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낮은 곳에 오신 진리의 빛…예수에게서 붓다를 보다
가장 낮은 곳에 오신 진리의 빛…예수에게서 붓다를 보다
  • 이경민 기자
  • 승인 2020.02.18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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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종교 지도자, 가톨릭 성지를 가다(上)

한국 7대 종교 지도자들이 212일부터 21일까지 가톨릭 예술의 보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찾는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가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이웃종교체험 성지순례일환이다. 서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상생의 길을 찾고자 해마다 진행돼 온 사업이다. 이번 순례에서 지도자들은 바르셀로나와 그라나다를 거쳐 세비야, 톨레도, 마드리드, 리스본 등 바쁜 여정을 소화한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대표의장인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을 비롯해 김희중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오도철 원불교교정원장, 송범두 천도교 교령 등은 가톨릭 역사의 현장을 눈으로 확인할 예정이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가 2월12일부터 스페인을 찾아 가톨릭 문화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 있다. 2월13일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 종교 지도자들. 사진 앞줄 좌측부터 양덕창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전국위원회 부장,  오도철 원불교 교정원장,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 김희중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송범두 천도교 교령, 권도헌 문체부 담당관 등.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가 2월12일부터 스페인을 찾아 가톨릭 문화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고 있다. 2월13일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 종교 지도자들. 사진 앞줄 좌측부터 양덕창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전국위원회 부장,  오도철 원불교 교정원장, 종지협 대표의장인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 김희중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송범두 천도교 교령, 권도헌 문체부 담당관 등. 

신앙이 빚어낸 걸작

1만 마일을 날아 스페인에 도착한 한국 종교 지도자들이 제일 먼저 마주한 것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역사가 깃든 대성당이다. 국민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스페인에서 성당은 상징적 존재를 넘어선다. 대부분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7세가 되면 첫 영성체(수계)를 한다. 결혼을 하고 장례를 치르는 일도 성당에서 이뤄진다. 그 수가 2만 여개에 달한다.

그 중에서도 파격 일색인 미완의 성가정 성당(사그라다 파밀리아)’은 그야말로 독보적이다. 바르셀로나 대성당에 이어 성가정 성당을 찾은 종교 수장들도 압도적 위엄에 말을 잃을 정도다.

이 성당을 위해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실제로 사람의 시체를 본 떠 성경에 있는 예수의 모습을 석고 모형으로 그려냈다. 카탈루나 지방에 서식하는 수백종의 동물과 식물의 모습도 그대로 조각으로 옮겼다. 가우디가 성당을 완성하는데 얼마나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쏟았는지 짐작케 한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그의 높은 신앙심을 보여주는 것 중 하나가 성가정 성당의 첨탑이다. 가우디는 예수를 상징하는 첨탑이 성당 가장 높은 곳에 오도록 설계했는데 그 높이는 172.5m.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몬주익 언덕이 173m임을 감안한 결과다. 하느님이 만든 자연의 이치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가우디의 의도가 숨겨져 있다. 전차에 치여 죽을 때까지 성당에서 먹고 자며 건축에 매달리던 가우디는 자신이 가진 모든 예술적 재능을 이 성당을 통해 신에게 바쳤다.
 

가우디가 모든 걸 바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가정 성당'이라고 한다. 예수, 마리아, 요셉 등 세 사람의 성스러운 가족을 주제로 지어진 곳. 성경에 나온 이야기들이 외벽에 새겨져 있다.
별의 안내를 받아 찾아온 동방 박사들이 황금과 유향, 물약을 바치는 모습을 석고 조각으로 표현해낸 벽.
성가정 성당에는 3개의 파사드가 있다. 사진은 가우디가 생전에 완성한 '탄생 파사드(출입 정면부)'로 예수의 성장 과정을 다루고 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가우디의 그림을 바탕으로 스페인의 조각가 수비라치가 2006년 완성한 또 다른 파사드다. 
수비라치가 완성한 '수난 파사드'.
성가정 성당이 보이는 공원에서 7대 종교 지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부터 종지협 대표의장 총무원장 원행스님, 김희중 대주교, 송범두 교령, 오도철 교정원장, 이공현 원불교 문화사회부장, 권도헌 문체부 담당관, 사회부장 덕조스님.

