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속 부처 찾아낸 대자유인이 ‘참사람’입니다”

오늘을 사는 대다수 사람들은
욕망 따라 그때그때 변신 거듭
욕망에 사로잡혀 살면 결국
주체성도 잃고 방황하게 돼

참사람은 본래 참사람이어야
참사람인 것…세계 형성하고
역사 창조하는 자유인이어야

교단 안팎의 존경을 받은 조계종 제5대 종정 서옹스님. 불교신문
교단 안팎의 존경을 받은 조계종 제5대 종정 서옹스님. 불교신문

 

1982년 2월7일자 신춘탐방 / 대담 : 편집국장 향봉스님  

조계종 종정을 역임한 서옹스님은 한국종교계 뿐만이 아니라 이웃나라인 일본의 불교계에까지 널리 알려진 선학계(禪學界)의 독보적(獨步的)인 거봉(巨峰)이자 학처럼 단아하면서도 고결하여 수도자로서 외길을 걸어오신 스님이시다. 스님은 ‘양정(養正)’과 일본의 임제(臨濟)대학을 졸업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백양사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주석해 오면서 오도적(悟道的) 삶을 선학의 수행으로 실증(實證)해 보이며 제방(諸方)의 수선납자(修禪衲子)들을 지도하셨다. 한국불교계에 있어, 유일한 특수선원으로 한 때는 일반인들에게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었던 ‘무문관(無門關)’ 선원의 조실로 계셨던 스님은 현재에도 장성 백양사와 팔공산 동화사, 그리고 해남 대흥사 선원의 조실로 계시며 후학지도에 영일(寧日)이 없으시다. 서옹노사를 뵙게 되었다. 큰스님께서는 <불교신문>에서 온 심방객임을 직감하시고 노안(老顔) 가득히 미소로만 답해주실 뿐, 어떠한 물음에도 미소로만 일관된 격외(格外)의 선풍이 가실 줄을 모른다. 속으로는 저기 마감일도 임박하고 해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며칠 전 <동아일보>에서 본 ‘노익장(老益壯) 동창생’의 컬러사진을 떠올리며 대화의 실마리를 찾아 나섰다. 

- 10여 일 전에 동아일보에서 큰스님의 컬러사진을 보았습니다. ‘양정(養正)의 승리수(勝利樹)아래서’라는 유달영 교수님의 글도 읽었습니다. 사진에는 윤석중 씨와 손기정 씨 그리고 유달영 씨와 큰스님의 모습이 학교건물을 배경으로 하여 게재되었는데 ‘양정’ 몇 회 졸업이지요?

“나 그런 거 잘 몰라. 아마 16회라지! 유달영 씨가 나이는 나보다 한 살 위지만 학교는 1년 후배야!”

- 그러시면 큰스님께서는 양정시절 유달영 씨의 학생모습을 기억하고 계시겠네요. 

“그럼 학교 다닐 때 키가 조그마하고 영리하고 얼굴이 예쁘장했지!”

- 윤석중 씨는 양정 재학시절에 이미 명작동요를 많이 발표한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 졸업을 며칠 앞두고 왜 졸업장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여 사회에 화제가 되었었나요? 

“아마 일본인 선생들의 차별교육에 대한 항변일 게야. 학교가 떠들썩한 사건이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 손기정 씨는 베를린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으로 마라톤에 우승하여 민족의 한과 울분을 잠시라도 잊게 하는 기념비적인 금자탑을 수립하였는데 큰스님께서는 당시 졸업하신 후인지 아니면 재학시절의 쾌보였는지 알고 싶습니다. 

“손기정 씨는 나보다 2~3년 후배지 아마, 나이는 동갑이지만 나보다 늦게 학교에 다녔어. ‘베를린’소식은 졸업 후일거야.” 

- 큰스님께서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되시던 1974년에 펴낸 <임제록>을 요즘도 즐겨 읽고 있습니다. <임제록>에 대하여 그리고 ‘참사람(眞人)’에 대하여 큰스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임제록은 예로부터 선서(禪書)중의 왕이라고 존중을 받은 어록이야. 뿐만 아니라 이것은 인간의 근원적 주체성을 명백히 밝히고 자유자재로 행동하는 차별 없는 참사람(眞人)을 설파하여 동서고금을 통하여 제일 귀중한 진서(珍書)라고 생각해. 일본의 유명한 철학자 이시다기다로 박사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모든 귀중한 서적이 소진하게 되겠다고 걱정을 했을 적에 임제록만 타지 않고 남으면 우리는 만족해야 한다고 하였었지. 현재도 프랑스 등 외국의 대학교에서도 임제록을 강의하고 있음을 알아야해.

