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어내도 또 떨어질 낙엽 치우듯 ‘마음마당’ 정화

동안거 중에 행한 통도사 포살법회.
동안거 중에 행한 통도사 포살법회.

“살면서 업을 쌓고 또 쌓는다면 참회는 왜 하는 것입니까?” 

행자의 질문에 성철스님은, “마당에 낙엽이 떨어졌을 때 빗자루로 쓸거나 쓸지 않는 것은 천지 차이다. 매일 쓸다보면 언젠가 깨끗해지는 날이 오는 법”이라 답하였다. 우리는 또 업을 짓게 될 줄 알지만 참회한다. 또 낙엽이 떨어질 줄 알지만 비로 쓸듯이. 비로 쓸어 깨끗해진 마당, 참회하여 맑힌 마음을 귀하게 여긴다면 우리의 마음마당도 점차 맑고 깨끗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동안거 해제와 함께 전국 곳곳에서 출가자들이 스스로의 허물을 돌아보고 참회하는 포살법회(布薩法會)가 펼쳐졌다. 그런가하면 예참기도(禮懺祈禱)로 자신을 정화하여 삶을 재충전하는 불자들이 늘어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사찰마다 예참기도가 활성화되어가는 것은 불자들이 이를 통해 참된 자기희열을 느끼면서 기도의 만족도가 높기 때문일 것이다.

포살도 예참도 모두 자신의 허물을 돌아보는 참회수행의 의식이다. 오늘날 한국불교에서는 참회를 어떻게 이끌어가고 있으며, 그것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동안거 해제에 일제히 펼쳐진 포살을 계기삼아, 불교 참회의식의 모습을 살펴본다. 

출가자의 참회, 포살과 자자

강원 학인스님들의 포살은 일상 속에서 이루어진다. 하루일과를 마무리하는 공사(公事) 시간이 되면, 그날 자신이 지적받은 것을 고하며 스스로 참회하거나, 주로 윗반에서 아랫반 학인들의 위의에 맞지 않는 행동을 지적한다. 이때 큰 잘못일 경우 소임자가 참회법의 정도를 정해주지만, 때로 자참(自懺)이라 하여 스스로 참회의 경중을 정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자신의 허물을 참회하면서 “천배로 자참하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강원(승가대학)은 대중생활의 첫걸음이기에 자칫 수행자로서 위의에 어긋나는 언행을 하기 쉽고, 자신도 모르게 남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특히 대중방에서 함께 생활하며 정진하는 한국불교의 강원생활은 엄격하기로 이름 높다. ‘○○사관학교’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면서 허물에 대해 자타 없는 경책이 따르는 것이다.

이처럼 구족계를 갖추기 전까지 연마해가는 강원생활 속에 포살(布薩)과 자자(自恣)에 해당하는 대중참회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에 합당한 참회법이 따르면서 자신의 허물을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는다. 

‘포살’은 부처님 당시부터 출가수행자들이 보름과 그믐마다 계본(戒本)을 낭송하며 죄가 있으면 대중 앞에서 고백하고 참회하는 법회였다. ‘자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의 허물을 지적해주며 함께 고쳐나가는 적극적인 참회방식이었다. 그렇게 초기승단에서는 출가자의 생명인 계율을 거울삼아 스스로를 돌아보며 청정한 지계정신을 이어온 것이다. 

강원을 졸업하면서 이러한 대중참회는 사라지고, 참회는 개인의 영역에 머물게 된다. 초기승단과 비교하자면 오늘날의 포살은 이원화되어, ‘계본낭송’은 포살법회로 전승되고 ‘대중참회’는 자율적인 것이 되었다.

몇몇 선원에서는 해제 전날 대중방에서 자자포살을 하기도 하나, 서로 감정을 다치는 일이 많아 스스로 참회하거나 안거의 소회를 밝히는 정도에 머문다고 한다. 토론하는 집단지성을 기반으로 하는 대중참회의 어려움과 나란히, 계(戒)를 새기는 포살법회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포살법회에 함께 참석한 안거 중의 재가불자들.
포살법회에 함께 참석한 안거 중의 재가불자들.

재가자와 함께하는 대승포살

한국불교에서는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결제대중이 모여 보름과 그믐마다 포살을 하고 있다. 신라에 포살의식을 확립시킨 자장율사(慈藏律師)는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계를 설하고 보름마다 포살을 행하는 전통을 세웠다. 따라서 몇 해 전, 우리나라 포살의 역사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통도사의 포살법회에 참관한 적이 있다. 안거중인 스님과 재가자들이 함께 모여 행하는 여법한 대승포살의 법회였다. 

의식은 포살의 핵심을 담아 간단명료하게 진행됐다. 법사 스님이 법상에 오르면, 먼저 법사가 묻고 유나가 답하는 작전방편(作前方便)이 이어진다. 이를테면 “대중 가운데 보살계를 받지 않은 이와, 청정치 못한 이는 없습니까?”라는 질문이 있는데, 보살계를 받지 않으면 포살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법사는 지금부터 설하는 계를 듣고 죄가 있으면 마땅히 참회할 것을 일러 포살의 형식을 갖춘 다음, 사부대중이 다함께 십중계(十重戒)를 낭독하고 이어 법사가 사십팔경계(四十八輕戒)의 제목을 낭독하였다. 

