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초 애환 담은 민화(民畵)의 뿌리는 불교미술”
“민초 애환 담은 민화(民畵)의 뿌리는 불교미술”
  • 이성수 기자
  • 승인 2020.02.2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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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인터뷰]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

해학 담은 민화 고향은 사찰
조선시대 사찰 ‘미술의 보고’
18세기 이후 사회 혼란 일어
불화장인 세간에서 그림 그려

“18세기 이후 등장해 민초들의 애환과 염원을 담은 민화(民畵)의 뿌리는 불교미술입니다.”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은 불교미술에서 비롯된 민화에 불자와 국민들의 관심을 당부했다. 1300여 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불보종찰(佛寶宗刹) 통도사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는 영축산 기슭에 자리한 서운암에서 친견한 방장 성파스님은 “소박하고 파격적이며, 해학을 담은 ‘민화의 고향’이 바로 사찰”이라고 강조했다. 

조선 후기 불화 장인들이 세간으로 나와 그린 그림들이 민화의 근간이라고 강조하며 교계 안팎의 관심을 당부한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 사진 = 월간 통도
조선 후기 불화 장인들이 세간으로 나와 그린 그림들이 민화의 근간이라고 강조하며 교계 안팎의 관심을 당부한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 ⓒ월간통도

“한국의 전통미술은 원시미술과 불교미술이 결합해 고려시대 까지 이어지며 찬란한 꽃을 피웠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인해 사찰로 들어간 전통미술은 위축되었습니다.”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은 조선시대 유가(儒家)가 수묵화(水墨畵)를 주로 그리며 담채(淡彩,엷은 색채)만 사용한데 비해, 불가(佛家)는 화려한 진채(眞彩)를 활용해 미술을 발전시켰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사찰은 미술을 ‘보관하는 보물창고’ 같은 역할을 해왔죠. 그런데 유가의 수묵화나 사군자(四君子) 그림에 밀려 전통미술이 사찰로 들어가면서 한국미술은 답보 상태에 머물렀습니다.”

달도 차면 기우는 법이다. 위세 등등했던 조선의 유가는 임진왜란 이후 영향력을 조금씩 잃고, 1800년 정조가 서거한 뒤에 세도정치가 극성을 부리면서 미술도 변화가 일어났다. 순조, 헌종, 철종 3대에 걸쳐 60여 년 간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 등 외척이 득세하면서 조선 사회는 혼란에 빠져 들었다.

성파스님은 “이 무렵에 민화가 세속에 등장했다”면서 “사회가 어려워지고 경제도 나빠져 사찰 불사(佛事)까지 어려워지면서 불화(佛畵)를 그리던 장인들이 밖으로 나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민화”라고 말했다.

성파스님은 출가 초에 어른 스님들에게 들은 나라가 부패해 탐관오리들의 학정(虐政)이 이어지던 18세기~19세기의 일화를 전했다. 어느 날 양산군수가 통도사에 와서 보광전(寶光殿) 편액을 보고 “보광전이라~”라고 읽었다. 뒤를 따르던 아전이 그 소리를 듣고 자신도 ‘아는척’을 했다. “보광전이라~, ‘라’ 자가 잘 됐군…” 매관매직을 했으니 글공부를 제대로 할리 없었다. 조선 후기 상황을 짐작하게 하는 이야기이다.

성파스님은 “이런 상황에서 세상은 혼탁해지고 민초들의 삶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다”면서 “절집 살림도 힘들어 불화를 그리는 장인들이 절에서 나와 만든 작품이 민화”라고 재차 강조했다.

“누군가 한 사람이 민화를 창작해 제자를 길러 전국적으로 전파한 것이 아닙니다. 단청이나 불화를 하던 솜씨 있는 장인들이 민가로 내려와 그린 것이 민화였던 것이죠.” 스님 말씀대로 민화는 18세기 들어 조선 전역에서 동시에 나타났다. 지역적으로 조금씩 차이가 있는 화풍(畵風)을 선보였지만 큰 틀에서는 다르지 않았다.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은 “부처님 가르침과 중생의 염원이 민화에 깃들여 있다”고 강조했다.
통도사 방장 성파스님은 “부처님 가르침과 중생의 염원이 민화에 깃들여 있다”고 강조했다.

부처님 가르침 민화 스며들어
중생염원 담은 생망축이 증거
종단·불자 민화에 관심 가져야
옻칠 민화 개척 전문가 양성도

불교와 인연이 깊은 민화에는 부처님 가르침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사바세계 중생의 염원이 깃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성파스님은 “절에서 기도나 제사를 지낼 때 부처님께 기원하는 축원(祝願) 내용이 민화에 많이 등장한다”면서 “살아있는 이들의 복을 기원하는 생축(生祝)과 세상을 떠난 영가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망축(亡祝)에 담긴 메시지가 그것”이라고 강조했다.