또한 ‘참사람’이란 눈 깜짝하지 아니하되 본래도 선과 악, 또는 이성을 초월하여 생사도 없고 시간과 공간이 거기에는 존재하지 아니함을 알아야해. 근본 원리라든가 신(神)이라든 가도 있을 수 없고 부처도 있을 수 없는 자리, 여기에는 무한한 자기부정(自己否定)만 지속되거든. 그렇다고 이 참사람은 죽은 것도 아니거든. 이 참사람은 손가락 하나 까딱 하지 아니하되 본래 공간적으로 무원(無遠)하게 세계를 형성하고 시간적으로 무한히 역사를 창조하는 거야. 정성(情性)과 이성(理性)과 영성(靈性)으로 문화와 역사를 창조하거든. 어디 그 뿐인가. 중생도 부처도 만들고 지혜와 자비가 충만한 불국토도 건설하지. 그러므로 무한히 자기실현을 하고 무한히 자기창조를 하는 게야. 그러나 또한 이 참사람은 실로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도 아니여서 필경엔 어디에나 걸리지 아니하지. 이 참사람은 일정한 법칙에 얽매이지 아니하여 여러 가지 몸으로 어느 곳에나 자유자재로 나투어서 자유자재로 활동하는 게야. 알겠어?” 

- 큰스님께서 오도적(悟道的) 삶을 실증(實證)해 엮어 오시며 현대문명에 미치는 선(禪)의 역할에 대해 그리고 과학문명과 임제선(臨濟禪)과의 문제를 말씀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인간의 근본구조는 다(多)를 근원적으로 통일하는 일(一)과 근원적 통일적 일(一)에서 창조형성해지는 다(多)가 서로 융화되어서 둘이 아닌 거야. 다(多)가 없는 일(一)은 내용이 없는 단순한 허공이고 일(一)이 없는 다(多)는 통일이 없는 단순한 분열(分裂)인거야. 복잡화하고 정글화(密林化)해서 근원적 바탕이 되는 일(一)을 상실한 것은 현대문명의 큰 병폐(病廢)라고 하지 않을 수 없지. 오늘날의 분열, 혼란, 허탈, 불안정, 혼미, 회의(懷疑), 노이로제, 염세(厭世) 등 소위 문명병은 근원적 통일적 일(一)을 상실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거든.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근본의 일(一)은 더욱 강하지 않으면 안 돼. 그런데 현대는 근본의 일(一)을 상실했으므로 인간은 분열과 혼미와 불안정을 극복하지 못하고 원시적(原始的)인 종교나 점술에 의지하게 되는 기이한 현상을 나타내는 수가 많아 슬픈 일이야. 

이 원시적인 종교나 점술은 임시의 진통제도 못되고 더욱 더 분열(分裂), 혼미(昏迷), 불안정에 떨어뜨려서 현대의 문명병통(文明病痛)을 치료하지 못하고 도리어 악화되어서 위험하게 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거야. 오로지 여기에서의 활로(活路)를 찾는 길은 임제스님의 참사람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요. 실참수행(實參修行)하여 선(禪)을 생활화하는 방법 밖에 없는 거야.” 

- 선(禪)하는 마음이 생활바탕에 뿌리를 내리려 해도 인간의 근본욕구의 온갖 충동질에 오히려 정신적인 혼란만 더해주는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큰스님께서 선의 생활화를 위해 본능적 욕구불만에서 해탈할 수 있는 지름길을 제시해 주셨으면 하는 데요. 

“복잡한 정글 속에 있는 오늘날의 일반사람들은 주체성을 상실하여 그 때 그 때 일어나는 욕망에 따라서 생활하고 있는 거야. 욕망은 인간의 자연적 본성(本性)에 속한 것 인만큼 그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지만, 이 욕망은 초월적, 근원적인 차원의 전체적 연관 속에 있어서 체계적 위치에서 작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그러나 일반의 근원적 바탕이 없는 욕망은 그 자체가 진실한 객관적 타당성이 아니거든. 그리고 욕망은 항상 욕구불만에 빠지고 욕망의 사람은 욕망에 사로잡혀서 주체성을 잃게 되는 거야. 욕망에 끌려서 사는 사람은 결코 주체성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 욕망의 지배에 끌려서 사는 곳에는 자유가 없고 따라서 책임도 없는 거야. 아무 가치도 없는 생활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지. 욕망은 타락과 파멸의 늪으로 빠져가는 지름길 일수 있거든.”
 

1982년 2월7일자 불교신문 5면 ‘신춘탐방’에 실린 서옹스님 인터뷰.
1982년 2월7일자 불교신문 5면 ‘신춘탐방’에 실린 서옹스님 인터뷰.

