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화 할 것인가
소멸할 것인가
불교도 예외 아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 <잡아함경> 제30권 중에서

 

보일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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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연결의 시대

퇴근길, 눈도 내리고, 주말이라 그런지 도로 곳곳이 정체이다. 집에 도착시간이 늦어질 듯하다. 문득, 지금 집을 지키고 있는 고양이가 생각난다. 고양이가 배가 고플까 걱정이다. 자연스레 혼잣말처럼 ‘집으로 연결해줘’라고 말을 한다. 자동차 내부의 음성 인식 센서는 스마트폰을 통해 집안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고양이의 현재 모습을 보여준다. 평소대로 움직이는 걸로 봐서 별일은 없는 듯하다. 이내 급식기가 작동하면서 먹이를 내준다. 이미 도착시간에 맞춰 원격으로 실내온도는 따뜻하게 조절해 두었다.

마침 오늘은 주말이라 저녁에 친구를 초대하기로 했다. 냉장고에 채워둔 우유와 과일, 생수 등은 일정 개수 이상 남지 않게 되면, 자동으로 냉장고가 감지한다. 냉장고 센서로부터 식료품 배달업체에 배달주문 요청이 자동으로 발신이 된다. 그리고는 운전 도중 인공지능 스피커에 대고 오늘 저녁 식사에 어울리는 재즈곡을 선곡해 달라고 지시한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평소에 날씨와 생체 정보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이용자의 취향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인공지능 스피커는 즐겨듣는 곡에 대한 빅데이터를 저장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처럼 눈 내리는 날에 어울리는 재즈곡 목록을 알려줄 수가 있다. 이쯤 되면 오늘 저녁 시간을 보낼 준비는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다 된 것 같다.

이 상황은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 상당수의 현대인이 이미 누리고 있는 기술들이다. 어느새 이미 일상 속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정도 상황은 매우 소박하고 일상적인 수준의 내용이다. “전에는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일” 바로 ‘사물인터넷’으로 가능해진 일이다. 과거 디지털 혁명 시대의 인터넷은 수많은 컴퓨터가 연결된 거대한 그물망과도 같았다. 한 마디로 우리가 네트워크를 떠올릴 때는 으레 컴퓨터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사물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크게 요동치고 있다. 컴퓨터들끼리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사물 즉,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자동차, 핸드폰 등 할 것 없이 모든 사물이 인터넷에 연결되어 디지털화된 자신의 정보들을 공유하게 되었다. 사물들끼리 디지털을 통해 자신들의 정보를 공유하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간에 사람이 개입되지 않고서도 말이다. 결국 사람들끼리는 물론, 사람과 사물, 그리고 사물과 사물 간에 경계를 초월하는 ‘초연결’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사물들이 인터넷망을 통해 서로 연결된 상태를 상상해보라. 더욱이 최근 초고속 이동통신 기술인 5G 기술의 상용화로 말미암아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실시간으로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인터넷은 전기와도 같이 누구나 이용하고 손쉽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사물인터넷은 우리 삶에 필수적 기술이 되고 있다. 이 사물인터넷 기술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또 미래에 대한 어떤 상상이 가능할까. 

➲ IoT, 경험과 경험을 잇다

최근 들어 사람들이 언론매체를 통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이 ‘사물인터넷’이라는 말이다. 정부 정책 발표나 기업의 신기술 개발, 광고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서 ‘사물인터넷’이란 말이 등장한다. 컴퓨터를 박차고 나온 인터넷이라고나 할까. 고전적 의미의 인터넷 연결은 크든 작든 컴퓨터를 통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굳이 온전한 형태의 컴퓨터가 아니더라도 각각의 사물들이 디지털 정보를 만들어내고, 처리하고, 때에 따라 반응하고, 공유하면서, 사물들끼리 기능상 서로 의존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이란 우리 주변의 다양한 사물들이 인터넷을 통해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그 기능을 발휘하는 환경이나 기술을 말한다. 지난 2013년 옥스퍼드 사전은 이 용어를 새로이 올리면서 ‘앞으로 발전할 인터넷으로서, 매일 사용하는 사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기술’로 소개하고 있다. 종종 영문 약자로 ‘IoT’로 표기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실물 세계와 디지털 세계가 융합하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물인터넷은 사실 제4차 산업혁명의 시작과 함께 막 등장한 기술이라기보다는 이미 진작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례로 현재에도 많이 사용하는 ‘전자태그(RFID: Radio-Frequency Identification)’ 기술을 들 수 있다. 일종의 무선식별 시스템을 말한다.

우리가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거나, 마트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대에 서면, 으레 ‘삑’ 소리를 내면서 반응하는 경험을 다들 가지고 있다. 전자태그는 기존의 이런 ‘바코드’ 대신에 각종 정보를 IC 칩에 담은 것이다. 이 태그는 각 권의 책이나 제품에 대한 정보를 무선주파수를 이용해서 전파 식별 판독기로 전달하는 기능을 하게 된다. 이 기술은 군사 용도나 도시 교통망 구축 목적의 ‘무선감지네트워트(Wireless Sensor Network; WSN)’로 발전하게 되면서 주변 상황에 대한 정보교환이 가능해지게 된다.

