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월선원을 말하다

원산스님
원산스님

➲ 통도사 前 주지 원산스님

‘단경’ ‘서장’ 인용 천막결사 강조

영축총림 통도사 전 주지 원산스님은 1월16일 상월선원을 찾아 천막법당에서 법문을 설하고 “한국불교가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파트가 들어서고 신도시 신축공사가 한창인 시끄러운 도시 한복판에 전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스님과 8명 스님들이 천막법당을 세워 90일 엄동설한에 안거에 들어갔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이 곳에서 안거를 하고 정진하는 것은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불교계 종단의 큰 불사가 아닐 수 없다.” 

원산스님은 “일부에서는 왜 신도시 건축이 한창인 이곳에서 정진할까 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그 뜻을 이해 못하는 사람이 많다”며 <육조단경>과 <서장>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육조 스님은 부처님 법이 산중이 아니라 세간에 있다고 말씀했고 대혜종고스님은 <서장>에서 시끄러운 가운데서 공부해 득력을 하면 고요한 가운데 공부해서 힘을 얻는 것보다 몇 천배나 강하다고 했다. 시끄러움에서 벗어나 공부하려면 보통 용을 써서는 안된다. 시끄러운 경계를 떠나 오직 화두일념, 참선정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시끄러운 가운데 공부한 힘이 고요한 가운데 공부하는 힘보다 훨씬 뛰어난 법이다.”

원산스님은 또 “우리 불교는 이제 조용한 곳만 찾아서는 안 된다. 산중불교에서 시중불교로 변모해야 한다”며 “시중에 사는 중생들을 위해 같이 부딪히고 생활하면 부처님 법을 더 잘 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님은 과거 자신의 수행경험을 털어놓기도 했다.

“저 역시 산중에 살고 선방에서 공부했지만 그 안에서는 저절로 화두가 들린다. 시끄러운 곳에 오면 소리가 들리는데 그 경계를 벗어나야 한다. 직지사에서 7년 살 때, 정말 관광객이 많이 왔다. 논강하려면 오늘 책을 읽어야 하니까, 사람들이 아무리 왔다 갔다 해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이런 간절함이 있을 때는 시끄러운 가운데에도 틀림없이 공부가 됐다.”

이 날 원산스님의 법문은 유독 간절한 마음의 울림이 전해졌다. 천막결사에 들어간 9인의 스님 가운데 한명인 진각스님이 원산스님의 제자다. 원산스님이 상좌의 평상시 식사량이 비교적 많았는데 한끼 공양 청규에 마음이 쓰인다고 하자, 좌중에 웃음꽃이 피어나기도 했다.

“스님들이 대도(大道)를 성취하면 좋고, 여기서 안거를 하고 정진하는 것은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불교역사상 종단의 가장 크고 위대한 불사가 아닐 수 없다. 억지로 있으라고 하면 남아 있을 사람 한 명도 없다. 그래서 상월선원 결사를 계기로 불교가 조금이나마 달라지길 바란다. 많은 스님들이 그런 염원을 갖고 있다. 불교는 수행의 종교이고 깨달음의 종교다. 깨달음을 중생에게 회향하는 종교다. 공부가 없으면 불교가 있을 수 없다.”

원산스님은 마지막으로 천막결사에 들어간 스님들의 건강과 안위를 걱정했다. “하루 한 끼 공양에 머리와 수염도 안 깎고 목욕도 못하고 14시간 정진중이라…. 보통 선원에서 8시간 하고 좀 더 하면 10시간 하는 것과 비교하면 하루 14시간 정진하는 상월선원의 대중들 생활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나도 젊을 때 12시간 정진해보니 마음먹고 쉴 시간도 없었다. 그런데 14시간 정진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 끼 공양만 하니까 할 수 있지, 세끼 다 챙겨먹고는 할 수도 없다. 모쪼록 한국불교 역사상 오래 남을 대작불사로 원만회향하길 바란다.”

홍다영 기자 hong12@ibulgyo.com
 


일반적인 방함록은 안거에 든 정진대중과 외호대중의 명단이 수록되는데 혜거스님은 발원문 성격의 ‘방함록 서’를 친필로 작성해 상월선원 천막결사에 의미를 부여했다.
일반적인 방함록은 안거에 든 정진대중과 외호대중의 명단이 수록되는데 혜거스님은 발원문 성격의 ‘방함록 서’를 친필로 작성해 상월선원 천막결사에 의미를 부여했다.

