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호스님의 안목] 영화 ‘기생충’

월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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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계획이 계획

영화 <기생충>에서 과외교사가 되기 위해 대학 재학증명서를 위조하여 면접 보러 가면서, 아들 기우는 아버지 기택에게 이렇게 말한다. 

“저는 이게 위조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내년에 이 대학에 꼭 갈 거거든요.”

그러자 아버지인 기택은 말한다. “어,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사업에 실패하고 택시운전을 하면서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기택에게 더 이상 계획이란 없다. 지금까지 계획대로 해서 성공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무계획이야, 무계획, 노 플랜! 왜냐? 계획을 하면 반드시 계획대로 안 되거든, 인생이.......그러니까 계획이 없어야 돼, 사람은! 계획이 없으니까 뭐 잘못될 일도 없고, 또 애초부터 아무 계획이 없으니까 뭐가 터져도 다 상관없는 거야. 사람을 죽이건, 나라를 팔아먹건, 다 상관없단 말이지!”

결국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는 세상에 적응한 기택은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인생일 뿐이다. 그에게도 한 때는 꿈도 있고, 야망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헛된 꿈과 야망이야말로 공허하기 짝이 없음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아직 젊다. 그래서 영화의 말미에 아들 기우는 박 대표를 죽이고 대저택 지하실에 숨어 사는 아버지를 향해 다시 말한다.

“아버지, 저는 오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근본적인 계획입니다. 돈을 벌겠습니다. 아주 많이. 돈을 벌면 이 집부터 사겠습니다. 이사 들어간 날에는 저랑 엄마랑 정원에 있을게요. 햇살이 워낙 좋으니까요. 아버지는 그냥 계단만 올라오시면 됩니다.”

과연 기우는 이 계획대로 대저택을 사서 아버지를 구해줄 수 있을까? 기택은 계단을 올라올 수 있을까? 어찌해야 마치 바퀴벌레나 기생충처럼 부유층에 빌붙어 사는 빈곤층으로부터 벗어나 부유층으로 올라올 수 있을까?

➲ 빈부의 원인

빈곤층으로부터 벗어나 부유층으로 오르려면 빈부의 원인을 알아야 한다. 원인을 알아야 처방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빈부의 근본원인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앙굿따라 니까야> <말리 경>에서 말리까 왕비가 세존께 묻고 있다.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여인은 용모가 못생기고, 가난하며, 영향력이 적습니까?…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여기 어떤 여인은 용모가 잘생기고, 게다가 부유하고, 영향력이 많습니까?”

이에 세존께서 답하셨다.

“말리까여, 여기 어떤 여인은 성미가 급하고 격렬하다. 분노와 성냄과 불만족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그리고 그녀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옷 등을 보시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는 질투심을 가졌다. 그녀는 거기서 죽어서 현재의 이러한 상태로 다시 오게 되나니, 태어나는 곳마다 용모가 못생기고, 가난하며, 영향력이 적게 된다….

말리까여, 여기 어떤 여인은 성을 잘 내지 않고, 분노와 성냄과 신랄함을 드러내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는 사문이나 바라문에게 음식과 마실 것과 옷 등을 보시한다. 그리고 그녀는 질투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녀는 거기서 죽어서 현재의 이러한 상태로 다시 오게 되나니, 태어나는 곳마다 용모가 잘 생기고, 부유하고, 영향력이 많게 된다.”

요컨대 미추(美醜)의 원인은 분노, 빈부(貧富)의 원인은 보시, 영향력의 원인은 질투에 달려있다고 하는 것이다. 결국 과거에 보시를 많이 행한 이는 부유하고 재산이 많으며, 보시를 행하지 않은 이는 가난하고 소유물이 적은 것이다. 
 

도시의 계급과 빈부격차를 상징한 영화 ‘기생충’은 분별과 차별로 인해 상생의 삶이 어긋나는 지점을 그려내 전세계인들의 공감을 받아냈다. 사진은 영화 기생충 스틸컷.
도시의 계급과 빈부격차를 상징한 영화 ‘기생충’은 분별과 차별로 인해 상생의 삶이 어긋나는 지점을 그려내 전세계인들의 공감을 받아냈다. 사진은 영화 기생충 스틸컷.

