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사의 명성 회주스님 구순 생신날
2천여 동문들 모여 스승님 은혜 보답

빛바랜 사진 모아 만든 동영상 속에
제자들 기억하는 스님 일상 잘 담겨
위대한 스승은 감화 준다는 말 실감

정운스님
정운스님

“넓고 잔잔한 연못에/ 채워진 연꽃의 향기가/ 그 오묘함을 캐내지 못하여/ 여기/ 호거 산 죽림원에/ 홀씨 되어 올곧게 피어났습니다./
구름의 빗장을 열어보니/ 2천여 명의 제자가 있고/ 그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을 마음껏 품으면서/ 조각하는 모습/ 참으로 인천(人天)의 스승이십니다./
그 누가 있어/ 당신의 모습을 훔쳐 낼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을 향해/ 달려 나오는/ 그리움의 씨앗들,/ 하늘에 아름다움을 불러/ 제 모습을 마음껏 자랑하는/ 우리 모두는/ 구순의 넓은 도량에 기대어 봅니다./
참으로 따뜻한 온기가/ 마음 길 따라 차오릅니다./ 오늘/ 하나에 인연 지어 올립니다./ 전생을 세어 본적은 없지만/ 한 겁, 한생이 있기에 묻고 답합니다./
소소한 근황부터/ 속 깊은 이야기까지 나누며/ 무엇을 더 자라게 할까/ 무엇을 더 다듬을까/ 무엇을 더 솎아 낼까/ 이런 계산 없는 운문의 도량에서/ 또 다시/ 스승과 제자로 만나고 싶습니다./
가는 시간/ 오는 시간/ 손에 손 잡고/ 둘레길 만드는 오늘/ 여기 당신이 품으로 길러 낸/ 제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구순 해를 축원합니다./ 상수(上壽), 천수(天壽)의 축시가 이어지기를.”

이 시는 지난 연말 운문사 회주 명성스님 전집 봉정식 및 구순생신 날 동문회 대표로 필자가 짓고 낭독했다. 오전 1부 행사 전집 20권 봉정식 소식은 보도를 통해 전해졌기에 생략하고, 오후 구순생신 축하 자리에 있었던 숨은 이야기를 남기고자 한다. 

55회에 걸쳐 배출된, 한국불교 6000여 비구니 중 3분의 1이 넘는 2100명 운문인들은 각계 각처에서 활동중이다. 유치원원장팀, 전강제자팀, 복지관장팀, 불교미술팀, 동문회장팀, 화엄반팀, 이 날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스님들이 지은 이름에서 운문인들의 활약을 엿본다. 그날 동문들은 제각각의 모습으로 구순을 맞은 스승님을 모셨다.

특히 기수별로 만든 동영상에는 회주 스님의 일상과 가르침, 후학들의 존경이 그대로 담겨 감동을 자아냈다. 기수를 떠나 모두 알고 기억하는 스님의 일상 모습이기에 말하지 않아도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공감하고 감격했다. 해묵은 사진 한 장, 젊고 빛나던 시간들이 만화로 사진으로 그림으로 동영상으로 되살아나 또다시 추억을 만들고 가슴에 묻혔다.

몇몇 동영상은 잊을 수가 없다. 장작을 때서 목욕하던 시절, ‘나무가 귀하니 뜨거운 물 한바가지만 쓰세요’ 라는 목욕탕 청규를 말 그대로 따라하느라 뜨거운 물을 덮어쓰는 바람에 큰 화상을 입은 스님으로 인하여 장작 대신 기름으로 바뀌어 나무 하지 않고도 목욕날을 맞이했던 이야기, 꽃 심기 울력 갔다가 말벌과 꿀벌이 싸우는 것을 보고 사탕을 가져와 꿀벌통 앞에 놓고 ‘꿀벌 사탕이 여기 있으니 사탕 먹고 기운차려 빨리 달아나요’ 하셨던 회주 스님의 지난 일화 등이 영상을 통해 재탄생되었다. 

‘평범한 스승은 말을 하고, 훌륭한 스승은 설명하고, 뛰어난 스승은 모범이 되고, 위대한 스승은 감화를 준다’는 말처럼 50년을 한곳에 주석하시면서 가르친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을 가슴으로 품고 제자의 장점을 찾아 응원하고 가르쳤던 제자 모두가 스님께 받은 감화 하나쯤 간직하고 있다.

‘눈썹은 희어도 마음은 늙지 말아요. 어쩌다 여러분들을 한 번씩 만나면 늙은 시늉을 해요’. ‘구순의 스승 앞에 칠순이 넘은 제자도 환갑이 된 제자도 늙은 시늉을 하지 말아요’ 하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이 먹었다 하여 수행을 게을리하지 말라는 경책으로 들렸다. 

‘저도 스승님처럼 그리 늙어 가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라는 화답이 메아리로 돌아온 이유는 운문에 눈 밝은 별이 빛났기 때문이다. 

[불교신문3550호/2020년1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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