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스님은 ‘인공지능 로봇 수행자’ 별칭 붙어
결사 응원하는 법석이 장군죽비처럼 느껴졌다


불자들 금강경 합송소리에 눈물
야단법석 덕분 추위 배고픔 견뎌
천막 안 서로서로 뜨거운 ‘도반愛’

1시간여 호흡곤란 다급한 순간에도
“죽어도 여기서 죽겠다” 필담 보며
눈물 감추면서 다시 추스르고 정진

천막결사 상월선원에서 지객(知客) 소임을 맡은 서울 수국사 주지 호산스님의 천막결사 키워드는 ‘눈물과 사부대중 그리고 함께 정진한 결제대중’, 이 세 가지로 정리된다.

스님의 첫 눈물은 천막에 들어간 직후였다. 상월선원을 방문한 수국사 신도들의 <금강경> 합송을 들으며 사부대중의 시은(施恩)에 가슴이 벅차올라,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물처럼 줄줄 흘러내렸다.

거의 ‘울보’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도 도(道) 하나만을 위해 오롯이 정진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야단법석 덕분이라고 했다. 호산스님은 “‘상월선원 정진결사, 한국불교 중흥결사, 대한민국 화합결사, 온 세상 평화결사’로 정리된 상월선원 4대 결사를 대중들이 한마음으로 외치는 소리에 많은 눈물을 흘렸다”며 “밖에서도 함께하고 스님들을 지키겠다는 대중들 응원에 감동 받았다”고 말했다.
 

위례 상월선원 천막결사 용맹정진을 회향한 2월7일. 천막 안 아홉 스님들은 죽비를 내려놓는 순간 박수로 묵언을 풀었다. 이 날을 기념한 스님들은 초췌하고 수척한 모습이지만 석달간 수행정진 끝에 맞은 자비롭고 부드럽고 강인한 선기(禪氣)가 느껴진다.
위례 상월선원 천막결사 용맹정진을 회향한 2월7일. 천막 안 아홉 스님들은 죽비를 내려놓는 순간 박수로 묵언을 풀었다. 이 날을 기념한 스님들은 초췌하고 수척한 모습이지만 석달간 수행정진 끝에 맞은 자비롭고 부드럽고 강인한 선기(禪氣)가 느껴진다.

여기서 웃지 못할 이야기 하나. 초반에 스님들이 천막에 들어간 직후, 매주 기도하러 찾아온 수국사 신도들이 “호산스님!”을 목 놓아 부르며 응원에 응원을 더한 탓에 천막 안에서 쪽지가 나간 일이 있었다.

“호산스님 이름, 특정 스님 이름은 되도록 삼가고 ‘아홉 분 스님’이라고 하던지 구호를 하는 것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호산스님은 “맨 처음에는 고맙고 좋았는데, 자꾸 반복되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피를 나눈 형제도, 평생을 약속한 부부도 하루 24시간 붙어있으면 다툼이 있기 마련이다. 천막 안에서는 어땠을까. 호산스님은 “다툼은 없었다”고 말했다. 묵언을 하면서 저절로 남을 배려하는 보시의 마음, 인욕, 지계가 저절로 작동됐다.

회주 자승스님의 역할이 컸다. 호산스님은 “아홉 분이 함께 살다보면 허물이 보일 수밖에 없지만, 회주 스님께서 묵언에 들어가면서 당부한 내용이 있다”며 “옆에서 방귀를 끼든 벌거벗고 춤추든 옆에 있는 대중이 어떤 행동을 하던 바깥 공사 소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니, 옆 사람의 허물을 문제 삼지 말자고 당부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너무 춥고 배고프고 정진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스스로의 몸을 다스리기 바빴다”고 덧붙였다.  

호산스님은 이날 함께 정진한 대중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고 표현했다. 속세 나이 74세의 성곡스님에 대해 “그 연세에 냉골에서 같이 지낸 것만 해도 그 분은 정말 잘했다. 함께 원만 회향해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스님의 38년 지기 통도사 강원 도반 무연스님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회주 자승스님은 무연스님을 일컬어 “인공지능 로봇 수행자”라고 찬탄할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수행했다.

호산스님은 “(무연스님은) 그 정도로 철저하게 공부했다. 불교의 정통 수행은 사교입선이다. 무연스님은 사교입선을 실천한 오리지널 수좌”라며 “앉아있던 서 있던 자기 자신의 시간을 철저히 쪼개가며 참선할 때 철저히 참선하고, 운동할 때는 운동하며 초를 정확하게 잴 수 있을 정도로 수행에 매진했다”고 밝혔다. 재현스님 또한 어느 대중보다 일찍 일어나 108배를 하며 열심히 정진했다.

천막결사 수행에 대해 입승 진각스님은 “밖에서 응원하는 소리와 안에서 서로 챙겨주는 우정, 정진으로 그 안에서 우리는 정말 따뜻했다”고 말했다. 사실 3개월간의 정진에 대해 스님은 “바닷물로 먹을 삼아도 다 표현할 수 없다”고 심경을 밝혔다. 죽자는 각오로 참여했던 터라 무문관에서 하루하루 시간 가는 게 아깝다는 생각으로 밤11시까지 정진했다.

