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음과 어둠의 경계…‘최고 순간’을 만나다

#1

경사진 언덕을 조금 걸어 일주문을 지났다. 담도 없고 닫을 수 있는 문도 없이 기둥에 지붕 하나 뿐인 그 자리를 지나는 순간 고요한 공기가 몸을 감싸는 기분이 들었다. 우선 거대한 부처님의 열반상과 오백나한을 보고 싶어 다른 전각은 지나치고 올라 와불전 앞에 섰다.

한쪽에 열린 문으로는 부처님의 얼굴이 보이고, 다른 문으로는 가지런히 모은 발이 보였다. 누군가는 가족의 안녕을 빌며 절을 올리고, 누군가는 천진한 눈으로 부처님의 감은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누군가는 합장하고 법당을 돌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방법으로 부처님과 닿아 있는 순간이었다.
 

#2

아직은 추운 공기에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해질녘을 기다렸다. 나른한 오후의 햇살에 눈이 스르르 감긴다. 참 오랜만에 기분 좋은 졸음이 몰려왔다. 오랜 불면증과 두통에 시달려본 사람은 알 것이다. 베개에 머리만 갖다 대면 스르륵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고 아침이면 개운하게 눈 뜰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깊게 잠들지 못하는 나에게는 몸이 견디지 못하는 순간 억지로 겨우 잠깐 눈붙이는 밤이 있을 뿐이었다. 늘 약간은 몽롱한 상태로 지내는게 일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깊은 잠에 빠져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절집의 편안함과 맑은 공기와 바다 바람이 잠을 불러오는 것일까?

다시 절 마당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가 법당 창호를 통해 안을 들여다봤다. 부처와 보살, 나한이 가득한 공간은 금빛이 가득한 보석 상자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놀랍고 아름다웠다. 
 

#3

서방정토를 바라보는 마애불을 등지고 바다를 바라봤다. 해가 거의 사라진 바다와 하늘은 밝음과 어둠의 경계에 있었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부분은 노랗고 붉은 빛이 길게 띠를 두르고, 나머지는 푸른빛과 어둠이 덮고 있었다. 나는 10여 분을 지나면 어둠으로 사라질 이 순간을 보기 위해 이 자리에 섰고, 최고의 순간을 만나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 눈으로 담아온 이 자리의 빛과 어둠을 서둘러 그림으로 남기고 싶어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일주문까지 들어간 그대로 돌아 나오다 멈춰선 절 마당은 겨울이 물러가고 봄의 기운을 품고 있었다. 

배종훈 bjh4372@daum.net

[불교신문3558호/2020년2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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