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
김영

아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엄마가 보낸 글에 대한 답신이 아니라 아들이 먼저 기척을 보내오는 것은 드문 일이다. 클릭해보니 동그란 접시에 소담스레 담긴 음식 사진 한 장이 뜬다. 볶음밥에 채소 샐러드, 돈가스, 오리고기, 그 사이로 배추김치도 보인다. 이어 3300원짜리라는 멘트가 달린다. 아들의 저녁 메뉴, 회사 식당밥이란다. 나도 쿨하게 “괜찮아 보이네”라고 답문을 보낸다. 

취준(취업준비생) 생활을 정리한 아들이 첫 직장에 들어간 지 3주차다. 집과는 먼 남쪽 지방에서 근무하게 된 아들의 근황이 궁금하지만 참는다. 엄마는 신춘문예 응시생으로, 아들은 취준생으로 동병상련이었던 우리는 가끔 늦은 점심을 먹으러 야외로 나가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나들이 겸 산책하러 간 옥산서원에서 알게 된 곳이 ‘계정(溪亭)’이다. 

계곡 위에 자리 잡은 계정은 오래된 한옥 특유의 품격과 안온함으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뒤편으로 선경이 펼쳐져 더욱 운치가 있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세요’라는 안내문이 우리를 유혹했다. 우리는 신발을 나란히 벗어두고 마루 위로 올라섰다.

평일이어서인지 인적도 없어 깊은 산중에 와 있는 것 같았다. 너럭바위 사이로 맑은 자계천이 내려다보였다. 비취색 소(沼)엔 낙엽들이 물에 잠겨있었다. 간간이 새소리가 들리고,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도 들려왔다. 

아들이 마루에 드러누웠다. 상대의 숨소리도 들릴 만큼 고요한 이곳. 나도 한쪽에 누웠다. 같은 공간이어도 누워서 보는 것과 서서 보는 것은 확연히 달랐다. 누각의 천장과 하늘, 등에 닿는 딱딱한 마루의 감촉이 신선했다. 색다른 느낌, 새로운 세계였다. 

찰나(刹那)의 깨달음 같은 것이었을까.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 평화로운 한순간이 지나갔다. 잠시였지만, 초연함을 맛본 축복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수직에서 수평으로 자세만 바꾸었을 뿐인데.

그러나 우리는 그 오후를 붙잡고 누릴 만큼 여유롭지 못했다. 우리는 이내 각자 할 일을 생각해냈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 아들은 그날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을까. 돌아오는 주말, 아들이 집에 오면 온 가족이 함께 그곳에 다시 가보리라 마음먹는다. 정갈한 밑반찬이 따라 나오는 부근 맛 집에서 고디탕도 먹으며. 

※ 김영 소설가는 부산에서 태어나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한동안 시를 썼고, 2020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됐다.

[불교신문3558호/2020년2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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