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0일 넘게 혼자 기도하면서
외연의 일 관심 점점 사라져
홀로 눈 쓰는 게 나에겐 ‘딱’

혜인스님
혜인스님

“스님 외롭지 않으세요?” 산사에서 두문불출(杜門不出)하다 보니 가끔 받게 되는 질문에 나는 항상 같은 대답이다. “전혀요.” 나는 뭐든지 혼자서 하는 걸 좋아한다. 산행도 공양도 기도도 혼자 하는 것이 좋다.

사실 가끔은 홀로 좀 떨어져 지내고 싶은 마음에 1000일 기도한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만들어서 이 산사에 올라와 사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내가 혼자를 좋아한다는 기준은 결혼 안 하고 혼자 살면서 가끔 친구들도 만나고 직장에도 나가고 나들이도 나가는 일반적인 기준과는 좀 다르다. 

600일이 지난 지금까지 밖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고, 요즘엔 누가 그립다거나 보고 싶다는 생각도 거의 안 하게 된다. 혼자 밥 먹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공양 중에 자꾸 말을 하면 집중이 금방 깨져버리니 가급적이면 공양 중에도 기도를 이어갔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고, 기도를 이어갈수록 외연(外緣)의 일들엔 관심이 자연스레 없어지게 되는 것 같다.

밤사이 눈이 내려 오늘은 새벽부터 눈을 쓸었다. 마침 우리 종무원들이 다 쉬는 날이라 혼자서 눈을 쓴다. 오랜만에 겨울답게 기온이 뚝 떨어져 빗자루 든 손이 꽁꽁 얼어 떨어져 나갈 것 같은데도 홀로 눈을 쓰는 일은 참 기분이 좋다. 마당을 쓸다 아라한이 되신 주리반특가(周利槃特迦)가 부러워진다. 

나도 맨날 기도하고 법문하는 일일랑 그만두고 마당이나 쓸까. 여럿이 쓸면 이 맛이 안 난다. 옆 사람이 쓰는 모양을 보며 그 방향에 맞춰 쓸어야 하고, 앞사람이 여길 쓸고 있으면 나는 저만치 가서 쓸어야 하니 마당 하나 쓸면서도 신경 쓸 일이 참 많다.

눈 덮인 마당을 쓰는 일은 역시 아무 생각 없이 한 발짝 한 발짝, 한 빗자루질 한 빗자루질 단순하게 움직이는 게 제일이다. 그러다 힘이 들면 허리 한 번 쭉 펴고 고개 한 번 들어 눈 덮인 산과 하늘 한 번 올려다보면 그만이지. 청소의 목적이 꼭 깨끗해지는 것에만 있다면 그 맛은 내 입엔 안 맞는 것 같다.

처음엔 그리도 뚜렷해 보였던 기도의 목적이 날이 갈수록 흐려진다. 요즘엔 기도를 하면서도 내가 왜 이 기도를 하고 있는지 까먹을 때가 많다. 하지만 목적을 잃는다고 해서 과정도 의미 없어지는 거라면 나는 이 기도를 이제 중단할 때가 된 건가? 때로는 오히려 목적이 우리를 옭아매는 족쇄가 되기도 하는 법.

청소를 오로지 깨끗함만을 위해서 하는 사람도 있을까? 안 깨끗해지면, 덜 깨끗해졌다면 그 청소는 의미가 없는 것인가. 주리반특가가 하루 종일 청소만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어봤어도, 하나를 외워도 돌아서면 까먹는 바보라는 이야기는 들어봤어도, 부처님이 청소를 왜 깨끗하게 안 했냐고 그분을 나무라셨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는걸.

내가 가끔 누구도 보고 싶은 사람이 없고, 뭐든 혼자 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말할 때면 주위의 몇몇 분들은 좀 서운해 한다. 하지만 서운해 해도 어쩔 수 없다. 어떤 분들은 내가 아직 젊어서 그렇지 그렇게 살다가 나이 들면 더 외로워질 거라고도 하시는데, 뭐 더 외로워진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나는 출가를 할 때도 슬픔이 많았지만 어쩔 수 없었고, 혼자 기도를 하겠다고 할 때도 반대가 많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이 마음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다. 

깨끗해지지 않아도, 외로워진다고 해도 나는 홀로 눈을 쓰는 일이 내 입맛에 딱 인걸.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이 마음을 인정해버리고 말아야지. 나를 버리고 남에게 인정받는 선택을 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 입맛에 맞으란 법은 없으니까. 이러니 혼자가 좋지. 쯧쯧. 부처님은 아마 이해해 주실 거야.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니까.

혜인스님 고양 중흥사

[불교신문3557호/2020년2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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