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선원 특집] 위례 상월선원, 그 90일 여정

상월선원 정진결사 · 한국불교 중흥결사
대한민국 화합결사 · 온 세상 평화결사

2019년 11월11일. 위례 상월선원에서 마침내 동안거 천막결사가 시작됐다. 90일간 유례없는 혹독한 청규 앞에서 목숨을 걸고 무문관 정진에 들어간 9명의 스님들이 상월선원 앞에 섰다. 사진 왼쪽부터 도림스님, 재현스님, 진각스님, 심우스님, 성곡스님, 자승스님, 호산스님, 무연스님, 인산스님이다. ‘상월(霜月)’의 광명이 온 우주를 비추어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만드리라 발원한 아홉 스님들은 환한 웃음을 머금고 흔연히 선원에 몸을 들였고 그 직후 상월선원의 문은 자물쇠로 굳게 채워졌다. 한겨울 혹한 속에서 한 겹의 천막에 의지해 겨울안거를 나며 한국불교 중흥을 발원하는 역사적인 ‘90일 고행 천막결사’가 시작된 것이다. 상월선원의 정진결사가 곧 한국불교 중흥결사이자, 대한민국 화합결사, 온 세상 평화결사가 되리라.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2019년 11월11일. 위례 상월선원에서 마침내 동안거 천막결사가 시작됐다. 90일간 유례없는 혹독한 청규 앞에서 목숨을 걸고 무문관 정진에 들어간 9명의 스님들이 상월선원 앞에 섰다. 사진 왼쪽부터 도림스님, 재현스님, 진각스님, 심우스님, 성곡스님, 자승스님, 호산스님, 무연스님, 인산스님이다. ‘상월(霜月)’의 광명이 온 우주를 비추어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만드리라 발원한 아홉 스님들은 환한 웃음을 머금고 흔연히 선원에 몸을 들였고 그 직후 상월선원의 문은 자물쇠로 굳게 채워졌다. 한겨울 혹한 속에서 한 겹의 천막에 의지해 겨울안거를 나며 한국불교 중흥을 발원하는 역사적인 ‘90일 고행 천막결사’가 시작된 것이다. 상월선원의 정진결사가 곧 한국불교 중흥결사이자, 대한민국 화합결사, 온 세상 평화결사가 되리라.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 아홉 스님들의 위대한 결사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2019년 11월11일 위례 상월선원에서 한국불교 수행문화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전 총무원장 자승스님을 비롯한 9분의 스님들이 냉방 노천 천막에서 씻지도 않고 묵언하며, 하루 한 끼 공양과 14시간 정진을 시작한 것이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스님들은 선방 문을 걸어 잠그고 삼매에 들었다. 그 사이 밖에서는 날마다 야단법석이 벌어졌다. 최근까지 다녀간 사람들만 해도 10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기세가 대단하다.

처음 천막결사 소식이 알려졌을 때는 기대와 우려가 공존했다. 청규 자체가 생소한 까닭이다. 한쪽에서는 원만히 회향한다면 불교수행의 새 역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고, 또 다른 쪽에서는 하나도 지키기 어려운 청규를 다 지켜가며 무사히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표하기도 했다.

불신과 의혹의 눈길은 9명 스님들이 목숨걸고 정진하는 천막 현장에서 불철주야 함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기대와 바람으로 변해갔다. 서울 조계사, 봉은사, 수국사, 구룡사, 연주암, 성남 봉국사, 안양 염불암 등 사찰 신도들이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상월선원 법당을 찾아와 기도하고 선원 울타리에 소원등을 달았다.

겨울방학을 앞둔 종립학교 학생들도 상월선원을 체험학습 장으로 택했다. 청소년들은 이곳에서 한국불교의 안거문화 전통을 체험하고, 편안함과 편리함을 내려놓고 90일 쉼없이 고행하는 스님들을 통해 어려움을 이기는 힘과 용기를 배우고 돌아갔다. 

