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혁
오대혁

김시습을 추적하다 보면 ‘다섯’이 계속 나온다. 그의 일대기, 불교 문적, 게다가 <금오신화>까지도 이 ‘다섯’은 열쇠말이 되어 나타난다.

우선 ‘오세(五歲)’, 이는 김시습의 별명이다. 신동이라는 소문을 듣고 세종은 승정원 승지더러 다섯 살의 김시습을 시험하게 하고는 장래에 크게 쓰겠노라며 비단을 하사한다. 그 비단의 길이가 50필 또는 100필이라 전한다. 다섯 살 꼬마가 그것을 허리에 묶고는 질질 끌고 가는 광경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열세 살까지 사서삼경을 배우고, 역사서와 제자서도 줄줄 읽어대는 그는 천재였다.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어머니를 잃었고, 시묘 기간에는 외할머니마저 잃는다. 스물다섯 살에는 “일찍이 남화(南華)의 꿈 기쁘게 깨닫고/ 행운유수(行雲流水) 찾은 것이 십 년 전부터라”(<유관서록>)라고 한 것으로 보아, 아마 이 열다섯 살부터 불교와 인연을 맺은 듯하다. 그런데 천재 소리 듣던 그도 과거 시험에 낙방하고,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접한 후 승려의 길을 걷는다.

스물세 살에 그는 경주를 지나며 “선리(禪理)가 사뭇 깊어서 다섯 해를 생각하여 비로소 투명하게 열리게 되었다”(<매월당집서>) 하고, 유교는 사다리를 오르듯 단계가 있으나 선가의 도는 텅 비어 환하게 되니 모든 것이 풀린다고 덧붙인다. 이때부터 그는 선리를 꿰뚫은 선승으로 자유자재한 삶을 살았다. 스물다섯 살에 경기도 양주 회암사에서 득도했다는 주장도 있다(황인규, 2005). 

그는 관서, 관동, 호남, 금오 등 전국을 떠돌며 “일 년 농사 비바람에 고생도 하도 할사/ 관가 조세 물고 나면 남는 것이 그 얼마냐”(<유금오록>)라며 도탄에 빠진 민중을 목도하고, 수많은 산사들을 찾아다니며 수행했다. 

한편 원각사에 운수천인도량을 베풀 면서 여러 스님들이 시습을 불러야 한다고 했을 때, 세조가 그를 청했는데도 그는 스스로 절 뒷간에 빠져 쫓겨난다. 이에 대해 윤춘년은 일부러 미친 체하여 경망하고 조급한 행동을 하며, 나무나 돌로 치려하고, 활을 당겨 쏘려 하는 등 그들의 뜻을 시험하려 했다고 했다.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미치광이 승려라 놀려댔지만 그 모두가 불성을 가진 범부를 깨닫게 하려는 방편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묘법연화경>을 선적으로 해석한 <묘법연화경찬>(1463, 29세)을 쓰기도 하고 효령대군의 요청으로 원각사 낙성회에 참여(1465, 31세)하기도 한다. 그리고 <조동오위요해>, <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 <대화엄법계도주(大華嚴法界圖註)>, <화엄석제(華嚴釋題)> 등 선교(禪敎)를 포괄하는 대작들을 짓는다. 이들 저작들은 일연(一然) 선사로 이어진 조동선(曹洞禪)의 맥을 이으면서, 의상의 화엄사상을 선적(禪的)으로 해석하는 등 선리(禪理)를 명쾌하게 밝힌 것들이다. 

그는 “산승의 염주 위에 십종현문(十種玄門)이 열려 있고, 염주 아래에 일진법계(一眞法界)가 드러나 있다”(<화엄석제>)라고 말하며, ‘지금 여기’ 마음이라는 거짓 이름을 갖고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 ‘살아 있는 인간 자신’에게 진리가 있음을 말한다. 삶과 죽음을 영영 끊어버린 경지에서 항상 살고 죽는 마당에 놓여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법성원융(眞性)의 경지에서 중도적 실천의 길을 찾으려 했다. (필자는 일찍이 이를 ‘선불교적 현실주의’라 표현했다.)

이러한 김시습의 불교사상에 <금오신화>가 더해진다. 인간의 생사를 다룬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 인생무상을 절절히 노래하는 ‘취유부벽정기’, 현실의 변혁을 주장하는 ‘남염부주지’, 궁극적 이상 세계를 이야기하는 ‘용궁부연록’이라는 다섯 편의 소설을 담은 <금오신화>는 김시습의 불교적 이상과 어떤 관계를 맺는 것일까? 그는 왜 굳이 다섯 편의 작품을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일까? 

[불교신문3566호/2020년3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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