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전통사경원 개설을 바라보며

사경 최상의 법공양물이자
간경·염불·염법·사불·참선
모두 아우르는 종합수행법

불교종립학교들이 앞장서서
창의적체험활동 동아리 또는
대회 열어 사경문화 전승해야

문학박사 정향자 한국전통사경난원연구원 원장이 제19교구본사 화엄사에 전통사경원 개설을 계기로, 우리나라 사경문화의 우수함과 교육의 필요성을 알리는 기고를 본지에 보내왔다. 정 원장은 특히 불교종립학교 청소년들에게 전통사경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는데, 기고 전문을 소개한다.

정향자
정향자

지난 1월 화엄원찰 구례 화엄사에서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바로 화엄사 주지 덕문스님이 2020년을 ‘사경 수행 원년의 해’로 선포하고, 전통 사경원(寫經院)을 개설한 것이다. 고려시대 국가적인 차원에서 설치한 이후 사찰 내 사경원이 만들어진 것은 700여 년 만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남다르다.

화엄사는 754년 <대방광불화엄경>을 백지 위에 먹으로 쓴 한국 최고의 사경으로 꼽히는 국보 제196호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과 신라시대 명필 김생이 쓴 글씨를 새긴 것으로 전하는 보물 제1040호 화엄석경 등이 조성된 ‘사경 종찰’이다. 그곳에서 사경원이 다시 소생한 것은 역사적인 한 획을 그은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무엇보다 화엄사 사경원장으로 다길 김경호 원장이 취임했다는 점에서 뜻 깊다. 김 원장은 고려시대에 찬란히 꽃피웠으나 조선시대에 단절되었던 전통사경을 되살리는데 평생을 오직 ‘외길’로만 탐착하고 부단한 노력과 열정을 쏟아 부은 명장이다. 그 결과 고려의 사경문화를 되찾은 큰 공로자이기에 기대가 크다.

사경(寫經)의 사(寫)는 베끼다, 옮겨놓다, 본뜨다, 그리다 등의 뜻이 있고, 경(經)은 법, 이치 등 성인이 지은 책이라는 뜻이 있다. 사경은 경전을 옮겨 쓰는 의미와 경전을 필사한 책을 말한다. 사경의 본래 목적은 불법을 널리 펼치기 위해 불교 경전을 필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목판 인쇄술의 발달로 다량의 경전을 간행해 유포시킴으로써 사경의 본래 의미는 상실됐고, 이후 화려한 형식으로 발전하게 됐다. 

불교가 국교였던 고려시대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사경원을 설치해 국가와 왕실의 번영을 기원하는 ‘국태민안(國泰民安)’, ‘외침영식(外侵永息)’을 염원했다. 또한 개인적으로 공양이나 축복을 기원하고 심신을 고취시키며, 수행공덕을 쌓기 위하여 사경을 했다. 죄업을 참회하고, 고인의 극락왕생과 명복을 빌었으며, 자신의 현세 구복을 추구하며 사성(寫成)했다.

왕실발원경은 국가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하며 사성했기 때문에 왕실에서 고귀하고 소중하게 여겨 소장되었다. 개인발원경은 사대부들의 전유물로 소장되어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사경은 최상의 귀한 법공양물이기 때문에 법신사리(法身舍利)라 하여 불상의 복장품이나 탑봉안품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사경문화가 찬란하게 꽃피웠던 고려시대에는 국가의 충분한 재정적 지원으로 재료나 정성과 공을 들인 사경 작품들이 탄생했다. 그 작품들은 수백천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그 아름다운 빛깔이 변색되거나 탈색되지 않고 찬란하고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다.

무엇보다 사경이 소중한 이유는 청정한 정신성에 있다. 겸손을 실천하고 허영심과 자만심을 버리며, 오직 신앙과 기도와 전법의 수행이라는 의미를 지니는 데 있다. 사경은 간경(看經)· 염불(念佛)·염법(念法)·사불(寫佛)·참선(參禪) 등의 종합수행법이다. 

우리나라의 ‘고려감지금니사경(高麗紺紙金泥寫經)’은 고려청자나 고려불화와 같이 세계적인 예술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리 전통사경을 계승하려면 우수한 인재를 조기에 발굴하고 소질을 개발하는 등 청년작가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청소년이나 대학과정에서 양질의 전문 교육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 실정을 보면, 국제경쟁력의 무한한 보고(寶庫)인 전통미술이 제외되고 있어 안타깝다. 

때문에 불교종립학교에서부터 청소년들이 사경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라본다. 구체적인 방법으론 사경을 창의적인 체험활동으로 미술과목의 한 분야로 정한다던가, 방과 후 사경반, 사경 동아리를 운영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사경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또한 학교 차원에서 청소년 사경대회를 열어 아이들의 실력을 엿볼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자신이 지극정성으로 제작한 사경작품을 책상 앞에 걸어두고 좌우명으로 삼는다면 이보다 더 의미 있는 없을 것 같다. 

이와 같은 방법을 우리 불교종립학교에서 먼저 시작하길 바란다. 특히 화엄사에서 사경원 문을 연 덕문스님은 광주·전남지역 유일한 종립학교법인인 정광학원 이사장 소임을 맡고 있기에 기대가 크다. 

우리 미래 세대들이 사경의 참 의미를 배우고 성장해, 고려사경의 문화가 다시 한 번 르네상스를 맞이하길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 정향자 원장은…
2018년 한국예술문화(감지금니사경) 명인으로 선정됐다. 호남대 미술학과 강사와 소흑산중학교 교사, 아시아문화재단 사경 강사 등을 지냈다. 고려감지금니사경 실기에 관한 내용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불교신문3561호/2020년2월2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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