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총스님에게 듣는 서원이야기] <5> 여래십대발원문(如來十大發願文)④
[혜총스님에게 듣는 서원이야기] <5> 여래십대발원문(如來十大發願文)④
  • 혜총스님 부산 감로사 주지 · 실상문학상 이사장
  • 승인 2020.01.1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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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보살은 어디서 오셨는가’
왜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는가


모든 이 궁극적 서원 ‘극락왕생’
탐진지 ‘삼독’ 저절로 사라지고
평안 얻어 마침내 해탈한다니
아미타불 뵈어야 하지 않겠나
혜총스님
혜총스님

불법승 삼보의 그늘 아래 살면서 계정혜 삼학을 닦으며 부처님의 법을 부지런히 배우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는 눈 뜬 사람들이 구경에 이르고자 하는 곳은 어딘가. 그곳에 반드시 나고자 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⑦ 원아결정생안양(願我決定生安養) 원하오니 제가 반드시 극락에 태어나게 하소서.

모든 부처님들이 나고자 원하는 당처(當處)가 극락세계이다. 또한 모든 불자들이 반드시 가야 할 곳이 극락세계이다. 극락세계를 안양정토(安養淨土)라고도 한다. 이곳은 아미타부처님이 되신 법장비구 스님의 48가지 본래 서원에 의해 이루어진 곳으로 고통은 없고 오로지 즐거움만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곳에 나기만 하면 더 이상 성불은 염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사바세계의 중생은 여러 불보살님들께서 그렇게 원하셨듯이 반드시 꼭 극락에 나고자 원해야 한다. 

이곳은 탐진치 삼독으로부터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기 때문에 영원히 지옥이나 아귀 축생계로 떨어지지 않는다. 원하기만 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주야육시로 부처님의 법문을 들을 수 있으며 무수한 보살들이 도반이 되어 성불의 길을 열어준다. 그러므로 이 극락에 나고자 하는 발원은 불교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궁극적인 서원이어야 마땅하다. 

극락에 나는 업은 앞서 발원했던 바대로 불법승 삼보의 그늘에서 늘 살면서 계정혜 삼학을 부지런히 닦고, 부처님 법을 따라 배우면서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쉽게는 부처님을 생각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생각하고 선지식을 생각하는 일이며, 더 쉽게는 ‘나무아미타불’ 육자 염불로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일이다.

⑧ 원아속견아미타(願我速見阿彌陀) 원하오니 제가 하루속히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게 하소서.

<아미타경>에 보면 동방, 남방, 서방, 북방, 하방, 상방의 모든 부처님들께서 아미타부처님과 극락세계의 불가사의한 공덕을 칭찬하면서 믿으라고 거듭 거듭 당부하시는 장면이 나온다.

속히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고자 하는 이유는 아미타부처님이 가지신 무량수(無量壽) 죽음이 없는 무량한 생명력과 무량광(無量光) 무량한 지혜광명에 들고자 하는 원이다.

끝없이 나고 죽는 윤회를 여의고, 나지도 죽지도 않는 무량한 생명의 세계에 들고자 하는 바람은 모든 생명들, 눈 뜬 자나 미혹한 자나 바라는 바가 아닌가. 이 생멸이 없는 세계에 나야만 마침내 완전한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맞을 수 있다. 그러므로 승속, 남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아미타부처님을 친견하고자 원해야 한다.

또한 <무량수경>에 “무량수불의 위신력에 찬 광명은 가장 뛰어나 다른 부처님의 광명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만약 중생들이 그 빛을 볼 수 있다면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세 가지 번뇌가 저절로 사라지고, 몸과 마음이 편하고 즐거움에 가득 차 스스로 어진 마음을 내게 되고 삼악도 중생이 광명을 보게 되면 평안을 얻어 다시는 괴로워하지 않고 마침내 해탈한다”고 했으니 아미타부처님을 뵙고자 하는 원을 어찌 발하지 않겠는가.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불교신문3551호/2020년1월1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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