각오가 남달랐지만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갑자기 음식량을 줄이니 공복감이 컸다. 공양시간인 오전11시가 되면 오전9시부터 뱃속에서 난리였다. 공복감이 너무 커 공포감까지 동반했다. 사흘 굶으면 도둑질 한다는 옛말을 실감했다. 식탁 위에 먹을 거라도 보이면 자동적으로 손이 갔다. 3주 정도 지나서 겨우 익숙해졌다고 한다.

씻지 않고 생활하는 것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선원 안을 열심히 걷다보니 양말에 구멍이 나서 3번이나 갈아 신었는데, 오래 신은 양말을 벗으니 각질과 때가 눌러 붙어 말할 수 없이 더러운 상태였다. 대중 스님들 잘 때 혼자 나가 각질을 떼어냈는데 30분을 털어도 소용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머리카락이 자라도 감지 않으니 그 가려움 또한 어땠을까. 보름 정도 지났을까 문득 간지러워 긁고 보니 손톱 밑에 때가 누룽지 긁듯이 나왔다. 쌀가루처럼 비듬이 우수수 떨어지는데 나중엔 아예 긁는 것도 포기했다. 정진하는데 옆에서 계속 긁고 있으면 다른 스님들에게 피해를 주겠다 싶어 가려운 것을 참고 긁는 것을 멈췄다.

스님은 “천막결사 동안 정말 행복했다”고 한다. 마당 앞에 장작을 쌓아놓고 공부하다 죽으면 그 자리에서 다비를 하겠다는 각오로 가서 금생에도 내생에도 경험할 수 없는 공부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밖에서 격려해주는 소리를 들으며 울컥했던 때도 많았다.

정진을 거듭할수록 스님 가슴 속에 남은 것은 <초발심자경문>이었다. “금생에 도를 밝히지 못하면 물 한 방울도 소화시키기 어렵다.” “도를 깨치지 못했는데 어떻게 편안하게 잘 수 있냐”고 경책하는 내용이 스님의 가슴을 울렸다.

모두가 고생했지만 정통(淨桶) 소임을 맡은 심우스님을 빼놓을 수 없다. 결제 시작할 때부터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동참했다는 스님은 정진도 열심이었지만 겨울 내내 물기 없이 깨끗하게 화장실을 청소했다. “정통 소임이 힘들거나 부끄럽지 않았다. 초발심을 떠올리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했다”며 “출가해 수행자로 살면서 제대로 못했다는 생각에 눈물이 많이 났다”고 했다. 

자리도 화장실 청소를 하려면 가까운 데가 좋겠다며 가장 추운 곳을 자청했다. 다용도실 쪽과는 3도나 온도차가 나는 곳이었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절을 하고, 체조를 했다. 상의를 탈의하고 맨 몸으로 PT체조도 하고 줄넘기, 제자리 뛰기를 해서 땀을 흘리고 나면 체온이 올라가 하루를 견딜 수 있었다.

천막법당에서 들리는 기도소리에 정진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결사를 응원하는 소리가 장군죽비처럼 느껴졌다”는 스님은 “밤낮으로 기도해주는 사부대중을 떠올리며 춥고 배고파도 견딜 수 있었다”고 한다.

도림스님은 역시 추위로 힘들었다고 한다. “새벽 정진할 때 특히 추웠는데 이미 저녁에도 추웠고, 오전에도 추울 것이란 걸 알기 때문에 그 순간의 느낌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내 한계가 여기까지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한다.

정진 대중 스님 가운데 한 명이 호흡곤란이 와 쓰러졌을 때 막막했다. 그 때가 새벽5시쯤이었는데 쓰러진 이유를 모르겠고, 서로 말을 할 수 없는 상태니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스님이 겨우 호흡곤란이란 글자를 쓰고 응급벨을 누르고 기다려야 했다.

입승 스님이 문을 걷어찰 정도니 얼마다 다급한 순간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1시간 넘게 호흡곤란을 겪은 스님이 “죽어도 상월선원에서 죽겠다”며 치료를 거부했다. 그 글을 읽은 스님들 모두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래도 다시 추스르고 정진을 이어갔다. 한 사람이라도 낙오되면 천막결사가 어려워진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진 대중 가운데 막내인 인산스님은 대중 스님들 도움으로 정진을 마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좌차대로 하면 스님은 가장 끝자리지만 건강 때문에 입승 스님 옆 자리에 앉아서 정진할 수 있었다. 덕분에 추위를 덜 겪었지만 새벽 영하 9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엔 너무 추워서 감당이 안됐다.

허리와 무릎에 침낭을 두르고 있어도 추위는 가시지 않았다. 바닥에서 냉기가 올라오고 습도까지 높다보니 바람이 없어도 살이 에이고 뼈가 으스러지는 느낌이 들었다. 스님은 대중 스님 힘으로, 그 열기로 90일을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결제 동안 선원장 무연스님의 ‘아바타’란 별칭을 얻었다. 40년 넘게 수행한 선배 스님의 수행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따랐다고 한다.

스님은 “처음엔 적응이 안 돼 힘들었는데 회주 스님이 세세하게 살펴줘 큰 도움을 받았다”며 “선원장 스님과는 수행에 대한 필담을 나누면서 공부의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번 철에 공부하는 법을 제대로 배웠다”는 인산스님은 “회주 스님과 선원장 스님이 더 공부할 수 있게 길을 열어준 덕분에 무문관으로 들어간다”며 인연이 닿을 때까지 선방에서 정진하겠다는 원력을 피력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홍다영 기자 hong12@ibulgyo.com

[불교신문3558호/2020년2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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