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거의 모든 유행은 한국 땅을 거쳐 간다”

거시적 풍수지리학 관점서
대한한국은 천작의 대명당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여기서 항상 지구 중심문제 
세상의 뜨거운 논제들 연구

한반도에 이름 알리지 못한 
세계 모든 사상 종교 문명은 
최고경지로 볼 수 없을 정도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나라! 
이러한 한국문화의 특징을 
‘단전성 문화’라 부르려 한다 

문광스님
문광스님

➲ 한반도는 ‘지구 중심혈’의 하나

‘한국학에세이’를 쓰면서 가장 먼저 거론한 것이 바로 ‘백두대간이 세계의 단전’이라는 표현이었다. 우리 몸에 많은 단전이 존재하듯이 지구상에도 단전에 해당하는 국가는 곳곳에 분포하고 있다. 한국 역시 그 가운데 하나에 해당하는 것이다. 한국이 지구상의 단전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풍수지리학의 안목을 좀 빌려올 필요가 있겠다.

우리 한국은 반도국가로 백두산이 대륙과 이어져 있지 않았더라면 섬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백두산은 한반도의 시작이자 시조산(始祖山)에 해당한다. 한국 산줄기의 족보를 설명해놓은 <산경표(山經表)>를 보면 백두대간을 기점으로 13개의 정맥으로 이어진 산줄기의 체계로 우리 땅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두고 있다. 일제가 한반도를 끊어진 낱개의 산맥개념으로 설명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민족의 결집된 힘이 백두대간이라는 하나의 용맥(龍脈)에서 용솟음쳐 나왔다는 것을 축소·왜곡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 거시적 관점으로 본 대한민국

우리 땅을 거시적으로 볼 때 한반도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나라는 일본이다. 네 개의 섬으로 구성된 일본은 태평양에서 불어 닥치는 물과 바람을 막아주는 방파제의 역할을 하면서 우리의 동남해의 해안선을 감싸주는 형국을 하고 있다. 

풍수학에서 좌청룡은 큰아들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는데, 일본 천왕이 백제의 후손임을 인정한 것을 비롯하여 유사 이래 일본이 우리로부터 수많은 문화재와 유물을 받아간 것을 기억해 보면 납득이 갈 것이다. 삼국시대의 불교와 고려시대의 청자와 불화, 조선의 도공과 통신사를 통해 수많은 선진문물을 이어받아간 것은 일본이 한국의 좌청룡이라는 지리학적 위상과 관련지어 볼 수 있다.

그렇게도 많은 문물을 전해주고서 도리어 수많은 외침을 받았건만 한국인 가운데에는 일본 본토로 쳐들어가서 저 땅을 정복하여 되갚아 주자고 하는 이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아마도 우리가 일본보다 좋은 터전을 향유하고 있다는 자긍심과 함께 일본은 한국의 좌청룡이라는 무의식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항상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만 그렇다고 내버릴 수도 없는 사고뭉치 장남과 같은 존재가 바로 좌청룡 일본이 아닐까 싶다. 

한반도의 우백호는 중국대륙이다. 우리나라의 주변을 살펴보면 좌청룡에 비해 우백호의 형국이 훨씬 광대하다. 우백호의 기세가 저토록 강하게 한국의 오른쪽을 겹겹이 감싸 안은 것을 보면 풍수적으로 한국 여성들의 힘이 강력하겠구나 하는 것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단적인 예로 한국의 딸들이 양궁이나 골프에서 세계 1위를 놓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한국 땅이 우백호의 강력한 지기(地氣)를 받고 있음을 쉽게 상기할 수 있다. 

서울의 좌청룡에 해당하는 고려대학교가 법학과 인문학이 발달한 것에 반하여 우백호에 위치한 연세대학교는 경제학·경영학과 같은 실용학문이 발달하고 여학생 비율이 다른 대학에 비해 월등히 많은 양상을 보인다. 사람은 땅 생긴 대로 산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데 한국의 여성 파워는 우백호에 해당하는 실용주의적 중국의 기세와 관련이 깊다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좌청룡과 우백호에 일본과 중국이라는 강력한 두 나라가 도사리고 있어서 때로는 강력한 위협을 받기도 하지만, 양국의 기운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중심을 잃지 않고 끊임없이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한반도의 남녘에 위치한 제주도는 그 존재 자체가 절묘하다. 한반도의 기운이 곧장 남쪽으로 빠지지 않도록 막아주는 독산(獨山)의 역할을 해 줌으로써 한국이 명당진혈(明堂眞穴)이 되는데 크나큰 일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의 맨해튼의 강력한 기운이 대서양으로 곧장 빠져 나가지 않도록 한 차례 막아주는 자유의 여신상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되겠다.   

