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리더를 만나다] <2> 강창일 국회 정각회장
[대한민국 리더를 만나다] <2> 강창일 국회 정각회장
  • 박인탁 기자
  • 승인 2020.02.06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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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신문 창간 60주년 특별기획’
“자비심과 화쟁, 중도 가르침으로 국회 혁신해야”


중3 때 매일 새벽예불 참여
6개월 남짓 행자생활도 체험

17대 총선으로 국회 입성 후
6년 공백 정각회 재건 추진
부회장 이어 회장 2차례 맡아

불교 관련 국가 법령 제개정
전통문화 예산 확보 앞장서

국회 내 첫 봉축탑 점등하고
노후된 국회 정각선원 이전해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하며
국회개혁 불쏘시개 역할 자임
1월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강창일 국회 정각회장은 국회의원으로서의 활동과 불교와의 인연을 소개한 뒤 “국회와 정치 혁신을 위해 불쏘시개 역할을 맡겠다”고 밝혔다. 신재호 기자 air501@ibulgyo.com

 

국회 정각회는 정파를 초월한 불자 국회의원들의 신행모임이다. 특히 불교를 외호하는 호법신장으로서 불교계와 정치권을 잇는 가교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왔다. 19834월 제11대 국회에서 69명의 불자 국회의원으로 창립한 정각회는 총선에 맞춰 4년마다 새롭게 출범해 활동한다. 하지만 1998년 여소야대 정국속에서 회장직 선출문제로 인한 갈등으로 6년간 정각회를 구성조차 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2004년 제17대 총선을 통해 국회에 입성한 강창일 의원은 안홍준 당시 한나라당 의원을 만나 정각회 재건에 앞장설 것을 의기투합한데 이어 17대 국회에서 정각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19대 하반기 국회 정각회장에 이어 20대 하반기 국회에서 다시 정각회장을 맡고 있는 강창일 회장은 불교계와 적극 소통하면서 불교 관련 국가 법령 제개정, 전통문화 관련 예산 확보 등을 위해 헌신해왔다.

강 회장은 우리 전통문화의 약70%를 차지하고 있는 불교전통문화를 특정 종교의 문화로 인식할 게 아니라 우리 민족의 문화이자 정신, 삶으로 생각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피력했다.

우리 헌법에서는 국가가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어요. 석굴암과 팔만대장경 등 불교전통문화가 우리나라의 최고 문화재이자 문화유산인데 국가가 아닌 사찰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어요. 국가가 이 역할을 직접 맡는다면 10만명 이상의 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소중한 전통문화에 대한 보존과 계승 정책과 예산 지원이 불교에 대한 특혜 절대 아닙니다.”
 

2015년 5월 국회 광장에서 처음으로 봉축탑 점등식이 거행됐다. ⓒ불교신문
2015년 3월 국회 정각선원 이전 개원법회에서 강창일 정각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불교신문

또한 회장 임기 동안 국회 정각선원을 확장 이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국회에서 처음으로 봉축탑을 밝혔다. 1995년 국회 본관 지하 2층에 22평 규모로 마련한 정각회의 신행도량 정각선원이 공간이 협소하고 노후화되자 20153월 본관 지하 1층에 35평 규모로 이전 개원했다. 2015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처음으로 국회에서 봉축탑을 환하게 밝힌 것도 강 회장의 성과 중 하나다.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국회 내에 성탄 트리가 설치됐는데 부처님오신날에는 봉축탑이 없었어요. 정각회가 앞장서 봉축탑 점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2015년부터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면 봉축탑이 국회 광장을 환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역사학자 출신인 강 회장은 과거사 문제, 역사 청산에 누구보다 매진해왔다. 제주 4·3사건 규명에 이어 진실화해법제정과 ‘4·3특별법개정에 앞장서는 등 역사 바로 세우기에 앞장서 왔다. 특히 국회 내 대표적인 지일파(知日派)로 손꼽히는 강 회장은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한일 관계를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해왔다.

강 회장은 일본 동경대에서 석·박사 과정을 하고 일제의 침략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만큼 일본의 역사와 일본인의 속성을 꿰뚫고 있다. 국회 진출 후에도 한일의원연맹 사회문화위원장과 간사장을 역임한데 이어 현재 한일의원연맹 회장 소임을 맡고 있으면서 일본 역사학자는 물론 정치 거물들과도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지난 1월 아베 정권의 2인자인 니카이 자민당 간사장과 만나 한일관계 개선 방안, 강제징용 문제 등에 대해 폭넓게 의견을 나눈데 이어 3월에도 일본을 찾는다는 계획이다.

“2019년은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의 한해를 맞았어요. 그동안 역사와 영토문제로 싸웠는데 지난해에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화이트 리스트 제외, 지소미아 종료 문제 등으로 경제와 안보분야까지 전선이 확대됐어요. 결과적으로 우리나라도 피해가 있지만 일본 경제가 더 큰 타격을 입었죠. 양 국 모두에게 타격을 주는 치킨게임을 더 이상 해서는 안 되는 만큼 하루속히 한일관계를 정상화할 수 있도록 미약하나마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강 회장에게 불교는 모태신앙이다. 어릴적부터 어머니와 함께 제주 월정사를 다녔던 강 회장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친형이랑 월정사에 방사를 하나 빌려 한 달간 머물기도 했다. 3 때는 제주 관음사 포교당 인근에서 자취생활을 하며 매일 새벽예불에 동참해 불심을 키워나갔다.

