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저스페리라는 신경생물학자는 ‘시간의 개념은 우리 뇌의 착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주관적인 느낌에 따라 빠르게 혹은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던가. 학교의 시간은 항상 급류처럼 흐른다. 1월초는 특히 종업식과 졸업식이 있으니 시간이 없다. 본교는 특성화고라 수능 이후 고3 대부분이 현장실습을 나가고 소수의 아이들만 등교를 한다. 

이들을 위한 조금 특별한 템플스테이를 소개하려고 한다. 재학생 명상심화과정 마지막 일정으로 1박2일 명상캠프를 진행한다. 학년 초 교육청에 계획서를 제출하면 템플스테이는 교육청, 지자체 공모사업으로 선정되기 충분한 내용이다.
 

논산 지장정사에서 열린 템플스테이에서 발우공양을 하는 학생들.
논산 지장정사에서 열린 템플스테이에서 발우공양을 하는 학생들.

9월부터 교육비, 급식비 무상지원정책으로 아이들에게 주어지던 장학금 혜택도 일괄 중단되고 방과 후 아르바이트현장으로 달려가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웃픈’ 상황이 생겼다. 마지막 학창시절을 맞는 본교 재학생들에게 템플스테이를 통해 ‘자존감 회복’을 최우선 과제로,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있는 곳이 학교법당이다. 

숙박형 체험활동(교육청보고)에서 사전답사는 필수요소다. 숙박하는 해당사찰에서 제출할 서류도 있다. 화재보험, 음식물 책임보험 가입여부, 숙소배치도 등이다. ‘삶愛 향기를 알我차림 명상’을 주제로 우리가 찾은 곳은 사띠스쿨의 논산 지장정사이다. 대웅전 마당에서 호흡에 맞춰 천천히 발을 들어 움직이며 1, 2, 3단계 걷기명상을 한다.

처음엔 넘어질 듯 비틀거리던 아이들이 걷기 명상에 익숙해짐이 보인다. 볕 잘 드는 전각 툇마루에 좌복을 깔고 새소리를 들으며 호흡명상을 한다. 시간이 지나자 신기하게 아이들의 표정이 밝아진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스님의 죽비소리에 눈을 뜨고 다리를 풀고 잠깐의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나무 그네도 타고 긴 플라스틱 빗자루로 공중부양을 해본다. 갖고 있던 휴대폰으로 자신과 친구의 모습을 사진에 담는다. 처음엔 내심 걱정을 했는데 어른의 기우였을 뿐, 발우공양은 입식으로 한다.

의자에 앉은 아이들은 무척 편안해했고 밥과 반찬을 더 찾는 모습이 보인다. 아이들의 숙소도 2층 침대다. 저녁예불 후 문패에 좌우명 쓰기, 경전 글 책갈피 만들기를 했는데 영화 덕혜옹주 타이틀을 쓰신 캘리 작가님의 재능기부 덕분에 결과물들도 훌륭했다. 

별빛 명상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도 하고 미니캠프파이어에 가래떡 구워 먹기도 재밌어했다. 쌓아둔 스트레스를 다 뿜어내서인지 4시 예불과 108배도 모두 참석했고 걷기명상, 호흡명상도 어제보다 훨씬 발이 가볍다.

아침공양은 모닝빵과 쨈, 연근야채샐러드. 사띠학교의 특별한 메뉴다. 오관게를 하고 합장을 하고 아침공양을 시작한다. 오븐에서는 계속 빵이 구워지고 공양은 끝날 줄 모른다. 안 되겠다 싶어 다음 일정공지를 했다. 마음씨 좋은 팀장님은 미소만 짓는다. 

사찰 근처 환경정화활동과 사과농장의 사과 따기 체험이다. 스님과 팀장님 마을주민들의 인솔로 인근과수원에서 아이들 키높이 보다 조금 높은 곳의 사과를 따고 즉석에서 먹고 부모님을 위해 5개씩 에코백에 담아왔다. 싱잉볼 명상과 스님께서 직접 내려주신 커피와 차로 차담을 나누고 직접 싱잉볼을 시연할 시간도 주신다. 놀이와 명상의 경계가 없다. 

천진불이 뛰노는 이곳이 불국정토가 아닌가 싶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노련함의 의미도 있으나 형식과 고정관념 속에서 고집불통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새 유행어로 ‘~라떼(나때는 말이야)!’ 공감하고 있다면 반성하자.

탈종교화와 불자감소를 걱정하지만 미래 불교 인재확보를 위해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어른들이 변하는 것,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던 대기설법은 달라진 교육현장에서 우리가 만나는 청소년들에게 적용해 간다면 민족 정서에 가장 잘 맞는 불교와 불자는 영원히 반짝이는 보물로 존재하리라고 믿는다.

[불교신문3557호/2020년2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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