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사 불화기행] <1> 삼각산 경국사 석가팔상도
[한국 산사 불화기행] <1> 삼각산 경국사 석가팔상도
  • 신광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강사
  • 승인 2020.01.15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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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숙함과 예술성 창의성 공존하는 석가팔상도

조선말, 근대불화 10여점 중
금운순민스님 보암긍법스님
1887년作 ‘석가팔상도’ 눈길

비교적 작은 크기 2폭 화면
부처님 생애 시기별로 나눠
화면구도와 표현이 독창적

불교회화를 통해 사찰의 성격과 전통성을 알아보는 연재다. 사찰 및 불전 성격과 그림의 상관성을 비롯해 그림에 등장하는 존상들 존명과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1887년 조성된 경국사 석가팔상도 1폭(제1~4상)은 순민스님이 그렸는데 화면분할 방식이 특이하다.
1887년 조성된 경국사 석가팔상도 1폭(제1~4상)은 순민스님이 그렸는데 화면분할 방식이 특이하다.

북적이는 서울에도 예로부터 진산(鎭山)으로 인식되었던 명산, 삼각산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에게 북한산으로 더 친숙한 삼각산은 지금도 수려하고도 웅장한 자태로 바쁘고 지친 현대인들의 휴식처이자 위안처가 되어 주고 있기도 하다. 삼각산에는 많은 명찰이 소재하고 있는데, 그중에는 ‘부처님의 가호로 항상 나라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기를 기원’한다는 뜻의 경국사(慶國寺)도 포함되어 있다. 삼각산의 남동쪽 자락 정릉동에 위치한 경국사는 고려 1325년 ‘청암사’라는 사명으로 창건되었고 천태승 무기(無寄)가 머물면서 위상을 높였으며 공민왕대에는 인도의 고승 지공(指空)이 주석했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 개국 후에는 명종대 왕실의 시주를 받아 건물을 전면 중수했는데, 이때 ‘경국사’로 개칭되었다고 한다. 그 후로도 숙종대에 천태성전, 헌종대에 관음전, 그리고 고종대에는 삼성보전과 산신각을 건립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보경(寶鏡)스님이 주지에 취임한 뒤 사세가 더욱 확장되었으며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자주 찾았고 미국의 닉슨이 부통령 시절에 방문한 후 인상적인 사찰로 언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최근에는 조계종 제32대 총무원장을 역임한 지관(智冠)스님이 주석했던 곳이기도 하다. 

이곳 경국사에는 조선말에서 근대기에 그려진 불화가 10여 점 전해진다. 그중에는 조선말인 1887년에 그려진 석가팔상도가 포함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위대하고도 극적인 삶을 묘사한 그림은 크게 전생 이야기인 본생도(本生圖)와 현생의 족적을 다룬 불전도(佛傳圖)로 분류한다. 본생도는 석가모니가 우리 중생들처럼 윤회의 굴레 속에서 수없이 많은 생과 사를 반복하면서 깨달음과 중생 구제의 염원이 담긴 서원을 세우고 공덕을 쌓는 이야기들을 도해한 그림이다.

그리고 불전도는 이 땅에 고타마 싯다르타로 태어나 출가를 하고 수행과 선정을 통해 깨달음을 얻은 후 불법(佛法)을 펴고 열반에 들면서 윤회의 고리를 끊게 되는 위대한 일생을 다룬 그림을 의미한다. 석가팔상도는 석가모니의 현생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므로 불전의 범주에 해당하는 그림이며 이를 크게 ‘여덟’ 장면으로 압축하여 묘사했다는 점이 특징인 불화 장르이다.

불전도는 서역이나 중국에서도 많은 수량이 그려져 왔지만 이 지역에서는 여덟 장면으로 구성하려는 인식보다는 다양한 사건을 구체적이면서도 좀 더 서사적으로 표현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이에 비해 한국, 특히 조선왕조 시대에는 팔상도가 불전의 중심 구성으로 자리했으며 이는 현재 동아시아 불전도에서 조선만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석가팔상은 마야부인에게로의 입태를 다룬 ‘제1 도솔래의상’을 시작으로, 탄생 장면인 ‘제2 비람강생상’, 생노병사에 대한 고뇌를 다룬 ‘제3 사문유관상’, 성을 넘어 출가하는 ‘제4 유성출가상’, 깨달음을 이루고자 고행하는 내용의 ‘제5 설산수도상’, 삿된 무리를 물리치고 깨달음에 이른 순간을 다룬 ‘제6 수하항마상’, 이 땅에 불법을 전파하는 이야기인 ‘제7 녹원전법상’, 그리고 두 그루의 사라수 아래에서 열반에 든 장면을 묘사한 ‘제8 쌍림열반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팔상’을 기술한 경전으로는 <과거현재인과경>, <석가씨보>, <석가여래성도기주>, <석보상절>, <월인석보> 등이 있다. 조선시대 석가팔상도는 현재 20여 건이 전해지며 용문사본, 통도사본, 법주사본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대부분 8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조선말에 이르면 서울 경기 지역을 중심으로 한두 폭에 8개로 화면을 분할하여 팔상을 묘사하는 사례가 많아진다. 경국사를 비롯해 개운사, 호국지장사, 청룡사의 팔상도가 대표적이다. 

경국사 석가팔상도는 총 2폭짜리 그림이다. 현재 경국사의 주불전인 극락보전 내 정면 중앙을 기준으로 그 좌우에 한 폭씩 봉안되어 있다. 한 폭에는 제1~4상, 다른 한 폭에는 제5~8상이 그려져 있다. 제1~4상으로 구성된 첫 번째 화폭은 화면 상부 향 우측에서부터 시작된다.