➲ 가난을 팔아라

경전의 내용에 따르자면, 결국 가난에서 벗어나려면 지금부터라도 보시바라밀을 닦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무언가 베풀려면 가진 게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보시는 부자들이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러나 이런 생각에 머무르면 결코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구걸하는 마음 연습하면 거지·종이 되고, 베푸는 마음 연습해야 부자·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재물에 걸림이 없으려면 재물의 인과에서 해탈해야 한다. 그러려면 일단 생각을 고쳐먹어야 한다. 그것은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풀기’이다.

석존의 십대제자인 마하 깟짜야나 존자는 탁발을 나갔다가 우물 옆에서 슬피 울고 있는 한 노파를 발견했다. 문득 고향에 계신 어머니가 떠올라 그 노파에게 다가가 연유를 물으니, 젊은 주인 밑에서 온갖 박대를 받으며 사는 자신의 신세가 한탄스러워 울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존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가난을 파시지요.” “네? 가난을 팔라고요? 그런 것도 팔고 살 수가 있나요?” “네, 제가 사겠습니다.” “가난을 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네, 보시를 하셔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노파는 순식간에 실망을 하였다. “보시라니요, 늙은 몸이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사는데, 무엇이 있다고 보시를 하라는 거요?” “할머니, 물 한 그릇 얻어먹을 수 있습니까?” “그거야 여기 물이 있으니 얼마든지 드리겠소.”

노파가 떠준 물을 맛있게 마신 존자는 “지금 할머니가 겪고 있는 가난과 고통은 다 과거에 남의 물건에 욕심만 낼 줄 알고 베풀기를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보시라는 것은 정성어린 마음을 베푸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가난을 파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한탄과 원망을 그만하고 틈나는 대로 부처님을 염하십시오.”라고 말하였다.

그대로 실행한 노파는 얼마 안가 죽어서 도리천에 오백 명의 천녀를 거느린 천신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이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 계획의 달인, 봉테일

한국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비롯하여 각종 상을 휩쓸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봉준호 감독이 조감독이던 시절, 아직 무명배우였던 송강호에게 이런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오디션을 봤던 영화의 조감독입니다. 좋은 연기 정말 감명 깊게 봤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맞는 배역이 없어서 같이 작업을 못할 것 같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언젠가는 좋은 기회에 꼭 다시 뵙고 싶습니다.”

그로부터 5년 후, 이제는 제법 유명해져 섭외가 어려워진 송강호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영화출연 제의를 한 봉준호 감독에게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이미 5년 전, 출연하기로 했습니다.”

이처럼 타인을 알아주고 정성껏 배려하는 푸근한 인성과 디테일하기 짝이 없는 천재적 능력이 합쳐져 최고의 작품을 만든 것이 아닐까? 영화 <설국열차>에 출연한 크리스 에반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봉준호 감독 머릿속엔 완벽한 편집본이 들어있다. (다른 감독들처럼) 찍고 편집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 편집본 대로 찍는다.”

대부분의 영화는 미리 찍고 나중에 편집을 하는데 반해, 봉 감독은 사전에 머릿속에 편집한 내용대로 영화를 찍기 때문에 시간적 공간적 낭비가 없어 배우는 물론 스텝들도 좋아한다고 한다. 심지어 영화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직접 그림으로 그려 출연진에게 보여주니, 더욱 리얼하게 연기에 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앞서 기택의 입으로는 무계획의 계획을 말했지만, 봉 감독은 사실 계획의 달인인 것이다. 아들 기우의 계획은 무모한 계획이었고, 아버지 기택은 무계획의 계획이었지만, 봉 감독의 계획은 그림으로 그려지는 디테일한 계획이다. 이렇게 디테일한 계획이 결국 걸출한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화엄경>에서는 이렇게 설한다.

“마음은 마치 화가와 같아서 능히 모든 세간을 그려낸다. 일체가 이 그림에서 생겨나, 무엇이든 만들어낸다.” 결국 인생의 성공은 막연히 바란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림을 디테일하게 그려야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이다. 막연히 부자가 되기를 바라거나, 아무 계획 없이 살다보면 언젠가 부자가 될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가난을 팔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디테일하게 그리면서, 차근차근 보시를 실천해나가는 것이 진짜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 아닐까?

[불교신문3564호/2020년3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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