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신문이 만난 사람] 40만 팔로워 거느린 이찬재-안경자 부부
[불교신문이 만난 사람] 40만 팔로워 거느린 이찬재-안경자 부부
  • 이경민 기자
  • 승인 2020.02.22 18: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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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 부럽지 않은 핵인싸…“인생 3막 열렸죠”
40만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이찬재 안경자 부부를 지난 1월16일 경기 부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신재호 기자
40만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이찬재 안경자 부부를 1월16일 경기 부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우리 절에 불심 깊은 부부가 있는데 언제 한번 소개하고 싶어요. 30년 넘게 매주 법회에 빠지지 않고 나오는데다 연꽃 만들기는 물론 사찰 행사 돕는데도 솔선수범이고, 그림 실력도 얼마나 뛰어난지 몰라요. 한인사회에서는 이미 유명해요. 얼마 전 ‘세계한인의날’에 한국 정부 표창도 받았다니까.” 몇 해 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들려온 소식이었다. 상파울루 봉헤치로에 위치한 진각사 주지 보장스님은 “부부가 조만간 한국에 돌아간다고 하니 직접 만나보라”고 재차 권했다.

브라질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온 이찬재 안경자(78) 부부를 만난 건 1월16일, 3년사이 부부는 이미 유명인이 돼 있었다. 페이스북 크리에티브 디렉터이기도 한 아들 이지별 씨 권유로 시작한 인스타그램(drawings_for_my_grandchildren)이 입소문을 타면서 팔로워 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기 시작했던 것.

미국 뉴욕과 한국에 사는 손주들을 생각하며 그린 그림이 한국은 물론 영국 BBC, 가디언지, 미국 NBC 등에 소개됐고 지난해 기어이 인터넷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제23회 웨비어워드(The Webby Awards)’ 소셜 부문 예술문화상을 수상했다. 이제는 엄연히 40만 팔로워를 거느린 SNS 스타, 인플루언서 부부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인스타그램에서 핫한 부부의 게시물은 모두 이찬재 씨가 직접 그리고 안경자 씨가 글을 써 완성한 것이다. 게시물을 올리면 순식간에 댓글 수십개가 달릴 만큼 인기다. 가족이 소소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부터 부부의 어린 시절이 담긴 1950년대 한국의 옛 풍경, 브라질 교포사회의  세계적 이슈가 됐던 호주 산불과 NBA 전설 코비 브라이언트의 소식까지, 스토리텔링에도 경계가 없다.

아들 설득에 떠밀리듯 시작한 일
나이 70넘어 새로운 세상과 마주

이찬재 안경자 부부가 처음부터 아들의 권유를 반긴 건 아니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보낸 그림 엽서를 떠올린 이지별 씨가 그림을 권유했을 때만 해도 이찬재 씨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했다.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운 것도 아니고 취미 생활로 계속 해왔던 일도 아니었기에 재차 손사래를 쳤다던 이 씨였지만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기억할만한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계속된 설득에 떠밀리다시피 시작했다고.

처음엔 공원에 가 야자수와 경찰관 등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거나 그렸다. “좋다” “괜찮다” “뭐라도 좋으니 매일 꾸준히 그려보자”는 가족의 응원에 조금씩 용기가 났다. 그렇게 내딛은 한 발짝, 인생 3막을 연 이찬재 씨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펼쳐지고 있다”며 “새 인생을 사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림에 날개를 달아준 건 안경자 씨 글이다. 특유의 감수성과 위트로 풀어낸 해설이 따뜻하고 담백한 그림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면서 부부가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기 시작한 것. 한국에선 국어 교사로 브라질에선 한인회보 편집장 등을 지내며 솜씨를 발휘해온 능력이 톡톡히 제 역할을 했다.

안 씨는 “글을 올릴 때마다 눈물이 난다거나 감동받았다는 댓글이 폭발적으로 달리는 걸 보고 놀랐다”며 “일상의 작고 소소한 이야기들이 젊은 층이나 여성들의 감성을 울리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대 커플로 만나 백년가약
손주 그리며 ‘그림편지’ 시작

반세기를 함께해온 부부가 처음 연을 맺은 건 서울대 재학 시절의 일이다. 학과 시화전에서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린 인연으로 백년가약을 맺었다. 졸업 후 각기 다른 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던 부부는 안경자 씨 친정의 권유로 1981년 브라질로 터전을 옮겼다. 교직을 내려놓고 의류업에 종사하며 아들 지별 씨와 딸 미루 씨를 길렀고 은퇴 후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하지’와 ‘하니’라 부르는 손주들 재롱 보는 즐거움으로 살았다.