“생축과 망축은 중생의 염원입니다. 절에서 불공을 올리는 불자뿐 아니라 세간에 사는 민초들의 바람이기도 합니다.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에서 삶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좋은 세상’을 기다리는 간절한 기도가 민화로 발현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증거가 있다. 그것은 민화에 등장하는 소재가 불교에서 나온 것이란 사실이다. 성파스님은 “부처님 손 모양을 한 남방과일인 불수과(佛手果)나 상상의 동물을 그린 영수도(靈獸圖)가 대표적”이라면서 “책장과 서책 등을 표현한 책가도(冊架圖)와 과일을 괴는 ‘괴임새’도 민화가 불교와 가까운 사실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특히 영수도의 경우 불화 장인들이 민화를 그리면서 맹수(猛獸)가 아닌 친근한 이미지로 순화되어 나타났다. 성파스님은 “예를 들어 호랑이를 세속 화가들은 사실적으로 무섭게 표현하는데 비해, 불가에서는 스님들의 염불을 듣고 감화 받은 호랑이로 그렸다”면서 “나쁜 마음으로 남을 해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불교의 가르침을 담았다”고 평했다.

통도사를 비롯한 전통사찰에는 민화 성격의 불화가 다수 전한다. 통도사 해장보각(海藏寶閣) 벽화인 ‘까치호랑이’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익살스러운 표정의 호랑이가 까치를 바라보는 모습이 미소를 자아내게 하는 그림이다. 공격 자세를 취한 호랑이와 깜짝 놀란 까치에게선 긴장감 보다는 해학이 느껴진다.

통도사 명부전에는 거북이 등에 올라 용궁으로 가는 토끼를 그린 ‘별주부도(鼈主簿圖)’, 네 마리의 학이 숲에서 노니는 광경을 표현한 ‘군학도(群鶴圖)’ 등 작품이 많다. 통도사를 ‘민화 갤러리’라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이다.

성파스님은 “통도사 전각의 벽화들이 민화가 불교와 인연이 깊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면서 “민화에는 중생교화(衆生敎化)의 부처님 가르침이 들어 있다”고 강조했다. 민화에 담긴 속뜻을 알면 불교에 대한 이해도 깊어질 수 있는 것이다.

성파스님은 “불교와 인연 깊은 민화에 관심이 부족해 안타깝다”면서 “민화작가나 민화학자들은 이같은 내용을 잘 모른다”고 지적했다. “불교를 배제하고 민화를 바라보면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모르는 것을 원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단이나 사찰, 스님들이 불교에서 비롯된 민화를 널리 알리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통도사를 비롯해 오랜 역사를 간직한 전국 주요 사찰에는 민화와 영향을 주고 받은 벽화가 다수 있다. 사진은 ‘까치와 호랑이’를 소재로 한 통도사 해장보각 벽화.
통도사를 비롯해 오랜 역사를 간직한 전국 주요 사찰에는 민화와 영향을 주고 받은 벽화가 다수 있다. 사진은 ‘까치와 호랑이’를 소재로 한 통도사 해장보각 벽화.

스님이 민화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85년 일본에서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의 <조선의 민화>를 만나면서다. “그 책을 구입해 읽었는데, 한 눈에 민화가 불교미술이라는 생각이 들었지요.” 이때부터 민화와 불교미술의 관련성에 주목한 성파스님은 “서양은 물론 중국과 일본 등 다른 동양 국가에는 없는 화풍”이라면서 “민화가 앞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그림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다소 창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지만, 앞으로는 민화인(民畵人)이 늘어나 영향력은 더욱 확대될 것입니다.”

전문 화가가 아닌 일반인도 쉽게 접근해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것이 민화의 장점이다. 성파스님은 “1년 정도만 꾸준히 공부하면 완성도 있는 민화를 그릴 수 있다”면서 “이제는 국전(國展)에도 민화 부분이 생겼고, 미협(美協)에서도 민화작가를 회원으로 인정하는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스님은 직접 민화를 그리기도 한다. 특히 처음으로 옻칠을 이용한 민화를 만들어 세인의 주목을 받았다. 5년째 옻칠 민화작가를 지도해 국전 특선과 민화공모전 대상자도 배출했다. 지난 1983년 옻을 이용한 개인전을 처음 연 이후 국내외에서 전통 옻과 불교미술을 접목한 전시를 10여 차례 열기도 했다.

한국 고유의 전통미술을 계승한 민화, 특히 옻칠 민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수행과 예술이 둘이 아님을 손수 보여주며 정진하는 스님은 “불교뿐 아니라 우리 전통미술의 우수성을 전하고 싶다”면서 “사찰에 뿌리를 두고 있는 민화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옻칠 민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통도사 방장 스님의 작품. 맹수가 아닌 소박하고 해학을 담은 호랑이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옻칠 민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통도사 방장 스님의 작품. 맹수가 아닌 소박하고 해학을 담은 호랑이가 친근하게 느껴진다.

성파 대종사는…
1960년 통도사에서 월하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통도사강원을 졸업하고, 1970년 비구계를 수지했다. 문경 봉암사 태고선원 등 제방 선원에서 정진했다. 영축총림 통도사 주지, 제5·8·9대 중앙종회의원, 총무원 교무부장· 사회부장을 역임했다. 통도사 서운암에 주석하며 28년간 민족통일의 원력을 담은 도자삼천불과 16만도자대장경을 조성했다. 옻칠 불화, 민화, 서예, 천연염색 등 전통문화예술 발전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17년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2018년 희귀병 소아암을 앓고 있는 어린이 환우들을 위해 5000만원을 기부하는 것으로 통도사 방장 추대법회를 대신했다. 현재 조계종 원로의원과 영축총림 통도사 방장으로 수행정진하며 후학을 인도하고 있다.

통도사=이성수 기자 soo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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