편안함 내려놓고 혹독한 청규
죽기를 각오 ‘고행결사’ 스님들
정진력, 수행력에 불자들 감화
전국 각처 10만여명 참배하다

토요정진법회는 재적사찰을 막론하고 많은 대중이 일심으로 기도하는 자리였다. 결제 후 첫 번째 맞은 토요일 100여 명이 천막법당에서 기도하고, 정진 대중을 응원했다. 두 번째 토요일에는 동참자가 두배로 늘었고, 한 달 후에는 400명에 가까운 불자들이 너나없이 찾아왔다. 세대와 연령을 뛰어넘어 상월선원이 주목받은 이유가 스님들의 치열한 정진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무엇보다 12월 첫째주와 둘째주 2주에 걸쳐 진행된 토요철야정진은 커다란 변곡점이 됐다. 각 사찰에서 모인 사부대중 200여 명이 밤새 기도하며 천막법당 안은 수행열기로 가득 찼다. 그리고 1주일 뒤, 전국 25개 교구본사 주지 스님들과 신도들이 철야정진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연이은 철야정진과 교구본사 주지 스님들의 참여 후에는 상월선원을 바라보는 인식도 확 달라졌다. 냉소적인 시선에서 ‘한번 가볼까’ 하는 마음으로 변하는 계기가 됐다. 찾아오는 신도들의 모습도 진화했다. 초기에는 단체로 방문했다면, 반결제 이후에는 개별적으로 상월선원에 와서 기도하는 불자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방문객수를 일일이 헤아리는 일이 불가능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월선원 스님들과 똑같은 청규로 정진해보는 체험관 참여도 잇따랐다. 12월7일 이기흥 중앙신도회장, 윤성이 동국대 총장 등 재가자들에 이어 조계종 중앙종회의장 범해스님과 부의장 장명, 법원스님이 입방한 후 스님과 신도들의 신청이 줄을 지었다.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참가를 희망했던 이들은 특별한 기회를 놓쳐 아쉬워했다.

천막법당은 신심나는 기도처이자 신명나는 야단법석의 장이 됐다. 매주 다채로운 향연이 펼쳐졌다. 박범훈 불교음악원장과 봉은사 국악합주단이 불교음악과 흥겨운 우리 가락을 연주했다. 국악인 김성녀, 안숙선 씨와 가수 장사익, 김덕수 사물놀이패 공연, 불자가수 우순실, 주병선 씨 등 유명인들이 앞다퉈 찾아와 공연을 선보였다. 1월10일 처음 열린 ‘상월합창축제’는 참가를 원하는 사찰합창단이 늘어나면서, 세차례나 진행됐다. 

일반 사찰에서도 상상하지 못할 법석이 상월선원에서 펼쳐질 수 있었던 것은 신행문화가 달라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법당이 엄숙한 기도공간을 넘어, 일상을 향유할 수 있는 편안한 마당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자승스님은 입재 전, 시중불교를 강조했다. 불교가 이제 산중이 아닌 세간과 가까운 곳으로 다가와야 한다는 것이다.

‘쇼’는 스님 자신이 할 테니, 천막 바깥의 스님과 불자들은 눈치보지 말고 신명나게 놀아보라고 당부했다. “시끄러움 속에서 고요함을 찾는 것은 나와 함께 스님들 몫이니 걱정하지 말고, 기도할 땐 기도하고, 평상시에는 법당을 놀이터로 삼으라.” 입재 전 막연하게 다가왔던 스님의 당부가 천막법당서 실화로 구현된 것이다.

천막결사에 나선 스님들의 90일간 노정이 끝나가는 지금 우리에게 일어난 변화는 적지 않다. 편안함과 풍족함은 물론 생사의 두려움마저 내려놓고 치열하게 정진하는 수행자들 곁에서 불자들은 환희심을 느끼고 있다. 결사가 원만히 회향하고, 각자 자리로 돌아간다고 해도, 상월선원에서 틔운 새로운 수행과 신행의 불씨는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

천막결사에 들어간 스님들이 그토록 원했던, 한국불교 중흥, 신행과 수행문화의 변화가 목전에 다가왔다. 세상과 한층 가까워진 불교, 한국불교의 역사가 새롭게 열렸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 결사 목표는 하나 “오직 부처님 법대로”

위례 상월선원 정진결사가 특별한 이유는 최악의 조건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비구는 가장 낮은 자가 되어 가장 엄격한 고행을 자처하는, 진리의 탐구자다. 그 가장 앞줄에 부처님이 계셨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부처님보다 훨씬 높다.

과거처럼 큰 방에 모여 가부좌를 하지만 낮은 자의 극한 고행과 거리가 멀다. 각처에서 가져온 음식, 전국서 찾아오는 도반과 단월들의 보시, 1인1실, 법을 논하지도, 경책하지도 않는 편안한 환경은 일반인들이 상상하는 선원의 일반적 모습은 아니다. 

