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글라스 비치서 떠오른 마음의 죽비
[문화人] 글라스 비치서 떠오른 마음의 죽비
  • 이소영 시인
  • 승인 2020.02.26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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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무심코 버린 유리조각
바람과 파도의 묵언수행으로
모나지 않은 ‘천연보석’ 돼

쓰레기가 분탕질한 우리 마음
묵언 통해 건강하게 바뀌어야
이소영
이소영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글라스 비치(Glass Beach)’. 이 바닷가는 놀러온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로 인해 몸살을 앓다가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며 주정부와 주민들이 각종 쓰레기 더미들을 치웠지만 깨진 음료수 병조각들은 치우지 못한 채로 무기한 폐쇄에 들어갔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40여 년 만에 드러난 그 모습은 다양한 빛깔의 화려한 보석 전시장. 그 당시 줍지 못했던 음료수 병조각들은 연금술사인 파도와 바람에 의해 갈고 다듬어져 너무도 화려하고 멋진 보석들로 재탄생한 것이다.

믿기 어렵겠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캘리포니아 포트브래그(California Fort Bragg)’의 글라스 비치 인생사이다. 그 인생사를 확인하고자 100km를 달려 가보니 사람들이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종교의식을 치르듯 경건하게 무언가를 줍고 있었다. 나도 호기심에 가서 보니 조개도 게도 아닌 형형색색의 유리조각이었다.

인간이 무심코 버린 날카로운 인공 쓰레기들을 바람과 파도, 태양이 묵언수행을 하며 모나지 않은 천연보석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맑은 바닷물에 밀려온 반짝이는 유리조각이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건넨다. “수많은 해결책을 떠들어대기보다는 순리를 따르며 묵묵히 기다리다보면 자연은 본래의 아름다움을 선물로 준다”라고.

쓰레기가 밀려드는 곳이 어디 바다뿐이겠는가. 하루에도 우리 마음에 쓰레기가 밀려와 분탕질을 하고 가는 적이 얼마나 많은가. 청정한 마음이 분노로 뜨겁게 달아올랐다가 좌절로 차갑게 얼어버리는 일들이 모두 마음의 쓰레기인 탐욕 때문이리라. 그런데 이를 탐욕이라 여겨 멀리하기 보다는 희망이라는 선물로 포장해서 그 희망을 실현하고자 애쓰는 모습을 자주 본다.

‘올해는 연봉 높은 곳으로 이직하리라.’ ‘우리 아들 SKY 합격을 위해 학군 좋은 지역 아파트로 갈아타자’ ‘이제 BMW족(Bike, Metro, Walking)에서 벗어나 진짜 BMW를 타보자’ 등등처럼. 이러한 탐욕은 전염성이 강해서 이를 삶의 우선순위에 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희망에 대한 기대감보다 ‘나’는 세상을 헛살았다는 자괴감에 젖게 만든다. 그럴 때면 수행 중 졸거나 딴 생각을 하는 스님 어깨에 노스님이 죽비를 내리치는 모습이 글라스 비치가 쓰레기 유리조각들에게 내리쳤던 죽비로 바뀌어 떠올랐다.

탐욕이 삶의 목표나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변형되어 우리를 유혹하듯이 글라스 비치에도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쓰레기들이 와글거렸을 것이다. 그런데 그 쓰레기들의 소음을 보석으로 바꾼 것이 ‘묵언’이듯이 우리 주위를 맴도는 탐욕을 건강한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것도 ‘묵언’이 아닐까 싶다. 수도자가 아니지만 불필요한 말을 삼가고 ‘나’안의 ‘나’와 대화를 나누는 묵언수행을 하다보면 건전한 욕심이 새록새록 솟아날 것이다.

‘올해는 적어도 한 달에 인문학 서적 한 권씩은 꼭 읽겠다.’ ‘일주일에 두 번은 가족과 함께 맛있는 시간을 가지겠다.’ ‘하루에 삼십 분 이상을 내 안의 나와 마음산책을 하겠다’와 같은. 그 욕심이 반복되는 일상을 보석처럼 빛내주는 에너지가 되리라 믿어 본다.

[불교신문3560호/2020년2월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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