가난한 이를 위하여

한 해 수백만명이 오갈 정도로 지금은 세계적 걸작이 된 성가정 성당의 시작은 연민에서 비롯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가정은 예수, 마리아, 요셉을 뜻한다. 가톨릭에선 하나의 완전한 가정을 의미한다. 성모 마리아에게 바쳐진 성당은 많아도 성가정에 바쳐진 성당은 찾기 힘들다. 성가정 성당이 다른 곳보다 가난한 아이와 부모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취지가 스며있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성경은 성당 외벽도 쓰여졌다. 생계로 미사에 참석할 수 없거나 글을 모르는 이, 누구라도 언제든 신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탄생의 문’ ‘수난의 문’, 그리고 아직 완성하지 못한 영광의 문3개의 파사드(출입구 있는 외벽)를 중심으로 예수의 탄생과 성장이 새겨져 있다. 최후의 만찬부터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의 이야기도 세심하게 표현됐다. 김희중 대주교는 이들 조각을 가리키며 예수의 탄생에는 늘 소와 말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여러 해석을 떠나 반드시 이스라엘인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다신 앞에 누구든 구원받을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고 했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성당 내부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이들은 말을 잃는다. 종교 수장들도 감탄을 숨길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쏟아지는 자연의 빛은 상처받은 영혼을 따뜻하게 품어 안는다. 야자수, 삼나무 등을 형상화한 내부 기둥과 천장은 우거진 숲 속 한 가운데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세계인들이 예술을 감상하는 이 곳에서 한국의 종교 지도자들은 또 다른 궁극의 세계를 본다. 인간에게 가장 본질적인, 진정한 자기초월을 향한 영성의 세계다.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대라는 마태복음, “응당 어디에도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응무소주 이생기심)”는 금강경의 한 구절. 모두 최고에 이른 자만이 토로할 수 있는 자기 고백이다.
 

성가정 성당의 내부. 외벽과 달리 아무 장식 없는 흰벽이 눈에 띈다.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이 신비와 경건함을 더한다.
2월16일 코르도바 메스키타 대성당을 찾은 종교 수장들. 
2월15일 세비야 대성당에서 아기 예수의 그림을 보며 탄생에 대해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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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 대성당 천장에 걸린 성모 마리아.
메스키타 대성당의 제단 뒤로 미사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깨달음의 길은 하나로 통한다

성당 곳곳에 새겨진 예수의 일대기에서 붓다의 모습을 본다. 중생 제도를 위해 기꺼이 왕자의 지위를 내려놓고 길을 떠난 붓다처럼 예수는 안락을 버리고 광야로 향했다. 마귀의 숱한 유혹에도 정진에 물러섬이 없었다. 가르침을 얻기 위한 신도들 발길은 저절로 모였다. 두 성인 모두 인간에 의해 배신당했고 그럼에도 자비, 이타, 박애를 끊임없이 설했다. 깨달음을 얻은 후 돌아와 기적을 행한 것까지, 놀랄 만큼 비슷한 길을 걷었다.

섬기는 신을 달라도 이르는 길은 하나로 통한다. 가톨릭과 이슬람 문화가 융합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아브드 알라흐만 1세가 이슬람 사원을 건설할 목적으로 만들었다 다시 성당이 된 코르도바의 메스키타(코르도바 산타마리아 성당), 세계에서 세 번째 규모를 자랑하는 세비야 대성당, 에스파냐 가톨릭의 총본산 '톨레도 대성당' 등 종교 수장들이 찾은 순례지 모두 이색적이었지만 이질감은 없었다. 총무원장 원행스님은 종교와 국가, 인종에 따라 신앙이 다르고 예술로 이를 표현해 내는 방법도 제각각이지만 기도의 힘은 언제나 초월적인 힘을 낸다신에게 자신을 기꺼이 바치는 인간의 신앙심은 그 자체만으로도 온전히 고결하다고 했다.

불교,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민족종교 등 한국의 7대 종교도 짧지 않은 역사 속에서 서로를 아우르며 성장해왔다. 가톨릭 예술의 보고, 스페인 대성당을 돌아보며 7대 종교 대표자들은 규모와 양식을 떠나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여 신앙으로 이끌 수 있다면 형식은 중요치 않다고 입을 모았다. 중요한 것은 어둠과 절망 속을 걷는 이가 오늘을 살아낼 수 있도록 희망의 빛이 돼 주느냐의 문제지 이질적 양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2월14일 알함브라 궁전 나사렛 왕궁 앞 종교 수장들. 김희중 대주교, 총무원장 원행스님, 송범두 교령, 오도철 교정원장.
김희중 대주교가 2월13일 성가정 성당에서 직접 예수의 탄생, 순교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종교 수장들이 2월13일 바르셀로나 대성당 옆 주교관에서 사무국장 후안 에레난데 신부와 만났다. 선물을 주고 받는 총무원장 원행스님과 후안 신부.
바르셀로나 대성당 주교관에서 차담을 나눈 양국 종교인들. 
2월15일 세비야 성당에 앞서 스페인 광장을 찾은 종교 지도자들. 

스페인=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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