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몇 잔에 울음 터트린 여학생
기대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 이를
선뜻 안지 못한 건 두려움 때문

혜인스님
혜인스님

절이 시끄러워졌다. 새로운 식구가 된 강아지 두 마리가 내 방 앞에 묶여 연신 낑낑대며 울어대는 통이다. 한 친구는 생후 5개월 정도 된 아직 어린 놈이고, 다른 한 친구는 더 어린 동생 놈이다. 뻥 뚫린 산속 환경이 아직 낯선지 많이 어색해하고 불안해한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첫날부터 바위 가득한 절 뒷산을 아장아장 완주한 동생과는 달리 형이란 놈은 벌써 두려움과 망설임을 배웠는지 뒷산 한 바퀴를 도는 데에만 3일이 걸렸다.

에효. 이번 동안거는 유독 바빴던 터라 해제하면 다시 좀 기도에 매진할 계획이었는데, ‘인정(人情)이 농후(濃厚)하면 도심소(道心疎)’라. 당분간은 낑낑대는 새 식구들 덕분에 정진 계획이 또 미뤄질 판이다.

산은 날이 지면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야생동물들 소리가 들려오기 마련인데, 특히나 아장아장 작은 놈은 뭐가 그리 무서운지 젖 먹던 힘까지 쏟아내며 밤새 소리치는 바람에 잠시 방에 데리고 들어오자 맹렬하게 품에 안기며 겨우 쌔근거린다. 처음 보는 사람품에 안간힘을 써가며 파고드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아이.

자꾸만 품으로 달려드는 이 녀석들에겐 부처도 법도 필요 없어 보인다. 그저 지금 당장 따뜻하게 안아주는 사람이 부처님이고 하느님일 테지. ‘아이고, 얼마나 낯설고 무서울까….’ 인정(人情)이 자꾸 농후(濃厚)해지는 걸 보면 내 도심(道心)은 아직 성기기(疎) 그지없다.

지난 겨울 우리 절에 왔다가 내가 내려주는 차 몇 잔에 벌컥 울음을 터뜨린 여학생이 있었다. 유독 오랫동안 울어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무엇이 그리 슬픈지 물어보니 망설이며 대답하는 사연에 나도 함께 슬퍼졌었다. 좋은 얘기를 해준답시고 위로하는 스님의 말에도 쉽사리 눈물이 그치지 않자 “스님이 한번 안아줄까?”하고 말했더니, 대답 없이 그렁그렁 나를 쳐다보는 눈이 무언의 긍정처럼 느껴져서 다시 이렇게 말했었다.

“안아주고 싶지만 스님이라 젊은 처자한테 그럴 수 없으니까 옆에 언니가 좀 안아주세요.” 언니가 안아주자 참았던 울음을 다시 터뜨렸다. ‘그래도 내 앞에서 실컷 울고 나니 좀 후련해졌겠지.’ 좋은 마음으로 그 처자를 보내줬었다.

이 이야기를 우연히 뵙게 된 노 거사님 한 분께 말씀드렸더니 되레 언성이 좀 높아지신다. 나이 든 저도 스님을 보면 기대고 싶고 위로받고 싶은데 젊은 처자라고 해서 안 안아주면 어떡하냐고. 다음부터는 꼭 안아주라고. 스님께 실망이라고. 다그치시는 듯한 말투에 나는 변명을 포기하고 속으로만 생각했었다. ‘그게 나에겐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직 모르시는가 보다.’ 그리고는 거사님을 배웅해드리며 돌아서는데 그분 말씀에 불현듯 그때의 내가 다시 떠올랐다.

나는 젊은 여학생을 배려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렁그렁 나를 쳐다보던 그녀의 눈빛에서 ‘혹시 스님인 나를 남자로 생각하게 하면 안 되지’ 하고 생각했는데, 그게 배려가 아니었구나. 그녀를 안으면 혹시라도 내가 그녀를 여자로 느낄까 두려웠던 거구나.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젊은 여자나 안고 다니는 스님이라고 욕할까봐 망설였던 거구나. 그 거사님은 내 두려움과 망설임에 실망하셨던 거구나. 두려움과 망설임 때문에 산책하는 데만 사흘이 걸린 다섯 달 배기 강아지와 내가 다를 게 뭐람.

나는 가끔 스님들 점수부터 매기려 드는 어른들을 보며 편견 없이 쉽게 친해지는 아이들이 더 어른스럽다는 생각을 했었다. 방 앞에서 연신 짖어대는 어린 강아지들이 내 구도심을 방해한다고 생각했었다. 노 거사님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나를 다그치신다고 생각했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것은 나인데. 어른스럽지 못했던 것은 나인데. 안아주지 못했던 것은 나인데.

혜인스님 고양 중흥사

[불교신문3559호/2020년2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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