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은스님
동은스님

가까운 곳에서 티베트 수행을 하고 있는 공동체가 있다. 그곳에서 수행을 지도하는 라마스님께서 지난번 오실 때 바람개비를 하나 선물로 주셨다. 어려서 출가한 스님은 가끔 장난 칠 때 보면 영락없는 개구쟁이시다.

아마 재래시장에 갔다가 바람개비 파는 것을 보고 동자승 시절이 생각나 사신 것 같았다. 그때는 이런 걸 왜 사오셨나 하며 몇 번 장난하다 마루에 걸어 두었는데, 당신의 수행여정이 바람개비를 돌리듯 살아오신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오후에 바람이 좋길래 문득 바람개비가 생각나 밖으로 가지고 나갔다. 마당 끝에 서서 바람 불어오는 곳으로 바람개비를 향하니 신나게 돌아갔다. 한참을 유년시절 생각하며 재밌게 노는데 바람이 멈췄다. 바람개비도 같이 멈췄다. 

바람이 잘 불 때는 가만히 서 있어도 바람개비는 잘 돌아간다. 그런데 문제는 바람이 불지 않을 때다. 이때는 내가 바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카네기는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삼척에서 월정사를 가다보면 대관령 산마루에 수많은 바람개비들이 돌아가면서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아이들의 장난감인 바람개비든 전기를 만드는 발전기든 바람을 마주봐야 한다는 사실은 같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두려워 등을 돌린다면 바람개비는 돌릴 수가 없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뒤에서 등을 떠밀어주는 순풍만 있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살다보면 무슨 일이 없겠는가? 마주 오는 바람을 맞으며 인생의 고난을 겪어본 사람의 눈은 깊고 고요하다. 웬만큼 힘든 일에는 눈도 꿈쩍하지 않는 내공이 쌓였기 때문이다.

새해다. 그대라는 향기가 희미해져 가는가? 마주 오는 바람을 두려워 말라. 바람이 거셀수록 나의 바람개비는 더욱 힘차게 돌아간다. 그 순간을 놓치면 안 된다. 바로 더욱 진한 향기를 머금는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불어오지 않는 바람을 하염없이 기다리지 말라. 다만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을 믿고 바람개비가 되어 앞으로 달려보라. 그리하면 그대 영혼의 뜨락에는 맑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할 것이다. 

[불교신문3549호/2020년1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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