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와 ‘윷’만 대박이겠는가
‘도’가 그 이상일 때도 있다


이번 명절에는 ‘모’나 ‘윷’의 흡족함
요긴할 때 ‘도’ 마음으로 넉넉해지길

선행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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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에는 사찰에서도 윷을 논다. 전 대중이 함께 참여하는 섣달 그믐날 저녁은, 규모가 큰 도량에서는 선원 강원 율원 종무소 별로 자리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도량에서는 큰 방에 대중이 한데 모여 즐긴다. 그것은 한해를 보내면서 대중의 화합과 액운을 떨치는 의미가 있다.

윷은 지역에 따라 종자기에 담는 형식과 밤나무로 깎아 손에 쥐는 윷이 있다. 그동안 지내는 처소마다 윷은 나의 담당이었다. 밤나무를 적당한 길이로 잘라 두 토막을 네 조각내어 낫으로 깎다보면, 가늘고 얇은 부산물이 수북이 쌓여, 대중들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낫 하나로 동그스름하게 다듬는 것을 보고 신기해한다. 윷은 동그랗게 되어야, 던졌을 때 바닥에 닿는 순간 서로 부딪쳐 또르르 굴러, 가슴 쪼이듯 긴장하는 것이 제 맛이겠다. 

대중의 상황에 따라 많은 경우에는 종일 다듬는 모습에, 지나는 스님들이 빙긋이 웃을 때면, 내심 분위기 조성이 되었다 싶어 이쪽에서도 미소를 짓는다.

윷은 밤나무가 제격이다. 바짝 마른 후에도 단단함에서 부딪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그래서 한참을 보관해온 윷이 지금도 있다.

그날의 백미는 ‘모’와 ‘윷’이다. 윷과 모를 번갈아 두세 번 하게 되면 청백 진영을 떠나 환호한다. 수희공덕(隨喜功德) 곧 함께 즐거워하는 공덕이겠다. 그렇게 판이 무루 익어 앞서가던 포개진 말을 ‘도’로 잡는 경우엔 박장대소다. 모와 윷이 대박(?)이라면 긴요할 때의 ‘도’ 또한 그 이상일 때가 있다.

그날은 경품이 푸짐하다. 어른 스님의 글과 그림. 더불어 인근에 자리한 도자기를 굽는 가마에서는 가격이 상당한 다구들을 보시한다. 그로인해 윷판의 열기가 더욱 후끈할 때가 있다.

지난해에는 선원에서 명절을 지냈다. 통도사 인근에는 유명한 도자기 장인들이 많아 도자기 경품이 많았는데, 그 중에 유독 차를 보관하는 항아리에 시선이 쏠렸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 남다른 정진에 매진한 스님의 차지였다. 우연이지 싶어도 선원에서는 자타가 인정하는 정진 제일로 꼽는 스님이 우승하곤 한다. 한번은 봉암사에서 윷 대신 ‘성불도(成佛圖)’ 놀이에서 단 한명만이 오르는 성불의 자리에 그 철에 가장 정진을 열심히 한 스님이 오르는 모습을 보고 100여 명 납자-선객-들이 수긍을 했단다.

일찍이 봉암사에서 선감(禪鑑, 기본선원 스님 지도)소임으로 꼬박 1년을 정진하던 동안거에 어김없이 윷을 놀았다. 경품 중에 눈에 들어온 다구가 있었다. 다행히 그 다구를 선택할 수 있는 차례가 되어 막상 그 앞에 서서는 대기하고 있는 스님들이 많다는 생각에 바로 옆에 있는 아담한 걸망을 택했다.

1년 후 백양사 강원의 강주 소임을 보던 어느 날, 봉암사에서 함께 정진한 스님이 보자기에 싸온 상자를 열었다. 순간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을까 싶어 그만 눈을 크게 떴다. 그날 ‘찜’했던 다구였다. 강원 학인들을 제접하는데 필요할 것 같아서 들고 왔단다. 이후 해제철이면 빠지지 않고 한 번씩 만나서, 배낭을 지고 지리산을 2박3일 종주하곤 한다.

그 스님은 20여 년 전 법주사 강원에서 강의할 때의 인연인데, 강원을 졸업하고 줄곧 선원에서 정진하고 있다. 특히 그동안 용맹정진과 가행정진 하는 처소를 두루 다녔는데, 마침 이번 철에는 통도사 선원에서 정진하고 있어 공양 때면 자주 눈인사로 반가움이 더해진다.

모쪼록 이번 명절에는 ‘모’나 ‘윷’의 흡족함과 요긴할 때 ‘도’의 마음으로 충만 되어 넉넉한 한해이기를 기원한다.

선행스님 영축총림 통도사 한주

[불교신문3553호/2020년1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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