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개경의 스님들
사대부 음식문화 화두로
‘불교음식학’ 연구 눈길

“사찰음식, 건강식 아닌
식체 갖춘 수행의 방편”

고려 옹기와 청자에 음식을 담다

태경스님 지음 / 양사재
태경스님 지음 / 양사재

조계종 제4교구본사 월정사 성보박물관 학예실장을 역임하고 조계종 교육원 교육아사리와 포교원 의례위원회 의례실무위원을 맡고 있는 태경스님이 한식이나 사찰음식이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시작되고 변용됐는가를 인문학을 바탕으로 정리한 <고려 옹기와 청자에 음식을 담다>를 최근 선보여 주목된다.

최근 음식의 트렌드가 그저 ‘먹방’에서 끝나는 아쉬움이 있어 책을 쓰게 됐다는 태경스님은 ‘고려 개경의 스님과 사대부 음식문화’를 화두로 사찰음식을 비롯한 우리나라 음식의 역사를 탐구했다. 고려시대 스님과 사대부의 문집과 <고려사>, 서긍의 <고려도경> 등을 기본사료로 음식에 관한 내용을 토대로 신라와 조선시대를 연결하는 고려시대의 음식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전통음식문화의 기초를 놓은 불교음식’ 편에서는 현재 국내외에서 웰빙식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사찰음식’이 우리나라 음식문화의 기원이라는 의미 깊은 주장도 담겨 있어 눈길을 끈다. 스님에 따르면 불교가 인도에서 출발했듯 불교음식도 당연히 인도음식에 기원을 두고 있다.

중국에서는 5~6세기부터 불교의 영향으로 상례에서 지나친 희생에 의한 사치와 낭비를 근절하기 위해 혈식(血食)에서 소식(蔬食)으로 변화했다. 인도의 음식문화가 경전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개된 시기를 당(唐)이라고 하면 송(宋)은 중국화를 완성한 때다.

때문에 고려는 송상들의 해상무역을 통해 당시 최고문화를 자랑하던 북송, 남송의 식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중국에서 받아들인 도자기 기술은 당시 최고의 비색 청자를 만들어 냈다. 태안지역에서 출수된 태안 대섬 및 마도 1~3호선의 식기류 유물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또한 고려시대 불교는 초·중기밀교 성격이 강한 경전들이 유행했고 이들이 의례불교를 이끌었다. 행법(行法)은 진언을 중심으로 진행했지만, 다양한 공양물이 수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금기음식인 육식과 훈채를 언급한 <능가경>과 <능엄경>도 당시 사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포교원 의례위원회 의례실무위원을 맡고 있는 태경스님이 한식이나 사찰음식이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시작되고 변용됐는가를 인문학을 바탕으로 정리한 '고려 옹기와 청자에 음식을 담다'를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울산 해남사에서 ‘경상도 지역 산사 승원의 음식’을 주제로 열린 제8회 울산 전통음식 문화한마당.
포교원 의례위원회 의례실무위원을 맡고 있는 태경스님이 한식이나 사찰음식이 한국인들의 입장에서 어떻게 시작되고 변용됐는가를 인문학을 바탕으로 정리한 '고려 옹기와 청자에 음식을 담다'를 최근 출간했다. 사진은 지난해 10월 울산 해남사에서 ‘경상도 지역 산사 승원의 음식’을 주제로 열린 제8회 울산 전통음식 문화한마당.

더욱이 밀교 의식을 위한 연화부(連華部) 호마단(胡麻團)에는 환희단식(歡喜團食)을 제공해야 한다. 이 환희단은 설탕을 기본으로 쌀겨, 보리가루, 꿀 등을 섞거나 기름과 밀가루 또는 우유와 진한유즙을 첨가해 만들기도 한다. 꿀과 참기름, 우유 등으로 만든 것이 유밀과이고 불교음식을 대표한다.

불교 의식단에 올리는 봉헌의 공양물인 유밀과는 고려사회를 지나며 중요 행사에서 반드시 갖춰야 할 음식물로 자리 잡았다. 이후 조선 건국으로 국가 이념은 변했지만, 국가 중요행사에서 갖춰야 할 음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고려 음식은 이름을 바꾸고 연회 절차를 바꿔 조선사회에 스며들어 최고의 음식으로 옷을 갈아입기에 이른다.

태경스님은 “생산, 저장, 요리, 소비 등을 배척하던 인도불교의 식생활은 중국 선종의 출현으로 본래 의미는 쇠퇴했을지 모르지만, 식당작법 내지 발우공양 의례 속에서 오히려 수행의 단계로 승격됐다”면서 “불교의례 속에 있던 음식물들은 점차 일상생활에서 의미를 갖게 됐고 역사가 있는 음식이 됐다. 이렇게 음식의 역사를 찾아 그 특징을 드러내는 것이 곧 불교음식의 기원인 동시에 살아 있는 한식의 기원으로 삼을 만하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사찰음식은 건강식이 아니라, 식체(食體)를 갖추고 식상(食相)을 통해 이뤄지는 수행 방편의 하나”라며 “특히 오신채와 육식을 금하는 이유는 맛의 욕심을 버려 전쟁을 막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라는 불교음식의 본질에 대한 언급도 눈여겨 볼만하다. 이외 동양 최초의 음식이론, 소식(蔬食)에 관한 시(詩)도 만나볼 수 있다.

스님은 “의와 식의 문화양상을 현대는 한복 또는 한식이라고 부르지만 그 시기와 내용에 대한 정의는 통일되지 않았다”면서 “한식에서는 불교음식을 끌어들이지 않으려 하고, 불교음식에서는 한식과 다른 점을 밝히려 하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어 “조리를 중심으로 하는 실물음식 연구도 필요하지만 음식의 본질을 대상으로 사회현상을 읽어 내려는 자세도 필요한데, 근래 음식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새로운 연구결과가 등장하고 있어 다행”이라며 “여기에 사료가 부족한 고려시대 음식을 엿볼 수 있는 방법이 제시된다면, 우리의 음식문화를 보다 풍성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의미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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