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수좌’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가르침
‘영원한 수좌’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가르침
  • 허정철 기자
  • 승인 2020.02.17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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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열반에 든
우리시대 스승 적명스님

일기와 법문 몇 편 모아
한권의 책으로 엮어 출간
“일상, 수행 다르지 않다”

수좌 적명

적명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적명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출가 60여 년 동안 선(禪) 수행에 몰두하며 오직 수좌로서 살다, 지난해 말 입적한 적명(寂明)스님. ‘영원한 수좌’는 스님을 일컫는 대표적인 말이다. 생전에 어떤 자리와 권위도 마다한 스님은 언론 인터뷰를 수락한 일이 거의 없었고, 일반 대중을 위한 법석(法席)에도 잘 앉지 않았다.

당연히 남겨 놓은 저서도 없다. 오직 자신의 실천으로서만 보일 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적명스님의 일기와 법문 몇 편이 남아 스님의 치열한 구도 여정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게 됐다. 그렇게 세상에 나온 책이 <수좌 적명>이다.

이 책은 스님의 삶과 수행의 뜻을 조금이나마 간직하고픈 염원이 모여 간행된 적명스님의 ‘첫 책’이자 ‘유고집’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족도 달 수 없을 만큼 간결한 문장마다 서려 있는 스님의 치열한 삶을 만나볼 수 있어 주목된다. 더욱이 책의 출간일인 2월10일, 문경 봉암사에서 스님의 49재가 엄수돼 의미가 남다르다.

2019년 12월24일, 연말을 맞아 다소 들떠 있던 세상에 봉암사 수좌 적명스님의 갑작스러운 입적 소식이 전해졌다. 출가 이후 반백 년 넘는 세월을 토굴과 선방에서 지내며 오직 수행자의 본분에 매진해 온 스님의 입적 소식은 불교계는 물론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의 추모로 이어졌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적명스님의 입적소식을 듣고 페이스북에 추모의 글을 올려 화제를 모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2012년 8월 대선 후보 경선 시절 봉암사에서 스님을 뵙고 “국민의 한 가지 바람은 10년 후, 100년 후에도 그리워 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대통령을 가져보는 것”이라며 간절한 마음을 가지라는 당부를 들었다고 글을 남겼다.
 

‘영원한 수좌’로 불리며 일생을 수행 정진한 적명스님의 유고집 '수좌 적명'이 최근 출간됐다. 사진은 지난 2016년 4월 문경 봉암사를 찾은 불자들에게 법문하는 적명스님.
‘영원한 수좌’로 불리며 일생을 수행 정진한 적명스님의 유고집 '수좌 적명'이 최근 출간됐다. 사진은 지난 2016년 4월 문경 봉암사를 찾은 불자들에게 법문하는 적명스님.

책 1장은 1980년부터 2008년까지 30여 년 간 스님이 남긴 일기 가운데 70편의 글을 엄선하여 엮었다. 끊임없이 번민하며 괴로움을 토로하는 ‘한 인간’의 진솔한 모습과 그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치열한 ‘수행자’를 만나게 된다. ‘좋은 곳, 좋은 때, 좋은 인연들을 구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스스로를 담금질하는 스님의 모습은 바로 세인들을 향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더불어 2장에서는 선방에서 수행자들에게 종종 하셨던 짧은 법문을 모았다. 일반 대중은 흔히 접할 수 없던 법문으로, 스님의 음성이 옆에서 들리는 듯 생생하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번뇌를 어떻게 다뤄야 하고, 수행은 왜 해야 하며, 욕망은 어떻게 다스려 하는지 등 오랜 수행을 통해 스님이 깨달은 불법(佛法)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3장에는 1989년 월간 <해인>지에 소개된 방송작가 이윤수 씨와 적명스님 간의 인터뷰, 그리고 1월3일 휴심정에 게재된 법인스님의 추모글을 수록했다. 적명스님과의 짧은 인연이지만, 당시의 일화에는 토굴에서 혼자 지내며 정진을 거듭해 가는 소박한 미소의 수행자, 그리고 배움의 길 위에서는 아랫사람에게도 서슴지 않고 물을 수 있는 어른 스님의 모습이 잘 담겨 있다.

특히 이 책의 성격을 결정짓는 중심 내용은 단연 ‘스님의 일기’다. 일기 곳곳에서 발견되는 수좌 적명스님의 진면모는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면에 있다.

“…숲속으로 부는 바람 서늘하고/ 꽃도, 새도 그대를 벌써/ 반겨 부른 지 오래어라/ 있는 것 어느 하나/ 허상 아님이 있던가?/ 조그만 들꽃에 팔려 /벼랑을 구를까 두렵노라…” 일평생 수좌의 길만을 걸어 온 스님의 일기에서 우리는 ‘조그만 들꽃에 팔려’ ‘벼랑을 구를’ 것을 염려하는 ‘또 다른 적명스님’을 발견할 수 있다.

“깨달음의 내용은 사실 자비입니다…우리 모두가 하나이고, 나와 남이 진정한 사랑의 관계 속에 있음을 보는 것입니다.” “수행의 최종 목적은 일체 중생과 털끝만큼의 차이도 없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내 욕망이 줄면 그만큼 타인과 만(萬) 생명과도 하나가 되어 행복해집니다.”

더불어 스님의 법문에는 진정한 깨달음, 진정한 행복의 길이 무엇인지, 우리를 인도하는 길잡이가 되어 줄만하다. 나와 남이 다르지 않으니, 남이 행복해지지 않으면 나 역시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이 스님이 말하는 ‘보살의 길’이자 ‘깨달음’이다. ‘보살도 결국 자신의 행복을 위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라는 스님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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