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차갑고 가슴은 따뜻하고 손발은 부지런한 불자 되자

부처님이 입멸하시고 2564번째 새해를 맞는다. 조계총림 송광사 제7대 방장 남은당 현봉 대선사가 방장에 취임하고 첫 번째 맞는 새해이기도 하다. 지난해 11월11일 동안거 입제와 함께 법상에 올라 법을 설한 현봉스님은 눈푸른 납자들과 함께 줄곧 정혜결사의 현장 송광사 선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다. 방선(放禪)에 맞춰 새해 덕담을 듣고자 현봉스님의 주석처인 삼일암을 찾았다.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현봉스님이 방장 취임 후 첫 번째 맞이 하는 새해 불교신문과 인터뷰에서 행동을 절제하며 소처럼 묵묵하게 정진한다는 뜻을 가진 송광사의 목우가풍(牧牛家風)을 강조했다. 송광사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현봉스님이 방장 취임 후 첫 번째 맞이 하는 새해 불교신문과 인터뷰에서 행동을 절제하며 소처럼 묵묵하게 정진한다는 뜻을 가진 송광사의 목우가풍(牧牛家風)을 강조했다. ⓒ송광사

수행에 정진과 쉼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총림의 방장 스님에게 방선은 또 다른 직분의 연속이다. 찾아오는 대중을 제접하고, 총림을 살피는 일이다. 

삼일암을 찾은 날도 그러했다. 멀리서 가르침을 받고자 현봉스님을 찾은 스님과 불자들이 줄을 이었다. 한 무리가 떠나고 현봉스님이 가볍게 행장을 꾸려 삼일암을 나섰다. 수좌 범종스님, 총무국장 일화스님, 시자 도우스님이 뒤를 따랐다. 

포행길이건만 송광사 뒤편 산은 가파르고 험했다. 경사가 족히 60도가 넘어 보이는데 길도 없다. 현봉스님은 산에서 마치 골목길을 내닫듯 한다. 그리곤 계곡 사이에 옹달샘을 찾아 가리킨다.

“여기가 송광사 대중을 살리는 샘입니다. 이 물이 흘러 삼일암 삼일영천에 머물렀다가 다시 송광사 도량을 적시고 조계천으로 흐릅니다.”

현봉스님이 뒤따르던 총무 스님에게 옹달샘을 알려주고 주변을 깨끗이 할 것을 당부했다. 옹달샘은 겨울이건만 제법 수량이 있어 보였다. 이날 현봉스님이 조계산으로 포행에 나선 것은 옹달샘을 찾아 삼일영천을 되살려 부처님 전에 올리는 청정수와 대중들의 음수로 활용토록하기 위해서였다. 산행을 마치고 삼일암에서 방장 스님과 차담을 나눴다.

- 2020년 경자년 쥐띠해입니다. 불교에서 쥐는 어떤 동물인가요.

“새해가 어디 있고, 첫날이라고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공부하는 이는 나날이 좋은날이고 늘 한결같아야 합니다.

<비유경>에 안수정등 이야기가 있습니다. 절벽의 나무(岸樹)와 우물의 등나무 넝쿨(井藤)에 대한 비유입니다. 어떤 나그네가 들판에서 성난 코끼리를 만나 쫓기다 우물을 발견하고 등나무 넝쿨에 의지해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우물 아래를 보니 독사가 있어 내려가지도 못하고 넝쿨에 매달려있는데, 갑자기 흰 쥐와 검은 쥐가 나와서 넝쿨을 갉아먹는 것입니다. 절체절명의 순간이건만 나그네는 나무 위의 벌집에서 떨어지는 꿀을 받아먹으려 정신없는 것입니다. 

우리네 사는 것이 이와 같다는 것을 보여주는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탐진치 삼독에 빠져 다가오는 죽음 앞에서도 오욕락에 빠져있는 것이 중생입니다. 

