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산초 냄새 물씬 풍기는 물소리가 살고 있다. 가끔씩 벼랑에서 떨어져 낙상한 물소리가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런 날 밤엔 황도 12궁 옆자리에 새로 태어나는 별이 있다. 귀때기 파란 그 별에서 난다는 산초 냄새는 극락전(極樂殿) 앞까지 내려오기도 했다. 고요한 밤이었다.

- 유재영 시 ‘은적사(隱迹寺)’에서
 


고요한 산사의 풍경이다. 밤에는 그 고요가 더 깊어졌을 것이다. 절의 한쪽에 물이 흘러내리는데 산초 냄새가 난다고 시인은 썼다. 이 ‘산초’는 산초(山草)여도 좋지만, 아마도 산초(山椒) 즉 산초나무에서 얻은 열매를 말하는 듯하다. 물소리에서 독특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다.

인간의 몸과 마음처럼 넘어지거나 떨어져 다친 물소리도 혹간 있지만 곧 멀리 사라져간다. 그리고 그런 밤에는 무엇보다 신생의 별이 있다. 산초 냄새가 나는 별은 산사의 극락전 앞까지 내려온다. 문득 산초 냄새는 특이하면서도 신성하고 신묘한 냄새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불교신문3551호/2020년1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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