선배들을 도와 룸비니학생회 창립에 힘을 보탠데 이어 고등학생 때는 룸비니 부회장을 맡기도 했다. 3 때인 196993선 개헌 반대 시위를 하다 정학 처분을 맞은데 이어 광주소년원에 수감됨으로써 대학 면접전형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픔도 겪었다.

당시 삶과 죽음에 대한 깊은 고민 끝에 강 회장은 제주 보림사에서 출가했다. 공동묘지 사이에 위치한 보림사에서 행자생활을 하던 강 회장은 밤에 처녀귀신을 만나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귀신조차 못 이겨내면서 스님이 될 수 있겠냐는 한계에 봉착한 뒤 6개월 남짓한 행자생활을 접었다.

재수 후 대학에 입학한 강 회장은 서울대 불교학생회에 가입해 불연(佛緣)을 키워갔다. 송광사 수련대회를 다녀온데 이어 쌍계사와 화엄사, 다솔사 등 전국 주요 사찰을 순례하기도 했다.

당시 민주화운동을 하셨던 법정스님이 봉은사에서 송광사 불일암으로 거처를 옮기시고 전국 대학에 휴교령마저 내려지자 서울대 불교학생회에서 60, 70명이 송광사로 수련대회를 갔었죠. 1주일간 수행정진하면서 제 화두는 민주화운동을 계속 할지말지였는데 계속 하자고 결론을 냈죠. 또한 다솔사 순례에서는 최범술스님으로부터 도행(道行) 법명을 받았어요. 민청학련사건으로 순천교도소에 수감되자 스님께서 직접 찾아와 영치금도 넣어줬고, 한번씩 상경해서는 맛있는 공양을 사주며 격려해주셨어요. 정말 감사했지요.”

부인 장용선(법명 피안행) 여사를 만난 것도 부처님 인연 덕분이다. 불교학생회 선후배로 송광사 수련대회에 참여한데 이어 서울 대원암에서 탄허스님의 <화엄경> 강좌를 매주 함께 듣기도 했다. 탄허스님은 강 회장 부부에게 결혼을 제안했고, 이후 불연이 부부의 인연으로 자연스레 이어졌다.

일본 유학길에 나서기 전에는 불교 전문 출판사 창립을 준비하기도 했다. 1979년 고준환 경기대 명예교수와 고() 여익구 전 민중불교연합회장 등과 의기투합해 불교 전문 출판사 창립을 추진했지만 전두환 신군부 집권 후 수배생활로 인해 불가피하게 꿈을 접기도 했다.

강 회장은 112일 제주도에서 열린 의정보고회에서 국회와 정치 혁신을 위한 불쏘시개가 되겠다며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지역 기반이 탄탄한데다가 출마 시 당선 가능성도 높았던 만큼 강 회장의 갑작스런 불출마 선언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으로 다가갔다.

지역구 사람들은 힘있는 다선의원이 필요하다’, 당에서는 한일문제를 누가 풀어 나가냐’, 불교계에서는 앞으로 정각회는 어떻게 할 거냐등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며 강 회장을 말렸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20대 국회를 식물국회로 규정한 강 회장은 지난 1년간 자괴감과 책임감에 번뇌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고 토로했다.

결국 강 회장 자신부터 불출마를 선언하며 국회 혁신, 정치 혁신을 위해 매진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정계 은퇴가 아닌 만큼 정치권과 불교계간의 가교 역할, 한일관계 회복, 제주지역 발전 등을 위해 역할은 계속 도모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특히 강 회장은 부처님의 너그러움인 자비심과 가르침인 화쟁과 중도로 국회 혁신, 정치혁신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사회적 갈등을 해소해야 할 정치권이 정치진영 논리에 매몰돼 양극화가 더욱 더 심화됐어요. 정치가 실종되고 식물 국회가 돼 국민들로부터 국회가 탄핵당할 수 있다는 심각한 우려마저 나오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부처님의 자비심과 화쟁, 중도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정치가 성숙해 지고 국민의 삶이 편안해질 수 있도록 다같이 노력해야 할 때입니다.”
 

지난 2012년 10월 열린 제19대 국회 정각회 개원법회에서 고불문을 낭독중인 강창일 현 국회 정각회장. ⓒ불교신문

■ 강창일 정각회장은…

국회 내 대표 불자이자 지일파

19521월 제주시 한경면에서 태어난 강창일 국회 정각회장은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 동경대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해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91년부터 배재대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을 양성했으며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4선 국회의원이다.

·일의원연맹 회장과 국회 한·몽골 의원친선협회장, 국회 민주주의와 복지국가연구회 공동대표, 더불어민주당 역사와 정의특별위원장 등을 맡고 있다. 이와 함께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장과 지식경제위원장, 국회 독도영토수호대책특별위원장, 새정치민주연합 윤리심판원장, 제주 4·3연구소장, 광주 5·18기념재단 이사 등을 역임했다.

특히 17대 국회 입성 후 유명무실화 됐던 국회 정각회 재건을 주도한 뒤 부회장을 맡은데 이어 회장 소임을 2번째 맡고 있는 불자 국회의원이다. 28회 포교대상 공로상(총무원장상) 수상에 이어 지난해 6월 조계종 진제 종정예하로부터 공로패를 수상하기도 했다.

[불교신문3556호/2020년2월1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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