그 다음 단계로 이 기술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확대한 것이 ‘유비쿼터스 감지 네트워크(Ubiquitous Sensor Network; USN)’이다. 이 단계에서는 무수하게 많은 사물에 내장되거나 부착된 센서들이 인터넷망을 통해 사람과 환경 등을 위한 거대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된다. 이 ‘유비쿼터스 감지 네트워크’에서 사물과 사물 즉 기계와 기계 사이의 통신을 통한 정보공유까지 확대되는 단계가 바로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IoT)’이다. 
 

사물인터넷 기술을 사용하는 사물의 개수가 10여 년 전인 2009년만 해도 9억여 개였던 것이 올해 2020년 말이 되면 260억 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그 과정에서 생성될 데이터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제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는 마치 빛처럼 서로를 비추고, 물처럼 서로의 영역으로 스며든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개입될 여지는 크게 줄어들게 된다. 출처=www.shutterstock.com
사물인터넷 기술을 사용하는 사물의 개수가 10여 년 전인 2009년만 해도 9억여 개였던 것이 올해 2020년 말이 되면 260억 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그 과정에서 생성될 데이터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제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는 마치 빛처럼 서로를 비추고, 물처럼 서로의 영역으로 스며든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개입될 여지는 크게 줄어들게 된다. 출처=www.shutterstock.com

➲ 디지털과 현실, 서로 물들이다

그렇다면, 이 ‘사물인터넷’ 기술이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 변화 속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제4차 산업혁명의 개념 속에 답이 있다. 다시 이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연재가 시작됐던 작년 여름으로 돌아가 보자. 제4차 산업혁명은 현실세계인 아톰(ATOM) 세계와 디지털 세계인 비트(BIT) 세계가 완전히 일치하는 세상이다. 엄연히 구분된다고 생각되는 이 두 세계의 경계의 문을 여는 열쇠 혹은 그 장벽을 허무는 무시무시한 해일과도 같은 기술이 바로 이 ‘사물인터넷’을 통해서이다.

사물에서 생산되는 모든 데이터는 인터넷을 통해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기계와 공유한다. 현재처럼 단지 현실 세계의 일부를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하여 옮겨 놓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완전히 일치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상상하는 모든 것이 실현되거나 상상 밖의 새로운 일들이 생겨날 수 있다.

디지털 세계와 현실 세계는 마치 빛처럼 서로를 비추고, 물처럼 서로의 영역으로 스며든다. 그 과정에서 인간이 개입될 여지는 크게 줄어들게 된다. 이 사물인터넷 기술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과 더불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규정짓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 디지털화하거나 소멸되거나

전기자동차 제조사인 테슬라는 최근 매우 심각한 기술적 문제에 직면했다. 설계상의 결함으로 인해 차량 내부의 화재 발생 가능성이 감지된 것이다. 자동차 회사들이 이런 문제에 맞닥뜨렸을 경우, 할 수 있는 것은 결함보상 또는 소환수리 즉 ‘리콜(Recall)’ 조치를 하는 수밖에 없다. 더욱이 단순한 결함이 아니라 운전자의 안전 문제와 직결될 경우는 더욱더 그러하다. 회사로서도 엄청난 비용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테슬라는 모든 설계를 디지털화 했기 때문에, 인터넷을 통해 모든 차량의 소프트웨어를 자동으로 업데이트해서 문제를 해결했다. 단 하룻밤 사이에 말이다. 따라서, 그 과정에서 고객들이 리콜을 받기 위해 기다리거나 자신의 차량을 이용하지 못하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고객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거나 아예 없애버린 것이다. 바로 얼마 전까지 실물 세계에만 의존했던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놀라운 변화이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사물인터넷 기술을 사용하는 사물의 개수가 10여 년 전인 2009년만 해도 9억여 개였던 것이 올해 2020년 말이 되면 260억 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한다. 그 과정에서 생성될 데이터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제 전 세계의 기업들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디지털화시킬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사실상 어떤 조직이든 자신들의 공동체가 존속하기 위해서는 이 디지털화가 생명이 되는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전통 사찰 내에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를 예로 들어보자. 대표적으로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경우, 화재나 재난 상황이 벌어진다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될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절대로 벌어져서는 안 된다. 하지만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팔만대장경을 3차원 입체 디지털화하는 작업은 필요하다. 그렇게 된다면, 언제든지 향후 3D 입체 프린팅 기술로 복원할 수 있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실 이미 사찰 내에서는 이 사물인터넷 기술이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다. 절에 가보면, 문화재 보호 차원에서 설치한 화재 발생 감지를 위한 장비들을 볼 수 있다. 특히 법당 내부의 온도나 습도, 열, 가스, 초음파 센서부터 원격감지, 위치, 영상 센서 등이 사물과 주위 환경의 변화를 정밀하게 포착하며, 생산된 디지털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면서 이상 징후를 감지해 내는 것이다.

변화는 우리에게 선택을 요구한다. 서구 학계에서는 ‘출판하거나 사멸하거나(Publish or Perish)’ 라는 말이 종종 사용된다. 학자들이 끊임없는 정진을 요구받고 그렇지 못하면 퇴출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이제 비즈니스 업계뿐만이 아니라 모든 개인과 조직에 새로운 화두가 던져진다. 물론 불교 공동체도 예외는 아니다. “디지털화 할 것인가 소멸할 것인가(Digitize or Die).” 

보일스님 해인총림 해인사승가대학 학감

[불교신문3551호/2020년1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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