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으로 오신 부처님] <40> 금성에 봄이 오니 꽃이 만개하네 - 자비 마립간①
[사랑으로 오신 부처님] <40> 금성에 봄이 오니 꽃이 만개하네 - 자비 마립간①
  • 조민기
  • 승인 2020.01.23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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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인, 잠시 눈을 좀 떠보시지요?
삽화=견동한
삽화=견동한

461년 서라벌 월성

혼례복을 입은 파호를 보며 청아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딸이 혼인하는 것을 직접 보았다면 미해가 얼마나 기뻐했을지 눈에 보이는 듯했다. 복호가 청아의 등을 다독이자 그녀가 복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정식 혼인을 하지는 않았으나 복호와 청아 사이에는 늦둥이 아들 백흔이 있었다. 세상을 떠난 미해를 대신하여 복호는 파호의 아버지 역할을 해주었고 지금도 곧 새신부가 되는 파호의 든든한 부모로 서 있었다. 

“참으로 곱구나. 네가 자비와 혼인을 하니 숙부는 참으로 안심이다. 보혜도 평생 너와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며 기뻐하더구나.”

복호는 단정하게 빗어 올린 파호의 머리 위에 금으로 된 관을 씌웠다. 복호의 딸 보혜와 미해의 딸 파호가 나란히 눌지의 아들 자비 마립간의 부인이 되었다. 미해도, 눌지도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금성의 제일 큰 어른은 복호였다. 자비는 복호에게 ‘갈문왕’의 지위를 내렸다. 마립간은 아니나 왕족으로서 마립간에 버금가는 혈통과 위치를 지닌 이에게 내리는 특별한 지위였다. 

“다 되었다. 오늘부터는 자비 마립간의 마노라이니 이 숙부보다 어른이다.”

놀리는 듯한 복호의 말에 파호의 얼굴이 부끄러움에 붉어졌다. 분홍빛으로 달아오른 파호의 뺨에 조심스럽게 손을 뻗던 청아가 머뭇거리다가 딸의 손을 잡았다. 혹시라도 화장이 지워질까 염려한 것이다. 

“아가, 언제 이렇게 커서 어여쁜 색시가 되었을까. 너에게는 첫 혼인이지만 마립간에게는 이미 두 분의 부인이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고 마립간과 보혜 부인께 예를 잘 갖추거라. 네가 자비의 마노라가 되어 금성에서 다 함께 살 수 있어 어미도 안심이란다.”

“어머니”

“가족보다 소중한 것은 없단다. 가족이 다 같이 모여 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

진심이 담긴 청아의 말에 파호는 끝내 눈물을 떨궜다.

“울지 마라. 마립간께서 보시면 못생겼다고 소박 놓으실라.”

어느새 방에 들어와 있던 습보의 말에 백흔이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평소처럼 스스럼없게 구는 오라버니와 남동생을 보며 파호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이제 가자꾸나. 마립간께서 너무 오래 기다리셨다.”

파호가 궁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서자 복호와 청아가 뒤에 섰다. 그 뒤로 습보와 조생이 손은 꼭 잡고 서서 신혼의 달콤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구천과 수리도 파호의 뒤를 따라갔다. 이윽고 대전에 도착하자 대신들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서 있었다. 파호는 천천히 자비를 향해 걸어갔다. 복호의 딸 보혜 부인과 미즐희 각간의 딸이 자비의 양옆에 앉아 있었다. 두 부인을 거느리고 세 번째 부인으로 파호를 맞는 자비의 얼굴이 싱글벙글했다. 

“감축드립니다.”

자비와 파호가 대신들을 향해 나란히 서자 대신들이 일제히 소리 높여 외쳤다. 파호의 얼굴이 노을처럼 붉어지자 자비는 활짝 웃는 얼굴로 신하들을 향해 손을 저었다. 

자비와 세 명의 부인들

혼례식과 축하연이 모두 끝나고 자비가 방으로 들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진 후였다. 파호는 혼례복을 그대로 입은 채 머리에 관까지 쓰고 앉아서 잠이 들어있었다. 자비는 미소를 지으며 잠든 파호를 한참 바라보았다. 피곤했을 텐데 그냥 자게 두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으나 머리에 쓴 저 무거운 관을 내려주고 답답한 혼례복이라도 벗어야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내일 아침에, 파호와 자비가 그냥 잠만 잤다는 소식이 밖으로 전해지기라도 하면 온갖 소문이 돌 것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한 자비는 머리를 저으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나저나 너무 곤히 잠들었는데 어떻게 깨운담. 한참을 고민하던 자비가 작게 헛기침을 몇 번 한 후 입을 열었다.

“부인”

귀엽게만 보아온 사촌 동생에게 부인이라고 부르려니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손바닥과 발바닥이 간질간질한 기분이었다.

“부인, 잠시 눈을 좀 떠보시지요? 남편 얼굴도 안 보고 잠이 들어버리면 어떡합니까?”

잠결에 들려온 자비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파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비가 파호의 머리에 올려진 금관을 내려놓자 파호가 이제 살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작은 손으로 이마를 만졌다. 금관이 닿았던 피부가 발갛게 눌려있었다. 민망함이 뚝뚝 묻어나는 파호의 얼굴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먼저 잠이 들었으니 벌을 내려야겠소. 오늘은 더 잘 생각 마시오. 하하하”

파호의 몸이 그대로 굳어버렸다. 자비는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방 밖을 지키던 궁녀들의 얼굴에도 비로소 안심한 듯한 웃음이 서렸다. 자비는 파호가 혼례복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었고, 파호도 자비가 편한 옷을 입도록 시중을 들었다. 한결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다시 마주 앉은 부부는 비로소 서로를 바라보았다. 

