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행복해지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 반드시 불행해집니다."
"너무 행복해지려고 하지 마세요. 그러면 반드시 불행해집니다."
  • 장영섭 기자
  • 승인 2020.02.22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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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원장 진우스님, 수계교육 참여한 행자들 상대로 특강
교육원장 진우스님이 2월21일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수계교육에 참여한 행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있다.
교육원장 진우스님이 2월21일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수계교육에 참여한 행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고 있다.

“왜 죽어야 하냐고요? 태어났으니까 죽어야 합니다. 젊으니까 늙어야 합니다. 건강하니까 병들어야 합니다. 너무 행복하려고 하니까 불행해지는 겁니다. 그러니 절에 와서 뭘 얻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조계종 교육원장 진우스님이 출가수행자로서 첫발을 내딛는 행자들과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교육원장 스님은 2월21일 제58기 사미 사미니계 수계교육에 참여한 행자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열고 이들의 발심과 정진을 독려했다. 불교의 핵심인 연기(緣起)와 인과(因果)를 쉽고 담백하게 설명해주었다.

2월12일 공주 한국문화연수원에서 입재한 58기 수계교육에는 66명의 행자들이 입교했다. 교육의 막바지, 특강을 통해 행자들과 만나게 된 스님은 “여러분들은 행운아”라며 운을 뗐다.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공부를 하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이란 으레 말하듯 도전하거나 성취하는 것이 아니다. 포기하고 ‘단념하는 것이다. 사실 행복하려고 하니까 끝내 불행해지고 만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중생은 살려고 하니까 중생이어서 죽고, 부처는 살려고 하지 않으니까 부처여서 죽지 않는다.

“인간을 크게 둘로 나누면 중생과 부처입니다. 중생은 고통을 받는 존재이고 부처는 고통이 없는 존재입니다. 마음을 크게 둘로 나누면 즐거움 그리고 괴로움입니다. 중생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 욕심을 냅니다. 그러나 욕심을 부리면 반드시 인과가 따릅니다. 차생고피생(此生故彼生).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행복을 원하니까 불행이 생기고, 살아있다는 또는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니까 반드시 죽는 겁니다. 살고자 집착할수록 죽음이 더 다가옵니다. 편안함을 추구하면 추구할수록 불편해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이것이 사바세계의 본질이고 마음의 모양이지요.”

스님은 이렇듯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정확히 정비례한다”며 자연의 비유를 들었다. “해가 뜨는 시간이 있으면 해가 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밀물이 들어오는 시간이 있으면 썰물이 빠져나가는 시간이 있습니다. 즐거움을 느끼는 시간이 있었으니 필연적으로 괴로움을 느끼는 시간이 무조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기를 쳐서 남을 속이고 이익을 얻어내면 지금 당장은 기분이 좋아지지요. 그러나 그 ‘기분 좋음’의 순간은 이미 ‘기분 나쁨’의 순간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남에게 저지른 기분 나쁨을 내가 뒤집어쓰게 되어 있다. 불교에서 계율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살생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술을 마시면 지금 당장은 유쾌해집니다. 그러나 즐거웠던 그 크기와 길이 그대로 내가 결국엔 괴로워지니까, 계율을 지켜야 한다는 말입니다.”

행복해 할수록 불행하다지만, 더 행복해지기 쉬운 사람들은 있다. “하긴 돈이 많고 명예가 높고 얼굴이 잘 생기면 세상을 살기가 훨씬 수월하겠지요. 인간으로서 최고의 조건을 가진 이는 바로 전륜성왕(轉輪聖王)일 겁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전륜성왕의 기회마저 박차고 출가의 길을 걸었습니다. 전륜성왕도 인과는 피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모든 중생은 평등하다’는 부처님의 설법은 인권이나 민주주의와는 관련이 없다. 누구나 공평하게 인과의 지배를 받으니까 평등한 것이다. “지금 신세가 좋다면 단지 좋은 ‘때’를 만났을 뿐입니다. 아울러 좋은 때를 만났으니 언젠가 올 나쁜 때를 감수해야 하지요.”

곧 끊임없이 좋아지고 나빠지는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면 좋아짐을 기대하지 않고 좋아짐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일어나면 저것이 일어나듯이, 이것이 없어지면 저것도 없어집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삶이 허무하다는 생각도 사라집니다. 참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기도를 하든, 분별의 업식(業識)을 떨치는 것이 수행입니다.”

스님의 이런 깨달음은 갑자기 오지 않았다. “내가 출가한 지 50년이 다 됐는데 30년까지는 나도 인과법을 몰랐다”며 겸허하게 털어놓았다.

“그래서 항상 내가 나에게 졌어요. 내 발등을 내가 찍으면서 중노릇을 해왔는데, 언젠가부터 부처님 법을 알게 되면서 지금은 잘 실수하지 않습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든 분별심(分別心)을 없애려고 노력합니다. 물론 여전히 욕심을 내기도 하고 망상도 피웁니다. 다만 그때마다 항상 참회합니다. 새벽마다 오늘의 명상이라는 제목을 글을 쓰는데 자랑이 아니라 다짐의 의미로 씁니다. ‘오늘도 생각을 일으켰구나 분별심을 일으켰구나’ 참회합니다. 나름대로 원칙을 세우긴 했어요. 어떤 고민을 하더라도 하루를 넘기지는 말자. 그래서 하루하루가 행복합니다.”

‘너무 행복해지려고 하지 마라. 그러면 반드시 불행해진다.’ 이튿날은 수계교육의 대미를 장식할 3000배를 하는 날이다. 온종일 땀 흘리고 고통에 겨워할 행자들에게, 스님이 오래 남을 화두를 주었다.

공주=장영섭 기자 fuel@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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