➲ 금강선원장 혜거스님의 ‘상월선원 방함록 序’

南漢城下霜月白   남한산성 아래 휘영청 밝은 서리달빛
朔風寒雪松葉黑   삭풍한설에 솔잎마저 꽁꽁 얼어 검푸르다
少林隻履東來後   달마스님 법맥이 우리나라에 전해온 오늘
碧眼炯炯氷石壁   밝고 밝은 선객 눈빛 차가운 천막 아래 빛나네

서울 금강선원장 혜거스님이 친필로 쓴 위례 상월선원 용상방(龍象榜)과 ‘방함록(芳銜錄) 서(序)’가 1월6일 공개됐다. 용상방은 결제 때 선원 스님들의 법명과 소임을 적은 것이고, 방함록은 안거 기간 동안 정진한 대중과 외호 대중의 명단이다. 결제 때 선원에서 용상방을 보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방함록 앞에 서문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혜거스님은 “선방에서 방함록 앞에 서문을 붙인 전통을 떠올리며 ‘상월선원 서(序)’라고 이름 짓고 글을 썼는데 사실은 ‘발원문’의 성격이 강하다”며 “대중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수행하지 못하지만, 스님들 정진 잘 하라는 바람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초라고 할 수 있는 ‘방함록 발원문’을 쓴 연유에 대해 스님은 “상월선원에서 정진하는 스님들이 장애 없이 공부를 성취하라는 마음을 담았다”며 “또 위례신도시 포교를 위한 불사가 원만하게 성취했으면 하는 뜻도 더했다”고 밝혔다.

앞서 혜거스님은 기해년 동안거 결제 전 ‘상월등휘(霜月騰輝, ‘상월’의 광명이 온 우주를 비추어 맑고 깨끗하게 만든다)’를 직접 써서 상월선원 결사를 찬탄한 바 있다. 당시 스님은 ‘상월선원((霜月禪院)’의 ‘상월’이 가진 의미를 이같이 설명했다.

“상월이란 이름을 들으니 육조 혜능스님 제자인 영가스님의 <영가집>에 ‘상송결조(霜松潔操) 수월허금(水月虛襟)’이라는 구절이 떠올랐다”며 “영가스님을 극찬하는 말로 서릿발처럼 소나무처럼 맑고 깨끗한 수행, 물에 비친 달처럼 텅 비어 부처님과 같은 큰 지혜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칼바람을 마다않고 고행을 자처한 상월선원 역시 눈 내리고 찬바람 부는 추운 겨울에도 서릿발 같고 소나무 같은 지조로 수행하는 의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스님은 목숨을 내걸고라도 정진하겠다며 상월선원 결사에 동참한 대중 스님들의 발심을 높이 평가했다. “하룻밤 공부해도 억겁의 업장이 소멸된다고 하는데 스님들이 한 철 공부하는 뜻이 대단하다”며 “지금 시대 위례신도시에 상월선원이 열린 것은 새로운 불교수행의 표본을 마련하는 불사”라고 평가했다. 

처음 상월선원을 찾은 스님은 상월선원이 자리잡은 산 이름을 알고 놀라웠다고 한다. 청량산, 일장산 혹은 주장산이란 이름이 깨달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스님은 “청량은 맑고 깨끗해 업장이 없어진다는 뜻이고 일장은 해가 길다 즉 밤이 없다는 것으로 곧 깨달음의 세계를 말한다. 낮이 길다는 주장 또한 마찬가지”라고 풀이하며 “깨달음을 뜻하는 이름을 가진 덕분에 좋은 회상이 열린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무엇보다 대다수 도량이 불사 후 정진을 하는 게 일반적인데, 상월선원은 동안거 결제 내내 스님들이 정진하고 기도한 후에 불사가 시작되니 도량이 춤을 추는 것은 당연하다”고 덧붙였다.

혜거스님은 추운 겨울 고행을 이어가는 상월선원 정진대중의 수행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실 좁은 공간에 스스로를 가두고 정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망아지처럼 사방천지로 가고 싶어 하는 몸뚱이를 작은 방석에 묶어 정진하다보면 몸이 죽겠다 싶을 순간이 온다. 그 땐 저절로 마음까지 복잡해진다. 스님은 “그 마음을 극복하고 나면 몸의 고통도 이겨낼 수 있다”며 “지금 상월선원 스님들은 그 힘을 기르고 있다”고 봤다.
 

상월등휘(霜月騰輝). ‘상월의 광명이 온 우주를 비추어 맑고 깨끗하게 만든다’는 휘호를 직접 써내려가는 혜거스님.
상월등휘(霜月騰輝). ‘상월의 광명이 온 우주를 비추어 맑고 깨끗하게 만든다’는 휘호를 직접 써내려가는 혜거스님.

또 상월선원 결제가 원만히 끝나는 것만으로 수행의 새 풍토를 만들 것이라는 기대감도 전했다. “사람은 가장 어려울 때 크게 발심하기 마련이다. 요새 고행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겠냐”며 “상월선원 청규는 자기를 버리지 않으면 해낼 수 없기에 고행자체를 수행이라 할 수 있다”고 스님은 말했다.