이때 생명줄인 넝쿨을 갈아먹는 흰 쥐는 낮을, 검은 쥐는 밤을 의미합니다. 야행성 동물인 쥐는 눈이 반짝거립니다. 낮은 조도에도 자기 길을 잘 찾아갑니다. 수행자가 깨침을 향해 오직 화두일념에 드는 것과 같습니다. 새해에는 흰 쥐처럼 부지런하고 밝으며, 반짝이는 쥐의 눈처럼 한눈팔지 말고 시간을 아끼면서 열심히 사는 불자가 되기 바랍니다.” 

- 지난해 조계총림 7대 방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승보종찰 송광사는 어떤 수행처입니까.

“승좌법회에 참석했던 분이 그러더군요. 

‘삼보종찰 가운데 통도사, 해인사는 부처님 진신사리와 팔만대장경이 있어 그대로 보물이지만, 송광사는 활발발하게 수행하는 스님들이 있어야 승보이다. 한국불교의 명운은 승보종찰 송광사에 있으니 열심히 정진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송광사는 가장 많은 승보를 배출한 도량입니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은 보조국사, 진각국사, 청진국사, 원감국사 등 16국사는 물론 여기 주지를 지낸 나옹스님, 무학대사 같은 대선지식과 조사님들이 밟고 다니던 땅입니다. 보조스님이 주석하셨던 방이 지금의 수선사이고, 오늘의 후학들이 그 역사의 현장에 앉아 정진하고 있습니다. 이곳 삼일암도 효봉 큰스님, 구산 큰스님께서 거처하시던 곳입니다. 

이 도량에서 바라보이는 주변은 선지식들이 눈길을 주던 능선들이며, 옛 스님들이 듣던 물소리와 마시던 공기를 오늘의 총림대중이 그대로 보고 들으며 마시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가꾸던 그 채전을 우리가 가꾸고, 그분들이 어루만지던 돌담길, 바라보던 하늘, 포행길 등등… 이렇게 축복받은 도량입니다. 

조계총림 대중은 송광사 도량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알게 모르게 옛날 큰스님들의 가피를 입는 것이요, 이 도량의 지덕을 받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도량에서 더 발심하여야 합니다.”

- 알게 모르게 송광사 도량의 지덕을 입는다고 하시니 송광사에 있는 이 순간이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송광사 산세와 물길이 어떠한가요.

“백두대간의 한 지맥이 호남정맥으로 내려와 덕유산, 추월산, 무등산 등과 함께 호남의 명산을 이루고 한반도의 남서쪽을 돌아 다시 동북으로 휘감아 도는 곳에 조계산이 자리해 있습니다. 

선암사쪽 장군봉과 송광사 쪽 호악봉을 잇는 연산봉(지금은 호령봉을 연산봉이라 잘못 부르고 있음)을 지나 호악봉 좌우로 각각 일곱 봉우리가 나눠져 넓은 터전이 벌려지면서 그 가운데 송광사가 위치해 있습니다. 

송광사 도량은 산줄기들이 양류도수(楊柳倒垂), 즉 수양버들이 늘어진 것처럼 갈래갈래 마디 끝에 풍암영각, 국사전, 수선사, 설법전, 삼일암, 감로탑, 관음전, 문수전, 효봉영각 등의 전각이 자리해있습니다. 그리고 봉황새가 알을 품듯이 산줄기들이 서로 감싸는 봉황포란(鳳凰抱卵)의 형국이라서 봉황같은 많은 선지식들을 배출한 이 나라 최고의 명당입니다. 우리 송광사는 한번 다녀가기만 해도 오랫동안 향기가 남는 그런 도량입니다.

송광사 배치는 승방중심으로 임경당, 해청당, 용화당, 도성당, 행해당이 벌집(蜂房)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옛 그림을 보면 송광사의 가람배치는 모든 전각들이 산세에 맞게 수행을 위해 승방을 중심으로 법성게 도표처럼 서로 이어져 있어 비를 맞지 않고도 사중을 다닐 수 있었습니다.” 