초기불교에서는 출가자포살과 재가자포살이 엄격히 분리되고, 계본의 경우 <사분율>의 250계․348계 바라제목차를 대상으로 삼았으며, 계본낭독은 계목(戒目)을 듣고 자신이 이를 어긴 적은 없는지 참회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이에 비해 우리의 경우 사부대중이 함께하는 포살법회가 일반화되고, 출세간에 두루 통용되는 <범망경>의 10중계․48경계가 중심을 이루며, 계목을 함께 읽는 가운데 각자 마음속으로 참회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참회수행에 출가와 재가의 구분을 두지 않으면서 대승불교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안거에 든 출가수행자들이 주기적으로 계율과 보살행을 새기는 것은, 포살 전날의 삭발과 무관하지 않을 법하다. 보름마다 날카로운 삭도로 무명초(無明草)인 머리카락을 밀어내듯이, 자신도 모르게 싹트는 무명(無明)을 돌아보며 버려야 할 것을 과감히 잘라내는 것일 터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본낭송과 나란히, 선방납자들이 자율적인 포살과 자자로써 부처님이 만들어 놓으신 옛길을 따라 걷기를 바라본다. 

부처님 앞에서 참회하는 예참

방송에서 어느 불자가 말했다. “부처님 앞에서 무조건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하고 절을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집니다.” 참회기도를 할 때 눈물이 흐르는 것은 참회하는 마음이 가장 순수하기 때문이고, 참회는 진심으로 자신과 마주하여 화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에서 기도란 ‘잘못했습니다’ 하고 지극히 참회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라 한다. 

이처럼 모든 기도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참회기도는, 이른 시기부터 부처님 앞에서 자신이 지은 허물과 삼업을 참회하는 하나의 의식으로 정립되어왔다. 예찬과 발원의 형식이 갖추어진 이러한 참회의식을 예참(禮懺)․참법(懺法) 등이라 부른다. 법화예참․화엄예참․관음참법․미타참법․자비도량참법 등은 모두 특정경전에 의거해 해당 불보살을 모시고 예배하며 참회하는 가운데 원을 비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자비도량참법은 한국불자들이 가장 많이 행하는 예참기도 중 하나이다. <자비도량참법(慈悲道場懺法)>은 참회의 총서라 할 만큼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경전으로, 양나라 무제(武帝)의 꿈에 죽은 부인 치 황후가 나타나 자신의 잘못을 깊이 참회하며 구제해줄 것을 간청하자, 고승들에게 여러 경전의 참법을 참조해 펴내도록 한 것이다.

치 황후는 생전에 질투가 심해 궁녀를 살해한 업보로 구렁이가 되었으니 자신을 위해 공덕을 닦아주기를 부탁했고, 무제가 이 책으로 지성껏 참법을 닦자 천상의 선인으로 환생했다고 한다. 

책을 펴낸 동기도 누구든 업에 따른 과보를 받는다는 점, 그리고 큰 악업을 지었더라도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고 공덕을 지으면 구제를 받는다는 점을 말해준다. 이 기도의 특성은 자신의 죄업만이 아니라 모든 중생의 죄업을 내 허물로 삼아 참회하고 발원하는 데 있다. 열권에 이르는 방대한 경전을 모두 읽고 절하며 자리이타의 참회로 업장을 소멸시켜나가는 것이다. 
 

마곡사 자비도량참법기도 중 절을 올리는 불자들.
마곡사 자비도량참법기도 중 절을 올리는 불자들.

‘독송’과 ‘절’로 삼매에 들다 

자비도량참법기도는 독송과 절이 기본을 이룬다. 방대한 분량을 낭송으로 독파하고, 열권에 걸쳐 불보살의 명호가 1680번 등장하기에 이때마다 오체투지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개 기도는 닷새에서 열흘 정도에 걸쳐 회향하며, 날짜에 맞춰 열권을 적절히 분권해 독송하게 된다. 예참기도는 시기와 무관하게 언제든 이루어지고 특히 하안거해제일인 백중, 성도절, 열반절과 출가절, 관음재일 등에 많이 행한다. 

관음재일에 기도가 많은 것은 <자비도량참법>이라는 경전명과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대자대비(大慈大悲)’의 관음보살을 섬기는 날에 ‘자비도량’의 참법기도를 올리는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전에 수많은 불보살의 명호가 나열될 때면 늘 ‘미륵보살’로 시작해 ‘관세음보살’로 끝을 맺는다. 이에 ‘자비’라는 경전명이 자(慈)의 미륵보살과 비(悲)의 관세음보살에 의지해 칭명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기도의 첫날은 버들가지로 청수를 뿌려 법단을 정화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이는 감로수를 삼천세계에 두루 뿌려 아귀들이 죄업을 씻고 고통에서 벗어나며, 타오르는 불길이 연꽃으로 변하게 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어 각권을 함께 독송하는 나날마다 스님의 축원으로 마무리하는 가운데 마지막 회향 날을 맞게 된다. 

참회기도로 널리 알려진 도선사의 경우 매년 2월의 관음재일에 백일기한으로 자비도량참법기도를 올리는데, 하루에 한 권씩 열흘마다 회향법회를 하는 방식이다.

봉은사에서는 연간 두 차례의 자비도량참법기도를 열흘간에 걸쳐 올리고, 마곡사에서는 보살계 수계를 위한 사전 참회의식으로 일주일간 이어진다. 김천 구룡사와 창원 구룡사처럼 자비도량참법 천일기도를 이어가는 사찰이 있는가하면, 선운사처럼 홀수 달 관음재일마다 저녁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하루철야로 올리는 곳도 있다. 

자비도량참법기도의 환희심을 체험한 불자들은 온전히 기도삼매에 든다. 독송하는 구절마다 자신과 중생의 죄업을 보며 참회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지금 이 자리가 과거에 맺은 업을 푸는 동시에 새로운 업을 만드는 자리임을 깊이 새기는 순간이다. 

[불교신문3559호/2020년2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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