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삼 생각해도 이 시대 걸맞은 스승"

1월12일 서울 관음사 명부전에서 봉행된 고봉스님 52주기 추모다례. 상좌인 종하스님, 손상좌 덕민스님과 원로회의 부의장 대원스님, 구미 금강사 주지 정우스님 등 4명의 대종사를 비롯한 문도들이 참석해 대강백의 생전 가르침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1월12일 서울 관음사 명부전에서 봉행된 고봉스님 52주기 추모다례. 상좌인 종하스님, 손상좌 덕민스님과 원로회의 부의장 대원스님, 구미 금강사 주지 정우스님 등 4명의 대종사를 비롯한 문도들이 참석해 대강백의 생전 가르침을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선(禪)과 교(敎)에 두루 밝으면서도 강주 외에는 일체 소임을 맡지 않고 평생 도제양성에 헌신해온 대강백 고봉태수(高峯泰秀, 1900~1968) 대종사의 52주기 추모다례재가 1월12일 비(碑)가 모셔져 있는 서울 관음사(주지 종하스님)에서 봉행됐다.

오전10시30분 고봉스님의 추모비와 가까운 경내 명부전에서 봉행된 이날 다례에는 상좌인 전 조계종 원로의장 종하스님(불교방송 이사장)과 원로회의 부의장 대원스님(공주 학림사 오등선원 조실), 손상좌인 덕민스님(불국사 승가대학장)과 정우스님(구미 금강사 주지) 등 4명의 대종사, 문도, 이정옥(선덕화) 관음사신도회장 등 사부대중 10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대종사 스님들은 이날 다례에 앞서 제자들에 관한 한 ‘호랑이’ 같던 고봉스님의 생전 모습을 되새기며 정진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을 다짐했다. 불교신문 1967년 12월10일자에 전하는 고봉스님의 목소리가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다.

스님은 당시 김천 청암사 강원 1기 제자들을 졸업시키면서 다음과 같은 당부를 했다. “이제부터 졸업이 아니라 학문탐구와 인간의 진면목을 터득하는 출발점임을 알았을 뿐이다.” 교학연찬을 마쳤다는 마음에 자칫 게을러질 수 있는 제자들의 마음을 다시 단단히 조여 주려는 스승의 진심이 깊게 배어있는 대목이다.

종하스님은 이날 자리를 함께 한 스님들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씀도 “재삼 생각해봐도 고봉스님은 이 시대에 걸맞은 스승”이었다는 표현이었다고 전했다.

10대 때 이미 경서(經書)와 사기(史記)를 마치고, 백일장에서 장원을 할 만큼 뛰어난 인재였던 고봉스님은 25세 되던 해 옛 친구 금초스님을 만나 선(禪)의 이치를 들은 후 깨달은 바가 있어 용성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도봉산 망월사 만일선회 동참을 시작으로 용성스님 제산스님 만공스님 등 당대 선지식들의 지도를 받으며 정진한 스님은 선교(禪敎)가 둘이 아님을 인식하고 교학을 연찬하는 데 더욱 더 힘을 쏟았다.

해인사 고경스님, 법주사 석상스님, 범어사 구해스님 등의 지도를 받은 후 서울 개운사에서 석전스님의 법맥을 계승하기도 했다. 이때 받은 법호가 ‘고봉(高峯)’이다. 그 뒤 스님은 은해사 해인사 대원사 쌍계사 영각사 다솔사 등에서 55세까지 강의를 하며 평생 사찰 주지 등 행정과 관련된 소임은 일체 맡지 않았다. 오직 도제 양성에 매진하다 1968년 1월18일(음 1967년 12월18일) 김천 청암사에서 세수 68세, 법랍 45세로 원적에 들었다.

수법은제자(受法恩弟子)로 경주 함월사 조실 우룡스님, 쌍계총림 쌍계사 조실 고산스님(전 총무원장), 종하스님이 있으며, 김천 청암사에도 고봉스님의 비가 모셔져 있다.
 

1월12일 서울 관음사 명부전에서 봉행된 고봉스님 52주기 추모다례 전경.
1월12일 서울 관음사 명부전에서 봉행된 고봉스님 52주기 추모다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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