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영
이소영

아미쉬(Amish)는 유럽의 군국주의와 종교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며 살아가는 일종의 종교 공동체이다. 이들은 다른 종교 공동체와 많이 다른데 첫 번째는 현대문명의 상징인 전기와 컴퓨터, 자동차, 의료시설과 보험 가입 등을 거부하며 가스와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바기(Buggies)라는 마차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BMW족(Bus Metro Walking)이라 동질감을 갖기도 했지만 스마트폰에게 잡혀 사는 지라 신기함 반 의아함 반이었다. 만약 요즘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스마트폰 중독치료 연구소를 여기에 세우면 제2의 유학 붐이 일지 않을까 싶은 엉뚱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 번째로는 가구당 평균 일곱 명 이상의 아이를 낳고 공교육을 거부하여 한 교실에서 1학년부터 8학년까지 함께 공부한 뒤 삶에 필요한 농사와 목축 기술을 배운다는 것이다. 이때도 경쟁을 앞세우기보다 서로 도와가며 익히는 방식이다. 언젠가 방송에서 들은 “10분만 더 공부하면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 혹은 “지하철 2호선을 타자”는 어느 고등학교 급훈이 떠오른 건 경쟁에 내몰린 우리 아이들에게 갖는 미안함 때문이리라.

마지막으로 모든 청년들에게 외부 세계를 경험하게 해보고, 원하면 아미쉬 공동체를 떠날 수 있는 자율선택권을 준다는 것인데 놀라운 것은 90%가 아미쉬 공동체에 남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경우, ‘헬조선’을 외치며 떠나고 싶어 하는 비율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씁쓸한 통계자료가 아닐 수 없다. 여기에 더해 가구당 일곱 명의 자녀라니. 저출산 절벽에 서있는 우리에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부러움과 아쉬움이 뒤섞였다.

우리는 ‘The Amish Village Tour’를 신청하고 바기에 올라탔다. 바기에 탄 관광객에게 설명해 주는 분은 아미쉬 할아버지. 결혼한 남자들은 수염을 자르지 않는다고 하더니 이 할아버지의 흰 수염 길이가 경륜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기를 타고 가며 보는 풍경은 마치 어릴 때 보았던 TV 드라마 ‘초원의 집’ 촬영장 같았다.

젊은이들은 부모의 눈을 피해 멀리 못 가도록 부모들이 만들어 준 무동력 스쿠터를 한발로 타면서 이동하고 있었다. 잠시 후 모자에 검은 정장을 입은 아버지, 흰 머리 수건과 블라우스가 달린 무채색 긴 원피스를 입은 엄마와 딸인 듯 보이는 가족들이 마차를 타고 가는데 그들 표정이 너무 밝아서 바라보는 나마저도 행복지수가 쑤욱 올라간 느낌이었다.

농장에서 만난 꼬마숙녀는 직접 짠 우유로 만든 아미쉬 브라우니를 파는데 사서 먹어보니 유기농에 맛도 좋았다. 어릴 때부터 노동의 가치를 익히는 소녀의 모습에서 요즘 매스컴에 오르는 신캥거루족이 겹쳐져 보였다.

농장에서 키우는 말과 소들에게 건초 먹이는 체험을 하고 나와 세탁기도 없이 손빨래한 빨래를 건조기가 아닌 초원의 바람과 햇살로 말리는 모습을 보니 기계문명에 찌든 우리에겐 오히려 그들의 삶이 더 사치인 듯 여겨졌다. 또한 아미쉬 사람들은 영혼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절대 사진을 찍지 않는다는 사실이 셀카를 즐기는 우리들에겐 적잖은 충격이었다.

그래서 우린 그들의 뒷모습만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뒷모습이 우리에게 말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진정한 행복은 물질의 수치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자신들은 21세기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소신을 갖고 자신들이 지켜온 18세기 공동체를 영위하는 것이라고. 

불교에서 말하는 궁극의 행복인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실천하는 것이 지상에서의 가장 큰 행복이자 축복이라고 믿는 그들에게서 본 것은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이 아닌 ‘백 투더 퓨처’였다. 가장 물질적이고 경쟁 지향적인 미국에서 살고 있는 아이러니한 아이콘인 아미쉬 공동체. 그 아이러니가 새로운 날을 향한 우리의 행복 지표가 되길 바라본다.

※ 필자는 연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2014년 <유심> 시조부문으로 등단했다. 삼희기획(현재 한컴)과 코래드에서 프리랜서 카피라이터로 활동 중이다.

[불교신문3552호/2020년1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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