본래 선(禪)은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성품을 보아 부처를 이루게 함’(直指人心 見性成佛)이므로 중요한 것은 내면이지 외부 환경이 아니다. 그래서 좋은 수행환경을 무조건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현들이 ‘춥고 배고파야 도를 이루려는 의지가 생긴다(飢寒發道心)’고 경책했던 까닭을 되새겨야 한다.

안거 때마다 3~4000여 수좌들이 선원에서 목숨을 걸고 정진하는 1000년 넘은 수행문화를 찬탄하면서도 그 한 켠에는 고행이 사라지는데 대한 우려가 적지 않았던 이유다. 그래서 목숨을 건 대중들이 정진하는 상월선원이 특별하다. 

불교는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부처님 법대로’를 내걸고 정법(正法)에 의지하고 수행하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찬이슬과 비바람을 맞는 고행(霜)으로 중생구제와 지혜증득이라는 수행자 본래 정신(月)을 회복하는데 생애를 바쳤던 수행자가 있었기에 불맥(佛脈)은 오늘도 면면히 흐른다. 불교는 어려운 상황에 놓일 때마다 스스로를 정화(淨化)하는 결사(結社)를 통해 극복했다.

어쩌면 부처님의 상가(僧伽)도 결사와 같다. 인도의 브라만이 타락하여 민중들의 외면을 받을 때 부처님이 이끄는 비구들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천한 사람들과 함께 고행하며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며 귀하다는 가르침을 펴 실의에 빠진 인도민중은 물론 국왕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우리나라도 고려시대 지눌의 정혜결사와 요세의 백련결사가 있다. 두 결사는 지나친 불사, 승단에 대한 과도한 혜택, 종파 분열, 정치세력과 유착 등 당시 불교계 타락상을 비판하며 부처님 법대로 살 것을 서원하며 출발했다. 이들은 모든 이익과 명예를 벗어던지고 철저하게 수행했다. 

지눌의 수선결사, 경허의 선수행은 해방 후 1947년 봉암사 결사로 이어졌다. 봉암사 결사 역시 정법을 회복하고 수행자 본연의 자세를 되찾고자 했던 기존 결사정신을 계승했다. 한국불교는 조선 500년과 일제를 거치며 무속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법은 퇴락하고 대처가 득세하는 말법(末法)의 어둠 속에 빠졌다.

이에 경허, 만공, 용성, 한암 등 간화선 거목의 수행 전통을 이은 성철, 자운, 향곡스님 등 20여명의 수좌들은 구산선문 중 한 곳이었던 문경 봉암사에 모여 청정 수행가풍 회복의 기치를 들었다. ‘부처님 법대로’ 기치를 걸고 18개의 구체적 실천 방안인 공주규약(共住規約)을 내세웠다.

그 핵심 내용은 정법구현, 자급자족, 솔선수범, 보시 거부, 근검절약, 참선 정진 생활화, 세속 배격이다. 낮은 곳에서 욕심을 버리고 고행을 감내하며 오직 도를 구하는 데만 매진하며 중생을 구제한다는 불교의 출발과 공주규약 내용이 똑같다. 

이처럼 불교는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부처님 본래 가르침, 비구의 삶으로 돌아가자는 모임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했다. 상월선원 정진 대중들이 주는 가장 큰 의미는 우리가 갈 길을 다시한번 일깨웠다는 점이다. 우리 종단은 가장 어려운 환경에서 세계 최고 최대 종단을 일궜다. 1만 명이 넘는 수행자들, 1000만 2000만을 헤아리는 불자, 천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수많은 고찰과 광대한 토지, 많은 부와 정치적 영향력….

우리는 이러한 성취가 불국토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갈수록 신도수는 줄어들고 영향력도 낮아지며 신뢰도는 하락하는 예상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는 복을 짓는 것을 공덕으로 여기는 우를 범한 것이다. 육조대사가 이른대로 “견성이 공(功)이고, 평등하고 곧음이 덕(德)인데” 달마 앞의 양무제처럼 절 짓고 보시하고 공양 올림을 공덕으로 잘못 알고 달려왔다. 

총무원장을 역임한 자승스님은 역대 어느 총무원장보다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 많은 복을 짓고도 죽음을 걸고 고행정진을 자청하는 이유는 진정한 공덕이 오직 마음으로 짓는 것임을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종단이 가야 할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박부영 주필 chisan@ibulgyo.com

[불교신문3554호/2020년2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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