- 이렇게 좋은 도량의 기운에 힘입어 송광사에서 열여섯 분의 국사가 나오셨나 봅니다. 아쉽게 조선개국과 함께 국사제도가 중단되고 말았지만 조계총림은 여전히 나라의 스승이 주석하는 도량이라 생각됩니다. 이렇듯 연연히 이어오는 정신은 어디에 있는지요.

“송광사는 어머니의 태중에서 어린아이가 자라듯이 공덕선근을 길러 불보살이 되는(長養聖胎) 도량입니다. 불일 보조국사(1158~1210) 지눌(知訥)스님은 스스로 목우자(牧牛子)라 하면서 송광사에서 마음의 소를 길들이면서 보림수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바로 소치는 성자(牧牛子)의 정신이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목우가풍(牧牛家風)입니다. 지눌은 말을 더듬는다(訥)는 것이니 곧 행동을 절제하며 소처럼 묵묵하게 정진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목우가풍은 보조 지눌스님의 <정혜결사문>과 <수심결>, <진심직설> 등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송광사는 보조스님께서 제창하신 수행가풍에 따라 대중이 다 같이 예불하고, 다 같이 울력하고, 다 같이 공양하고, 다 같이 정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선원과 강원과 율원에서 각자 소임에 따라 계정혜 삼학으로 정진하는 수행공동체입니다. 이것이 송광사 목우가풍의 하나입니다.”

- 호남의 불자들은 가까이에 삼보의 하나인 승보종찰 송광사가 있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유독 호남의 불교세가 힘을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근래 들어 호남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불교인구가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불자들에게 격려의 말씀 들려주십시오. 

“호남인들은 종교적인 성향이 많아 도인도 많이 나왔습니다. 불교뿐 아니라 증산교, 원불교 등의 근세 민족종교가 호남에서 시작했고 가톨릭과 개신교도 호남에서 크게 성장했는데, 그러면서도 다원화, 다양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서로 화합을 잘하고 있습니다. 

미래세대는 종교의 의존도가 점점 줄어들 것입니다. 자기 종교를 내세우기보다 성인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자라면 자신의 삶을 살피면서 부처님 가르침대로 연기법에 따라 문제가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풀 것인지를 잘 살펴야합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으니 원인을 잘 찾아보고 미래를 잘 유추하는 것이 제대로 된 지혜이고 바른 불자입니다.

생활 속에서 직장 상사와의 문제, 가정 문제, 자녀 문제, 친구 문제 등을 반조하면서 바른 연기의 삶(八正道)을 사는 것이 진정한 불자의 삶이며 살아있는 선정이고 생활 속의 불교입니다. 절에 가지 않더라도 생활 속에서 그런 성찰이 끊이지 않으면 모든 것이 잘 보이게 됩니다. 

지혜는 있는데 무언가 아쉽다면 복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보시 공덕을 쌓아야합니다. 남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 바로 내 자신을 이익되게 하면서 내 주변환경과 자신을 정화시키는 것입니다. 나와 남은 둘이 아니라 연기의 관계에서 서로 묶어져 있는 공동체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 불교신문이 올해로 창간 60주년을 맞았습니다. 불교언론에 당부의 말씀과 불교신문 독자들에게 신년 메시지를 들려주세요.

“먼저 불교신문 60주년을 축하합니다. 

출가전 학창시절 잠시 사찰에 머물면서 불교신문을 봤습니다. 불교신문에는 평소 듣고보지 못한 스님들의 글이 많았습니다. 특히 스님들의 수행이야기에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부처님에 따르면 ‘모든 중생은 부처가 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오늘을 살고 있는 이들의 기록은 언젠가는 깨달을 부처의 전생담이 됩니다. 불교언론은 부처들의 전생담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나쁜 소식보다 선행이야기를 많이 찾아 세상을 아름답고 따뜻하게 해 주기바랍니다.

아울러 경자년 새해에는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따뜻하게, 손발은 부지런히 부처님 가르침 따라 살아가는 불자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불교신문3551호/2020년1월18일자]

저작권자 © 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