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래의 불교 세시의례] <2> 정초의 사천왕재
[구미래의 불교 세시의례] <2> 정초의 사천왕재
  • 구미래 불교민속연구소 소장
  • 승인 2020.02.0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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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을 모시고 새해 안녕과 소망 발원하는 기도
‘정초 7일기도’의 시작으로 올리는 ‘마곡사 사천왕재’.
‘정초 7일기도’의 시작으로 올리는 ‘마곡사 사천왕재’.

‘정초기도는 신중기도’라고들 한다. 신중(神衆)을 모시고 새해의 안녕과 소망을 발원하는 한국불교의 특성이 담긴 말이다. 정초는 물론, 새달이 시작되는 첫날의 초하루법회도 화엄성중(華嚴聖衆) 정근을 하며 신중불공에 중점을 두는 사찰이 많다. 이처럼 신중을 향한 기도가 새해와 새달을 시작하는 시점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는 불교의례에서 불법을 수호하는 신중을 먼저 청해 도량을 정화․결계(結界)하고나서 본 의식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의례의 원만한 회향을 위해 삿된 것을 물리치는 신중의식을 행하듯, 새해를 무탈하고 다복하게 열어가려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불자들은 부처님께 빌기 송구스러운 현세의 온갖 원들을 모두 신중께 빈다. 인간과 가까이 있으면서 소원을 빠르게 처리해주는 친근하고 스스럼없는 신들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사찰을 드나들 때마다 만나는 사천왕은 삿된 기운을 물리치는 든든한 외호자이다. 특히 악의 무리를 향한 위협적인 표정과 몸짓을 지녀 새해의 무탈함과 평안을 비는 데 더없이 적합한 존재인 셈이다. 이에 천왕문을 갖춘 사찰에서 정초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사천왕재를 살펴본다.
 

불갑사 사천왕 중 서방을 지키는 ‘광목천왕’. Ⓒ비니버미
불갑사 사천왕 중 서방을 지키는 ‘광목천왕’. Ⓒ비니버미

구도의 길 지키는 사천왕

사천왕(四天王)은 동서남북의 네 방위를 지키는 호법신이다. 불교에서는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을 설정하여, 그 둘레에 아홉 개의 산이 있고, 산과 산 사이에 여덟 개의 바다가 둘러싸고 있으며, 동서남북에는 네 개의 대륙이 있다고 본다. 수미산의 가장 낮은 기슭이 인간계이고, 땅 밑에는 지옥이 있으며, 중턱의 사방을 사천왕이 지키고 있는 것이다. 

산의 정상에는 도리천이 있고 제석천이 우두머리가 되어 다스린다. 수미산의 위쪽으로 층층의 하늘이 28천을 이루는데 이는 욕계 6천, 색계 18천, 무색계 4천을 말한다. 중턱의 사왕천은 욕계의 제1천이고, 도리천은 욕계 제2천으로 지상에서는 가장 높은 산꼭대기에 해당한다. 그리고 부처님은 28개의 하늘나라 맨 위에 계시는 분이다. 

우리나라의 산중사찰은 이러한 우주관을 구현해놓은 불국토이다. 초입에서 처음 만나는 일주문은 불국토로 들어서는 일심을 나타내고, 사천왕문은 수미산의 중턱까지 올랐음을, 불이문은 정상에 이르렀음을 상징한다. 이에 불단을 수미단이라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사찰 문을 차례로 통과함은 번뇌의 세계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나아감을 뜻한다. 이처럼 사천왕은 수미산의 중턱이자 욕계의 제1천에서 구도의 길을 외호하며 힘을 주는 존재이다. 

천왕문 안쪽에 모셔놓은 사천왕상은 거대한 체구에 부릅뜬 눈과 치켜 올라간 눈썹, 커다란 입으로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다. 손에는 칼과 창, 용과 뱀 등을 들고 있으며 발로는 악귀를 조복(調伏)시켜, 발밑에 깔려 고통스러워하는 악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된다. 그러니 사천왕의 두려운 형상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것’을 향하고 있음을 알아 스스로를 돌아보는 이라면, 수미산의 중턱에 다다른 자임에 틀림없다. 
 