“파호야, 나에게는 네가 세 번째 부인이다. 평범한 지아비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끝내 너를 부인으로 삼고 말았구나. 서운하냐?”
 

귀엽게만 보아온 사촌 동생을 
부인이라고 부르려니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손바닥과 발바닥이 
간질간질한 기분이었다 

자비는 파호가 혼례복을 벗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 것을 
도와주었고, 파호도 자비가 
편한 옷을 입도록 
시중을 들었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다시 마주 앉은 부부는 
비로소 서로를 바라보았다

파호 얼굴에 다시 열이 올랐다

 

파호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막내 숙부가 계셨다면 당신이 제일 귀애하는 딸을 데려가지 못하게 하셨을 텐데.”

“아버지가 계셨다면 누구보다 이 혼인을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저도 기쁩니다.”

파호의 조용한 목소리가 자비의 마음에 새겨졌다.

“내가 왜 너를 부인으로 삼았는지 아느냐?” 

“왜국과 다시 화친을 맺자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저들은 숙부께서 돌아오신 후에 왜군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고 말한다. 다시 질자를 보내라고도 말한다.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소리 높여 진지하게 말한다.”

파호는 고개를 숙였다. 아버지 미사흔이 몰래 신국으로 돌아온 후, 왜군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는 것은 세 살짜리 아이도 다 아는 사실이었다. 

“왜군은 신국에 홍수가 나거나 가뭄이 들면 반드시 전쟁을 일으켜 우리 백성들을 잡아갔다. 그런 신의 없는 나라와 느닷없이 화친을 맺은 것부터가 잘못인데, 숙부가 돌아와서 왜군이 전쟁을 더 자주 일으킨다는 것은 억지다. 왜군이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약하기 때문이다.” 

자비는 잠시 한숨을 쉬었다. 

“파호야, 보혜 부인은 나의 첫 정인이다.”

파호는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사촌 오빠와 사촌 언니가 어떻게 서로를 생각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왔는지, 서로를 은애하는 마음이 얼마나 큰지 곁에서 지켜보았기에 잘 알았다. 자비는 파호의 작은 손은 잡고 말을 이어갔다.

“신국은 박씨, 석씨, 김씨 세 가문에서 번갈아 가며 마립간의 자리에 앉았다. 박씨가 마립간의 자리에 앉을 땐 김씨 가문에서 마립간의 부인을 맞았고, 석씨가 마립간의 자리에 앉을 때도 김씨 가문에서 마립간의 부인을 맞았다. 그것이 신국이 세워진 이후 오랜 전통이었다. 헌데, 우리 할아버지이신 내물 마립간께서 김씨 가문만이 마립간에 오를 수 있게 법을 바꾸셨지. 다른 가문들의 반발이 컸다. 그동안 마립간의 부인을 내고자 하는 귀족들은 서로 반목해왔는데, 내물 마립간께서 김씨 가문만 마립간에 오를 수 있다고 법령을 내리자 서로 손을 잡고 마립간께 대항했다. 가문의 반대를 무릅쓰고 내물 마립간과 혼인한 할머니 보반 부인이 아니었다면, 김씨 가문의 대가 끊어졌을지도 모른다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할머니는 나의 아버지 눌지 마립간과 보혜 부인의 아버지인 갈문왕과 네 아버지인 미해 공까지 세 아들을 낳아 다른 가문들이 마립간의 자리를 넘보지 못하게 만드셨다.”

자비가 들려주는 이야기 중에는 파호가 아는 이야기도 있고 모르는 이야기도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자식들과 조카들이 서로 혼인하기를 바라셨다. 김씨 가문의 혈통에서만 계속 마립간의 자리를 굳건하게 이어가려면 그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셨지. 신국이 힘이 약한 것도 마립간의 자리가 굳건하지 못해서다. 저 작은 가야도, 백제도, 고구려도 왕실의 혈통은 하나다. 다른 성씨가 왕위를 차지하는 것을 저들은 ‘반역’이라고 부른다. 저들은 굳건한 왕실을 중심으로 뭉쳐서 적과 맞서고 승리하면 왕으로부터 그 공을 인정받는다. 그러니 충성을 다하는 것이다. 우리 신국도 그리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파호야, 아니 부인. 자식을 많이 낳읍시다. 아들이어도 좋고 딸이어도 좋으니 자식을 많이 가집시다. 김씨 혈통을 가진 우리 아이들이 많이 태어날수록 왕실이 굳건하게 번창하고, 왕실이 굳건해야 신국이 번창하지 않겠소.”

이야기를 마친 자비가 파호의 눈을 그윽하게 바라보자 파호의 얼굴에 다시 열이 올랐다. 노련하고 능숙한 자비와 어여쁜 파호의 첫날밤은 그윽하게 깊어갔다. 다음 날 아침, 자비는 만족한 얼굴로 눈을 떴고 파호는 자비의 품에 안겨 눈을 반짝이며 아침을 맞았다. 밤새 한숨도 잠을 자지 못했으나 두 사람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천생연분이었다.

[불교신문3552호/2020년1월2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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