“청정한 마음, 구경심으로 가는 길은 신명을 버리고 용맹정진하는 것인데, 그런 뜻에서 결사는 최고의 마음공부”라며 “회향이 잘 이뤄지면 불교는 새로운 수행문화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옛날에 선방에서 용맹정진을 할 때 스님 3분의 2는 잠을 잤다”며 “그 바람에 죽비에 등이 터질 정도였지만, 해제하고 나면 모두들 한 뼘씩 커져 나왔다”고 회상하며 “상월선원 대중 스님들도 비록 몸이 아프다 하더라도 억겁의 업을 소멸했기 때문에 엄청나게 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부에서 시비가 제기되는 것에 대해서도 “해제하고 나오면 모두가 알게 될 것”이라며 “공부하는 곳에 대해 흠집을 찾고 의심하기보다 차라리 더 큰 고행하는 것을 구상하는 게 낫다”고 일침을 놓았다. 이어 “수행하는 스님들 시중을 들거나 참관만 해도 업장이 소멸된다”며 신도들에게 열심히 기도할 것을 당부했다.

“이미 많은 불자들이 다녀갔고 해제까지 수 만 명이 운집할 것으로 추산되니, 도량에 발심한 신도들이 폭주하는 형국이라 좋은 모습이 아닐 수 없다”며 “밖에서 일심으로 기도하는 대중들의 기운을 받아 상월선원 결제 대중들이 무탈하게 정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 동국대 이사장 법산스님

“‘나’는 죽고 자성청정심 살아나
그것이 천막결사의 바른 이치”

법산스님
법산스님

“조계선풍 어디서 찾으랴.(曹溪禪風何處覓) 서릿발 속 오롯이 앉아 조사관을 뚫어라.(霜林獨座透祖關) 달빛 구름 걷히고 대천세계 빛나니.(月燭雲捲照大千) 염화미소가 바로 이 자리리라.(拈花微笑卽次在)” 동국대 이사장 법산스님은 상월선원 천막결사에는 소식을 듣고 이같은 ‘게송’을 읊어 눈길을 끌었다. 

법산스님은 “일부에서는 천막결사의 혹독한 청규를 두고 극단적 고행이라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선(禪)을 잘 모르고서 하는 이야기”라고 말했다. “선은 백척간두의 절벽에서 한 걸음 더 내딛겠다는 죽을 각오가 없으면 결코 번뇌망상을 조복받을 수 없습니다. 위례 상월선원 천막결사에 동참하는 스님들이 찬탄과 격려를 받아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법산스님은 이처럼 목숨을 걸고 고행을 자처하는 천막결사의 정신과 이치를 올바로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말 있는 곳에서 말 없는 곳으로 가는 게 교학이라면 말 없는 곳에서 말 없는 자성을 깨닫는 것이 선입니다. 위례 천막결사 현장은 가장 치열한 수행의 공간으로 그곳이 바로 무문관입니다. 무문관은 다른 말로 사관(死關)이라고 합니다. 죽으러 가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임제 선사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고 했지만 그에 앞서 자신부터 죽여야 합니다. 빗장을 걸어 잠그고 여기서 죽겠노라고 정진하면 번뇌망상의 ‘나’는 죽고 자성청정심의 내가 살아납니다. 살아날 길 없는 막다른 곳에서 살길이 생긴다는 절처봉생(絶處逢生)의 이치가 바로 그것입니다.”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 조계종 고시위원장 지안스님

“한국불교 수행풍토 살아있구나
상월선원 천막결사가 보여줬다”

지안스님
지안스님

상월선원에서 9명 스님이 겨우내 정진하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확인한 조계종 고시위원장 지안스님은 “스님들이 발심해서 용맹정진을 하는 것은 종단적으로도 정말 좋은 일”이라고 기뻐했다.

난방도 안 되는 천막에서 씻지 않고 옷 한 벌로 생활하는 것은 물론 묵언하며 하루 한 끼만 먹고 14시간 정진하는 이은 종단 초유의 일이기도 하다. 스님은 상월선원 정진 자체가 “조계종의 수행풍토가 살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안스님은 정진 대중 가운데 선원장 무연스님, 입승 진각스님, 지객 호산스님과 각별한 인연을 갖고 있다. 한 세 스님은 모두 지안스님 제자로, 통도사승가대학에서 사제의 연을 맺었다. 스님 한 명 한 명이 모두 소중한 제자들이라는 지안스님은 “무연스님은 히말라야 설산에서도 정진하는 등 뛰어난 정진력으로 정평이 나있다”며 “진각, 호산스님 또한 선방 정진 경험이 많은 뚝심 있는 수좌들”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40년을 지켜봐온 세 스님은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정진하는 수행자들”이라며 “대견스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스님은 추운 날씨에 정진하는 상월선원 대중 스님들의 건강에 대한 염려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많은 불자들이 상월선원에 와서 기도함으로써 신행과 수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수행정신이 되살아나는 것에 대한 기쁨도 전했다. 지안스님은 “해제 전 꼭 방문하고 싶었지만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서 찾아가지 못해 미안하다”며 “함께 동참하지 못했지만, 저 대신 한국불교와 종단을 위해 정진해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어현경 기자 eonaldo@ibulgyo.com

[불교신문3554호/2020년2월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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