흰 코끼리를 탄 호명보살이 도솔천에서 내려와 마야부인에게로 입태되는 장면, 룸비니동산에서의 태자 탄생, 천상천하유아독존을 외치는 태자, 그리고 아홉 마리의 용이 태자를 목욕시키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향 좌측 상부 화면에는 동문에서 노인, 남문에서 병자, 서문에서 주검을 마주한 후 북문에서 사문을 만나 출가를 결심하는 장면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고 그 아래 화면에는 태자가 성을 넘어 출가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두 번째 폭은 화면 향 우측에서부터 삭발 출가 후 수행 정진, 다음으로 보리수 아래에서 마구니들에게 항복을 받는 장면과 성도, 위대한 화엄 대법회, 마지막으로 열반 소식을 듣고 온 제자들이 슬퍼하는 장면과 부처님이 가섭존자에게 금관 밖으로 발을 내미는 장면, 다비 후 사리가 쏟아지는 장면 등이 그려져 있다.
 

1887년 조성된 경국사 석가팔상도 2폭(5~8상)은 긍법스님이 그렸는데 화면분할 방식이 특이하다.
1887년 조성된 경국사 석가팔상도 2폭(5~8상)은 긍법스님이 그렸는데 화면분할 방식이 특이하다.

제1폭은 금운당 순민이 그렸고 제2폭은 보암당 긍법이 그렸다. 석가팔상도는 다양한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게 일반적인데, 이 그림은 각각의 화면이 비교적 작은 편이어서 상세한 장면 묘사보다는 주요 장면을 부각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 같다. 각기 화사가 다르기 때문인지 화풍도 차이를 보이는데, 제1폭은 전체적으로 인물이 작고 여백이 많은 반면 제2폭은 상대적으로 인물이 크고 빈 곳이 없을 정도로 모티프들을 빽빽하게 그려 넣었다. 

이 그림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이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특이한 화면 분할방식이다. 한 폭에는 제1-4상을 정사각형으로 분할된 화면에 배치했으며 다른 한 폭은 제5-8상을 세로로 길게 화면을 나눈 후 그려 넣었다. 다른 사찰의 팔상도는 거의 다 팔상을 나열식으로 배치하고 있거나 화면 분할 구도를 선택한 작품들의 경우도 분할 방식이 동일하다. 이에 반해 이 그림은 각 화면이 다른 방식으로 분할되어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화사가 다르기 때문일까? 화사가 다르다고는 해도 단일 주제의 그림을 그리면서 임의대로 화면 분할 방법을 달리했을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 그보다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삶의 변화 과정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림을 잘 들여다보면, 제1폭은 출가 이전, 제2폭은 출가 이후의 삶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부처님 일생의 대 전환을 시각적으로 명확히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다음으로 경국사 석가팔상도는 독창적인 표현이 두드러진다. 일반적으로 다른 그림들은 ‘사문유관상’에서 죽음을 표현할 때 상여가 등장하는데 이 그림은 이를 주검을 앞에 두고 슬피 우는 모습으로 변환했다. 그리고 ‘유성출가상’을 보면, 마부 차익과 태자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서로 가리키는 듯 좀 더 동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쌍림열반상’의 경우도, 다른 그림들은 관 밖으로 부처님의 두 발이 나와 있는 모습이 주를 이루는데, 경국사본에서는 두 발이 보이게 관문이 열린 모습으로 변용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 그림은 언제 누가 발원, 시주한 것일까? 삼각산 경국사에서는 1887년에 대규모 불화 불사가 있었다. 석가팔상도 외에도 지장시왕도, 현왕도, 신중도, 그리고 감로도가 함께 그려졌다. 시주자로는 상궁들이 적극 동참했다. 조선말에 이르면 상궁들이 불교의 후원자로 급부상한다. 상궁은 내명부에 속하는 정 5품의 관료이다. 이들은 왕실의 명을 받아 시주자로 나서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본인과 사가 가족들의 복덕과 극락왕생 등 사사로운 목적이 주를 이룬다.

상궁들이 적극적으로 불사를 후원하게 된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무엇보다도 궁궐 내 그들의 지위와 경제력의 상승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상궁의 후원은 봉은사, 남양주 흥국사, 경국사, 화계사, 보광사 등 서울과 경기, 즉 궁궐 인근에 특히 집중되어 있다. 경국사 석가팔상도의 경우, 화기를 보면 상궁 박씨 법성화를 비롯해 노씨 향림월, 하씨 정덕혜, 홍씨 묘혜월, 윤씨 법상화 총 5인이 시주자로 올라있다. 이들은 서울 화계사와 가평 현등사의 불사 후원에도 동참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이렇듯 조선말 도성 인근 삼각산 경국사의 석가팔상도는 화면의 구도 및 세부적인 표현에서 독창성이 엿보이는 그림이다. 종교화로써 지니는 엄숙함과 예술적 창의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상궁들의 후원으로 제작되었다는 점도 흥미롭다. 조선말 사찰의 불사 동향과 불화의 양상, 특히 부처님의 위대한 일생을 살펴보기에 더없이 좋은 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광희
신광희

신광희 강사는…
동국대학교에서 <관촉사 석조보살입상에 대한 연구>로 석사, <한국의 나한도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동국대 대학원 등에 출강하고 있으며 중국 푸단대학교 한국연구소의 객좌교수로도 활동중이다. 저서로 <한국의 나한도>가 있고, ‘고려불화의 유사성과 의미’ ‘조선전기 명종대의 사회변동과 불화’ ‘흥선대원군 발원 불화의 양상과 특징’ 등 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현재도 불화를 찾아 세계 각지를 다니며 조사 연구를 진행 중이다. 

[불교신문3550호/2020년1월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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