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화엄경 종강하던 날
‘난’에서 일곱송이 꽃 피었다


바람막이도 없는 사천왕문 ‘난달’에서
강주 소임 4년여 간 새벽예불 덕일까

선행스님
선행스님

계법에 의해 신ㆍ구ㆍ의(身口意)를 방호하여, 과실을 수습하고 갈무리하는 것을 내호(內護)라 한다면, 수행과 불법 홍포를 위해 후원하고 돕는 일을 외호(外護)라 한다. 관례로 수행과 정진을 위한 전반적인 일, 곧 사무 행정과 제반여건을 관리하고 주관하는 일을 도맡아 하는 이를 외호 대중이라 한다. 또한 종무적으로 주지 스님을 위시한 소임자와 나아가 단월(檀越, 시주자)까지도 포함되겠다.

특히 가람(伽藍, 도량)을 외호하는, 사찰 토지신을 모신 전각으로 가람각이 있다. 통도사의 가람각은 건립한지 300년이 넘은 지금까지 그 전각에서 연례행사로 면면히 이어온 의식이 있다. 섣달그믐날 한밤중 그것도 자정에 맞춰 주지 스님을 위시한 소임자와 긴 세월을 지나면서 이어온 행사로 인해 자연스레 동참하는 신도들도 상당하다. 이는 소임자뿐 아니라 불자들도 외호 대중이라는 의미이다. 그날 의식의 주관은 주지 스님이다.

일찍이 현재 주지 스님은, 20년 전 선원에서 함께 정진했다. 1990년대 말에 종단적인 일로 통도사 사중에서는 이런저런 일이 있어, 그 중심적인 역할로 여러모로 힘든 상황에서 스님을 뵈었다. 그래서 일까. 스님은 새벽 3시에 입선(入禪)인데도 늘 한 시간 전에 기상하여 철저하리만큼 정진에 매진한지 반 철(달 포)쯤 지나 말씀하셨다. “마음이 편안하네요!” 그간의 마음고생(?)을 다 내려놓은 듯한 일언(一言)이셨다.

해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통도사 주지 스님으로 부임해서 임기를 마치고, 제방 선원에서 10여 년 더 정진하셨다. 총림의 주지 소임은 한 번 하기도 어렵다고 하는데. 재차 주지 소임을 하게 된 것은 그간의 기도와 정진한 공덕이라 여겨진다. 모쪼록 원만한 원융산림이 이루어져 훗날 ‘외호 선지식’으로 전해지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난 2005년도에 백양사 강주로 부임했다. 당시 30여년 강주 소임을 지내신 스님으로부터 당부의 말씀을 들었다. 도량의 안정을 위해 그동안 사천왕문에서 새벽예불 후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기도를 하셨단다. 뒤를 이어 차질 없이 기도하기를 바란다는 말씀이셨다. 당부대로 4년여 지내는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고 기도했다. 이렇다 할 바람막이도 없는 난달이어서, 한겨울엔 통로에 지나는 바람이 거셌지만 별 장애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그 공덕이었던지, 강원에는 별 탈 없이 세 반 모두 <화엄경> 본문을 끝까지 공부했는데, 그 중에 한 반은 12월 한겨울에 화엄경을 종강하던 날, 방에 방치되어 시들했던 난에서 7송이 꽃이 피었다. 그러려니 했는데 그 모습을 본 학인 스님은, “저희들 6명과 강주 스님까지 7명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순간 감동이 밀려왔다.

도량의 안정을 위한 기도였지만 가피라 느껴졌다. 기도의 가피는 꿈속에서 현몽하듯 나타나고, 모르는 사이에 그윽이 나타나기도 하며, 눈앞에서 확연히 나타난다고 했는데, 왠지 화엄경의 위신력과 함께 기도 가피로 여겨져 내심 흐믓했다.

그저 산속에서 무슨 일이 있을까 싶어도, 대중 생활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상황이 일어날 때가 있다. 이에 대중을 대표하는 소임자는 때론 그러한 상황까지도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하기에, 일상 기도와 정진하는 자세로 대중을 외호하는 마음이어야 한다. 그래서 예전부터 승가의 소임을 ‘닭 벼슬’이라 했는가 보다. 외호하는 대중은 늘 정진의 끈을 놓지 않고 임해야, 소임을 놓은 이후에도 여법해 질 수 있다는 뜻이겠다.

외호 대중의 공덕이 깊을수록 정진대중과 도량은 외호무외(外護無畏) 곧 팔부신중 등 선신이 보호하여 뭇 마구니의 장애에 두려움이 없게 되리라. 그만큼 외호 공덕이 지대하다 하겠다.

선행스님 영축총림 통도사 한주

[불교신문3559호/2020년2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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