- 동양은 예로부터 국가조직이 전체주의라고 하겠습니다. 전체주의는 개인에게 대하여 절대복종만을 요청하는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예전의 동양역사에 있어 군주독재 제도의 흔적이 많이 발견되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백성을 근본으로 삼는 성군의 통치라 해도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수직선형의 정치체제 아래서는 진충보국주의(盡忠報國主義)는 성행할지 모르나 자율적이요, 자주적인 행동의 발생은 기대하기 어려울 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큰스님께서 국민 각자가 개성 있고 창의적인 뜻과 의지를 개발할 수 있도록 정신적인 측면에서 조명해 주셨으면 하는데요.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예(禮)를 숭상했는데 이것은 인간적 도덕적으로 자타(自他)가 동등한 지위에 입각하여 서로 존경하는 때에 성립되는 것이거든. 주종(主從)의 예라든가 군신(君臣)의 예라는 것은 힘의 관계이지 결코 예라고는 할 수 없지. 굴종(屈從)의 질서에 지나지 않는 게야. 봉건주의 아래서 말하는 예라는 것은 일종의 의식습관이라고 볼 수 있지. 군주는 인덕(仁德)을 베풀고 백성은 홍은(洪恩)을 입어서 감지덕지하여 어찌할 줄 모르니까 말이야. 이러한 위력관계 아래서는 인격적 자주성은 있을 수 없으며 예의 윤리적 대등격성(對等格性)은 엿볼 수도 없는 거예요. 여기에는 자주적으로 생각하고 자주적으로 행(行)하는 길을 봉쇄해 버린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야. 자주적으로 관찰하고 생각하며 비판할 수 있도록 자주적 정신계발이 보장되고 선행 되어야 나라가 발전하고 국민이 안락할 수 있는 게야.”

- 부처님께서는 룸비니동산에서 탄생 첫 일성을 ‘천상천아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외쳤다 합니다. 이것은 인류역사상 최초의 인간선언이자 진정한 의미의 복음(福音)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한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에서 입적하실 때도 최후의 말씀을 묻는 제자들에게 ‘법등명(法燈明) 자등명(自燈明)’을 남기셨으니 인류의 영원한 스승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큰스님께서 이에 불원의 교훈이요 실천일 수 있는 절대애(絶對愛)에 대해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먼저 기독교에 있어서는 절대적 사랑은 신(神)만이 가지고 있는 걸로 생각하는 거야. 그러므로 인간의 사랑은 신(神)의 절대적 사랑에 의해서 뒷받침이 된 상대적 사랑에 지나지 않고 있지.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인인애(隣人愛)라고 말하고 있어. 이 인인애는 창조자인 신의 절대적 사랑을 받고 있는 피조물인 인간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이거든.

그러나 불교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절대애(絶對愛)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거야. 다시 말하면 본래로 절대애의 주체인 게야. 자비의 주체는 참사람의 모습이고 바로 현실의 모습이야. 모든 행동은 자비로부터 발현되어야지. 이 자비가 위로부터 아래로 향해서 행하는 수도 있으나 불교에서는 모든 사람이 서로 평등한 입장에서 평등으로 행하는 게야. 이 평등도 보통은 보통으로 말하는 인간의 입장에서 평등을 주장하지만 보통 인간을 안으로 초월한 참사람의 입장에서의 평등이라야 궁극의 평등이라고 할 수 있겠지. 모든 사람은 본래로 참사람이지. 이것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횡적(橫的)넓이의 평등이라 할 수 있어. 또 사람 자체의 종적(縱的)깊이의 내용적인 평등의 성격이 불교의 평등원칙이지. 인간의 근본바탕은 허공광 같이 한정 할 수 없는 거예요. 무연대비(無緣大悲)는 보통의 사랑, 즉 애견(愛見)의 자비(慈悲)가 아니라 자성지혜(自性知慧)를 바탕으로 하는 절대 평등의 사랑이라 말할 수 있어. 그런 의미에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나 ”법등명 자등명“의 산 교훈은 모두 평등자비사상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알아야 해.” 

- 큰스님의 말씀을 들으며 ‘평등성중(平等性中)에 무피차(無彼此)하고 대원경상(大圓鏡上)에 절친소(絶親疎)’라는 구절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벽암록(碧岩錄)> 같은 조사 스님들의 어록을 살펴보면 옛날의 선(禪)은 개인을 제도하는데 역점을 두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다변화된 집단이나 국가에 있어 모든 게 세계성(世界性)을 띠고 있는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개개인의 상대가 아닌 집단이나 전체를 구제하는 전제에 있어 선(禪)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될 줄 압니다. 이에 큰스님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전체는 그것을 구성하는 개체(個體)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고 개체도 또한 이것을 성립시키는 전체(全體)가 없이는 존재 할 수 없지. 개체를 말할 때 전체는 본래 그 속에 있고, 전체라고 할 때 개체는 본래 그 속에 있는 거야.”