우리나라에서 바라볼 때 앞에 마주하고 있는 안산(案山)은 필리핀,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파푸아뉴기니에 이르는 기다란 남쪽의 섬나라들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집에서 앞쪽에 바라다 보이는 안산이 일자로 쭉 늘어선 일자문성(一字文星)의 형국을 하면 머슴도 벼슬한다는 말이 있는데, 한반도의 안산은 태평양의 섬나라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는 형국을 하고 있어서 매우 듬직하다. 

그 건너편에 있는 호주대륙 전체는 자연스럽게 한반도의 객산(客山)이 되어 주고 있다. 대륙 전체가 우리의 객산에 해당하는 호주가 영국에서 독립하여 독자적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한반도의 입장에서 볼 때 또 하나의 호재로 작용한다. 게다가 길게 늘어선 남북아메리카 대륙은 한반도의 외청룡이 되기에 모자람이 없고,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이어진 혈맥은 한국 땅의 든든한 외백호가 되어 주고 있다.

이렇듯 우리 백두대간은 거시적인 풍수지리학의 관점에서 볼 때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의 완벽한 사신사(四神砂)를 갖추고 있는 하늘이 만들어낸 천작(天作)의 대명당이라 할 수 있다. 
 

풍수지리학으로 구성해본 한반도의 명당도(明堂圖)이다. 한국애니메이션학회 명예회장인 이상원한성대 교수가 필자의 설명을 듣고 디자인한 것이다.
풍수지리학으로 구성해본 한반도의 명당도(明堂圖)이다. 한국애니메이션학회 명예회장인 이상원한성대 교수가 필자의 설명을 듣고 디자인한 것이다.

➲ 명당 한국 땅에 위인 난다 

세상의 모든 국가는 그 땅이 주는 선물을 받고 산다. 한국은 비옥한 땅이 안겨준 풍요한 자원으로 먹고 사는 나라는 아니다. 땅의 영적인 기운을 받고 태어난 인재들이 수행과 공부를 통해 정신문명을 창조해 나가는 나라이다. 명당에서 인재가 나듯 명산(名山)에는 대찰(大刹)이 있게 마련이다. 백두대간의 천년 고찰들은 찬란한 한국불교의 역사와 치열했던 정신수련의 고행들을 증명해 주고 있다. 우리 산하대지에서 유(儒)·불(佛)·선(仙) 삼교의 대도인과 대학자가 무수히 출현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  

대한민국 역사에 위기가 없었던 적이 없지만 그 어떤 고난과 시련을 겪더라도 우리 민족이 정체성을 잃지 않고 고유의 역사와 전통, 언어와 문화를 지켜온 것은 우리 땅이 세계의 주요한 단전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 초당사걸(初唐四傑)의 한 명인 왕발(王勃)은 ‘등왕각서(王閣序)’라는 유명한 문장에서 ‘인걸(人傑)은 지령(地靈)’이라는 표현을 쓴 바 있다. 훌륭한 인물은 신령한 땅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다는 뜻이다.

지금껏 한국인들이 타고난 지혜와 우월한 정신력을 간직하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천기(天氣)가 하림(下臨)하고 지기(地氣)가 상승(上昇)한 생기처(生氣處)인 이 대한민국이 끊임없이 훌륭한 인물을 출생시켜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 한국문화 특징은 단전성 문화 

우리나라는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다. 우리 몸의 허벅지와 엉덩이가 비록 넓은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하단전과 중단전처럼 모든 기운이 지나가는 긴밀함은 갖추지 못했다. 단전이라는 공간은 비록 작지만 모든 기혈이 모여드는 중심센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 한국 땅에서는 항상 지구의 중심문제가 토론되어 왔고, 세상의 뜨거운 논제들이 연구되어 왔다. 한국인들은 늘 첨탑위의 첨부에 선 것처럼 세상의 정신문명을 참구(參究)해 왔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중심혈(中心穴)에 태어난 우리 선조가 겪어온 필연적 숙명이었다.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분단국가가 한국이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보와 보수, 산업화와 민주화 등 세상의 모든 양변은 이 땅에서 현재완료진행형의 형태로 담론되고 있다. 지구촌의 모든 유행은 한국 땅을 거쳐 가게 되어 있고, 거의 모든 사상과 종교는 이곳을 한 번 휩쓸고 가기 마련이다. 한반도에 이름을 알리지 못한 문명은 결코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이 땅에는 인류의 정신의 흐름들이 거쳐 지나간 흔적이 남겨져 있다.  

작지만 작지 않은 나라! 이러한 한국문화의 특징을 필자는 ‘단전성 문화’라고 지칭하고자 한다. 앞으로 한국불교의 역사와 한국사상의 특징, 그리고 한국인과 한국학이 드러내고 있는 ‘한국성(韓國性)’을 ‘단전성(丹田性) 문화’라는 코드로 한번 파헤쳐 보고자 한다.

[불교신문3553호/2020년1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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