의 진제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대상의 원래적 상태가 있다. 그것은 바로 그러한 인연을 짓기 전 대상의 상태이다. 인연 없는 대상을 좋고 나쁘다거나, 이롭고 해롭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더 나아가서 그 대상 자체가 그러한 인연을 떠나서 존재하지 않는다. 만일 존재한다 하여도 전혀 다른 모습일 것이다. 그러므로 선악, 이해의 실체는 본래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위의 진제이다. 오직 법은 인연을 쫓아서만 존재할 뿐, 대상 자체에는 선악, 시비가 없는 것이다(空中 無色聲香味觸法). 그러나 또 다른 측면이 존재하니, 좋은 환경은 사람을 타락하게 만들고, 나쁜 환경은 사람을 강하고 능력 있는 자로 키우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은 환경이 나쁜 것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나쁜 환경이 좋은 것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좋은 것이 나쁜 것이고 나쁜 것이 좋은 것이다. (色不異空 空不異色)

그런데 세상에는 왜 고통과 시비와 다툼이 끊이지 않는가? 이 세상에 경험되어지는 수많은 악을 어찌 보아야 하는가? 연민심을 실천하는 사람이 지혜로 중생들을 관찰하게 되면, 미움을 갖지 않고 용서를 할 수 있게 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미워할 자가 없음을 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악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이기적인 사람이 있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모두 선하다. 그 모든 행위는 자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행위이며, 자신의 가족과 단체를 보호하기 위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만 자신과 자신의 단체를 지키기 위해 타인의 이익과 고통에 무관심한 무지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악의 근원은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그것을 감추려는 위선의 거짓이다.

이 세상에는 자신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행복과 안전에는 무관심한 사람이 많이 있다. 그들은 스스로가 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행복만을 위해 살 뿐이며 남의 고통에 무관심할 뿐이다. 그들은 남에게 한 행위가 결국은 나에게 되돌아온다는 인과응보의 도리에 무지하다. 그러한 삶이 결국에는 나를 파멸시키는 원인이 되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는 이기적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어리석은 자만이 존재할 뿐이다. 사람들은 제마다 스스로가 이타적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행위가 여러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의 이익을 보았을 때 그러한 것이고, 큰 틀에서 보면 오히려 해를 끼치는 행위이다.

그러므로 이기심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어리석음만이 있을 뿐이다. 남에게 한 일이 시간을 두고 나에게 돌아온다는 인과에 대한 무지가 남을 모질게 대하고,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때 아파하고 신음하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무지인가? 이 세상에 남이 없다는 것에 대한 무지이다. 사실은 남만 없을 뿐 아니라 나 자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오온의 행위와 그것들의 인과가 있을 뿐이다.

[불교신문3567호/2020년3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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