헛헛함이 찾아온 건 2015년, 5년 동안 매일 마주하던 금쪽같은 손주들이 한국으로 거처를 옮기면서부터다. 손주들을 보고 싶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기 위해 시작한 SNS 그림편지, 부부는 ‘알뚤’(Arthur), ‘알란’(Alan), ‘아스트로’(Astro), 세 손주들 앞글자를 딴 ‘for AAA’를 그림 속에 새기며 그리움을 조금씩 삭였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인생 3막’도 그 때 열렸다.

쏟아지는 인터뷰와 강연 요청, 그림책 발간, SNS를 위해 매일 빠지지 않고 그리는 그림과 글쓰기까지, 부부는 요즘 매일이 새 날 같다. 70을 넘어 삶의 마지막을 바라보는 노년, 안경자 씨는 재능찾기엔 늦음이 없다고 말했다. “어린 아이들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살피는 것처럼 은퇴하신 나의 아버지, 어머니를 자세히 들여다보길 권합니다. 사진, 붓글씨, 화초 기르기, 오카리나 등 여러 곳에서 의외의 것이 발견될 수 있어요.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겁니다.”

상파울루에 진각사 들어서면서
교포사회 모범 불자로 거듭나

온화하게 웃는 얼굴이 똑 닮은 부부는 신심깊은 불자이기도 하다. 이찬재 씨는 “큰 아버지가 스님이나 마찬가지였다”며 “외갓집이 독실한 불교 집안”이라고 했다. 모태 신앙인 이 씨와 달리 안경자 씨는 뒤늦게 불교를 접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불교종립학교인 명성여고(현 동대부여고)에 재직하며 한 달에 한번 스님들 법문을 들었다.

“교사들을 대상으로 스님들 법문을 듣는 자리가 있었거든요. 운허스님, 법정스님, 광우스님, 무진장스님 등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한 스님들도 그때 많이 뵈었죠. 10년 넘게 법문을 듣다보니 저도 모르게 감화가 많이 됐던 것 같아요.”

교사 재직 시절 맺게 된 불교와의 인연은 브라질에서도 이어졌다. 부부가 살던 상파울루에 1983년 처음 절이 들어오게 된 것. 이찬재 씨는 “관음사(지금의 진각사)가 상파울루에 들어서면서 교포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신도는 적지만 법회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며 “기독교와 달리 비교도 안되는 포교 불모지에서 진각사가 자리잡기까지 수년이 걸렸다”고 했다. 

어렵게 운영되는 절을 보다 못해 부부는 남몰래 불사금도 많이 냈다. 호기심에 찾아온 교포들이 한글로 된 법문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면 포르투갈어 통역도 자처했다. 부처님오신날 행사 때마다 연꽃등을 만들고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신도가 많지 않으니 법회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일이 먼저였다. 안경자 씨는 “사람이 없으니 머리수라도 하나 채운다는 심정으로 몸이 아파도 절에 나갔다”고 했다. 

기독교세가 강한 교포 사회에서는 힘든 일이었다. 이 씨는 “아이들이 친구들을 따라 교회에 가곤 했는데 그 때마다 ‘엄마 아빠는 왜 같이 안 오시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부모님하고 교회에 같이 오라’는 말에 애들이 ‘우리 부모님은 불자에요’라고 대답했다고 하더라. 한번은 친구들과 집에 놀러 온 적이 있는데 벽에 걸린 ‘하회탈’ 때문에 놀림을 받은 적도 있었다. 어린 아이들 눈에는 그게 부처님 얼굴로 보였나보더라. 하하”

이지별 씨 수만개 부처님 프로젝트
공공외교 등 선한 영향력 끼지고 싶어

아이들에게 ‘절에 가자’고 한번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불심은 자연스레 세대를 타고 이어졌다. 이 씨는 “아들이 뉴욕에서 대학을 다녔는데 언제 한번 숭산스님이 계시던 미국의 한 사찰에서 한달 동안 용맹정진을 했다고 하더라”며 “‘아빠가 불자라고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불교는 불교가 아니야’라고 하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말했다.

실천불교의 일환으로 아들 이지별 씨가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라는 말도 귀뜸해줬다. ‘석굴암 본존여래좌상’ 수만개 모형을 손가락 크기로 제작해 뉴욕 곳곳에 두는 것. 지하철역, 나무 아래 등 사람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좌상을 두고 누구라도 언제 어디에서나 부처님을 친견할 수 있도록 한 프로젝트다.

이찬재 안경자 씨 또한 나름의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지난해 외교부 제안으로 공공외교에 대해 강연을 하기도 한 이 씨는 “단지 손자들을 위해 올리기 시작한 그림이 한국과 브라질 양국의 문화 소통에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가슴이 뿌듯했다”며 “특별한 계획이라기 보다 지금처럼 매일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부부의 그림과 글 하나하나에는 따뜻한 온기가 담겨 있다. 반세기 넘게 고락을 함께 해 온 부부가 퍽퍽하기만 한 고된 삶에 전하는 따뜻한 위로이자 응원이 듬뿍 담긴 덕이다.

[불교신문3559호/2020년2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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