법당을 향해 저녁에 올리는 ‘송광사 사천왕재’.
법당을 향해 저녁에 올리는 ‘송광사 사천왕재’.

산사에 퍼지는 사천대왕 정근

마곡사에서는 정초기도의 시작을 사천왕재로 열어간다. 정월 초3일에 사천왕재를 올리고 나서 7일간의 정초기도 입재에 들기 때문이다. 이날 아침 천왕문 앞 재단(齋壇)에 갖가지 떡과 과일 등을 차려놓고 스님과 신도들이 함께 사천왕께 공양을 올리는 현장에 참관하였다. ‘문을 여는 것’이 시작을 뜻하듯이, 도량 초입의 천왕문에 모신 사천왕은 새해의 벽사기복을 염원하기에 시공간적으로 가장 적합한 신임을 절감하는 시간이었다. 

‘사천왕청(四天王請)’을 읊는 스님의 낭랑한 염불소리와 신도들의 낮고 묵직한 ‘사천대왕’ 정근소리가 어우러지며 겨울아침의 산사에 퍼져나갔다. 한명씩 재단에 나와 절을 하며 각자의 소망을 발원하였고, 차가운 땅에도 아랑곳없이 계속 큰절을 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사천왕을 향해 세세하게 발원한 축원문의 가피를 가득 안고, 신도들은 대광보전으로 발걸음을 옮겨 정초기도에 들었다. 사방을 수호하는 신과 함께 새해를 열어가는 이상적인 종교공동체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다. 

마곡사가 정초 7일기도의 시작을 사천왕재로 연다면, 송광사에서는 정초 7일기도의 마지막을 사천왕재로 마무리한다. 이날 저녁에 사천왕재를 지내면서, 사중의 노스님과 주지스님 등 여러 사부대중이 참여한 가운데 중요한 연중기도로 사천왕재를 치르고 있다. 사천왕재를 봉행한 지 45년이 넘은 송광사의 경우 의례공간의 구성이 독특하다. 

대개 천왕문을 중심으로 바깥에 단을 차리고 천왕문을 향해 재를 지내는 데 비해, 이곳에서는 천왕문 안에 스님들이 자리하여 대웅전을 향해 재를 지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재단은 법당을 향한 안쪽에 차려지고, 신도들은 천왕문 바깥에 도열하며, 스님들이 좌우의 사천왕과 함께 도량을 향하는 독특한 구도를 이룬다.

이는 사천왕의 임무가 불법을 옹호하는 것임을 떠올리면 금세 무릎을 치게 된다. 사천왕을 대상으로 한 의례이지만, 그 또한 삼보의 범주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삼보 지켜내는 든든한 외호자

백양사는 매달 음력 초하루와 보름 새벽에 올리는 사천왕기도로 이름이 높다. 새벽예불이 끝난 뒤 스님들이 모여 간단한 공양물을 차려놓고 올리는 기도이다. 백양사 승가대학의 학장스님들은 소임이 바뀔 때 사천왕기도가 끊기지 않도록 인계하는 것이 소중한 임무의 하나이다.

2008년의 기록을 보면 당시 학장인 법광스님은 초하루․보름마다 새벽예불을 마치고 사천왕문에서 천수경을 독경했는데, 학장 소임을 맡고 3년째 계속하는 기도였다. 앞서 학장을 지낸 혜권스님이 소임을 넘기며 신신당부한 데서 이어받은 일이다. 

혜권스님은 수십 년간 백양사에 사천왕기도를 끊이지 않게 한 장본인 가운데 한 분이다. 스님은 “부처님 일을 할 때는 사천왕에게 기도하는 것이 좋다. 그저 도량이 편안해지고, 학인들이 정진에 전념하길 기원한다. 사천왕기도를 한 날이면 어려운 일도 순조롭게 풀린 경우가 많다.”고 말한다. 스님들이 초하루․보름마다 올리는 백양사의 사천왕기도는, 모두 잠든 새벽에 홀로 깨어 정화수를 떠놓고 식구를 위해 정성들이는 어머니의 마음을 닮았다. 