- 요즘 시중에서 팔고 있는 고무신에도 ‘진짜 타이어표’가 있습니다. 가짜가 진짜 같고 진짜가 가짜 같은 세상이라서 젊은이들이 끼리끼리 사랑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진짜 진짜 좋아해’를 유행가 가사에 넣어 부르고 있을 정도입니다. 이에 큰스님께서 참사람의 참의미를 일깨워주셨으면 합니다. 

“참사람이란 본래로 깨달은 사람이 참사람인 것이야. 새로이 깨달음을 추구할 것도 없이 본래의 자성정청(自性淸淨)함이 곧 이 참사람인 것이야. 이 참사람은 생사도 없고 남녀노소의 차별도 없고 지(智)와 우(愚)와 선악(善惡)과 미추(美醜), 중생과 부처의 차별도 없고 계급과 민족, 인종(人種)과 국가, 심지어는 생물과 우주, 시간과 공간의 차별도 없는 것이거든.  모든 한정(限定)을 절(絶)해서 독탈무의(獨脫無依)하여서 일체계박(一切繫縛)을 탈각(脫却)하여 무애자재한 것이거든. 이러한 참사람이야말로 더욱 복잡화하는 세계에서 또 더욱 더 분화 발전하는 역사의 현실에서 주체성을 상실하지 않고 또는 현실도피와 신불(神佛)에 의지해서 자기상실에 빠지지 아니하여 절대자주, 절대자율로 살아나 갈수 있는 것이야. 이 참사람은 소극적이 아니라 적극적 대기대용(大機大用)을 발하는 근원적 주체가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해. 그래 타당한 체계적 정립를 지시해서 대용전창(大用全彰)을 실현하기 때문이야. 이 참사람은 다시 세계를 형성하고 역사를 창조하면서 어디에나 걸리지 아니하고 자유자재 하는 묘리(妙理)를 알아야 해.”

- 요즘 세상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엮어나가는데 있어 오히려 신앙 그 자체에 얽매여 자성불(自性佛)의 위력을 잃어가고 있는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또한 신도 분들의 입장에서는 성직에 있는 분들이 다 부처님이고 예수님이길 바라는 기대가 날로 그 둘레를 넓혀가고 있는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반인들의 바람과 기대에 부응키 위해서라도 성직자들의 책임과 의무가 막중하다고 생각됩니다. 큰스님께서 이에 신앙적인 측면에서 방황하는 자들을 위하여 교훈적인 지침을 내려주셨으면 하는데요. 

“르네상스 이후로 인류가 하나님한테서 해방되어 인류의 자유가 보장되는 듯이 몇몇 철인(哲人)들이 학설(學說)을 발표했었지만 오늘날은 오히려 과학문명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음을 먼저 깊이 알아야 돼. 심외무불(心外無佛)이란 말이 있듯이 마음속의 부처를 찾아 자유자재로 살 수 있는 근본문제를 해결해야 대자유인이 되는 거야. 인간이 자연을 정복한다는 서양정신으로 살게 아니라 불교는 우주전체를 하나의 생명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서로 사랑하고 봉사하며 이해하고 아끼며 용서해야 돼. 성직자이든 성직자가 아닌 일반이든 항시 감사드리고 기도드리는 자세로 살아야 해. 참사람, 참사람 정신으로 참사람답게 참사람이 되어야 해. 알겠어?” 
 

■ 서옹스님은… 
1912년 충남 논산 출생. 1932년 21세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 진학, 그해 7월 장성 백양사에서 만암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내외전과 실참 그리고 학문연찬을 비롯해 한국과 일본의 선원에서 직접 화두를 챙겨든 서옹스님은 1944년 33세에 고국으로 돌아와 백양사를 비롯 전국 각처의 선원에서 수행에 전념했다. 이후 1951년 동국대 대학선원장으로 취임한 것을 시작으로 무문관(無門關), 동화사, 백양사, 봉암사, 대흥사 등 제방선원의 조실로 추대돼 납자들을 지도하고 인도하는데 전념을 다했다. 교단 안팎의 존경을 받던 서옹스님은 1974년 63세의 나이로 조계종 제5대 종정에 추대된다. 1996년에는 고불총림 백양사 초대방장으로 추대돼 임제선맥의 중흥을 발원하며, 후학들을 양성하는데 매진했다. 마지막 가는 길조차 좌탈입망의 법력(法力)을 보이며 2013년 12월13일 고불총림 백양사 설선당 염화실에서 열반에 들었다. 

정리=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불교신문3567호/2020년3월2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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