매년 정월에 사천왕재를 지내는 영광 불갑사의 경우, 사천왕에 얽힌 내력이 설화로 전한다. 이곳의 사천왕상은 본래 고창 연기사에서 조성해 모신 것으로, 조선말에 명당을 탐내던 관리의 방화로 대가람이 전소되고 말았다.

천왕문은 화재를 면할 수 있었으나 폐사지가 되면서 사천왕상 또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 뒤 불갑사 중흥주인 설두스님의 꿈에 사천왕이 나타나, 1876년 법성포에 방치된 사천왕상을 찾아 모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불갑사에서는 사천왕을 모신 뒤부터 작은 불도 나지 않았고, 6.25전쟁 때 군인들이 만세루를 태우고자 불을 붙였지만 손바닥 크기의 그을음만 낸 채 꺼지고 말았다고 한다. 크기도 세부조형미도 으뜸인 이곳의 사천왕은 삼보를 굳건히 지켜내는 본연의 가피를 그대로 보여주며, 든든한 외호자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사천왕문 안에서 저녁에 올리는 ‘범어사 사천왕기도’.
사천왕문 안에서 저녁에 올리는 ‘범어사 사천왕기도’.

천왕문을 둘러싼 설단양상

범어사에서는 섣달보름 저녁에 한 해의 무탈함과 다음 해의 안녕을 빌며 사천왕기도를 올린다. 사천왕에게 공양과 기도를 올린 다음, 공양간의 조왕신을 찾는다. 한 해의 마감과 시작을 앞두고 천왕문과 상후원ㆍ하후원의 세 곳에 올리는 기도는 주지스님과 수십 명의 스님들, 백여 명이 넘는 신도들이 참여하는 범어사의 중요한 행사로 전승되고 있다. 

범어사의 사천왕기도는 천왕문 안에 설단(設壇)하여 공양물을 차리고 재단 앞에 흰 천을 드리워둔다. 따라서 의식을 집전하는 스님들이 천왕문 안에서 법당을 향하는 점이 송광사와 같지만, 재단을 천왕문 안에 차리고 앞을 가림으로써 천왕문공간이 의례의 중심영역을 이룬다는 점에서 차이를 지닌다.

또한 송광사와 범어사는 어둠이 깔린 저녁에 사천왕을 모시는 점이 주목된다. 이는 “사성(四聖)은 오전에 모시고 육범(六凡)은 해질녘에 부른다.”고 하듯이, 신중은 육범의 존재이니 저녁에 청하는 본래 의미를 따른 것이다. 

천왕문은 일자형의 문이 아니라 입체적 건물에 사천왕을 모시고 있어, 이러한 공간특성을 활용해 재를 지내는 양상이 저마다 달라 흥미롭다. 천왕문 앞쪽에 재단을 차리는 보편적 구도에서부터, 천왕문 안과 천왕문을 지나서까지 다양한 경향을 보여, 이에 대한 해석도 사찰마다 전승되어올 법하다. 특히 백양사 사천왕기도처럼 스님들이 주체가 되어 초하루․보름의 새벽기도로 전승되는 유형은 매우 드문 사례이다. 

새해가 되면 집집마다 대문에 세화(歲畵)ㆍ문배(門排)를 붙여 벽사기복하고, 마을의 입구인 동구(洞口) 밖에서는 당산나무․장승에 제를 지낸다. 안과 밖의 경계지점이자 모든 것이 드나드는 ‘입구’는 종교적으로 민감하고 중요한 곳이기 때문이다.

사천왕은 이러한 의미에 더하여, 중턱쯤 이른 수행자를 끊임없이 외호하고 경책해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사방(四方)은 ‘나’를 중심으로 전후좌우의 모든 세계를 뜻하니, 새해에 우리의 마음이 나태해지지 않도록 사방에서 지켜주고 꾸짖어주길 기도할만 하지 않은가. 

[불교신문3555호/2020년2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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