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같이 숨어있는 안양의 기도 성지

‘송구영신’ 맞아 음식 나누고 함께 새해 맞이
해마다 취약계층에 나눔쌀 전하며 자비 실천

1년 365일 끊이지 않는 기도소리에
신도들 뿐 아니라 방문객 꾸준히 늘어

‘안양유원지’에서 2006년 이름을 바꾼 ‘안양예술공원’ 초입에서 삼성산 울창한 숲을 가로질러 오르다보면 가파른 절벽 아래 숨은 듯 자리한 염불사가 그제야 제 모습을 드러낸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지장전과 나한전, 산신각과 독성각 등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있는 가람 배치에 감탄하던 찰나, 암벽 아래 귀히 모셔진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의 찬란한 미소를 마주하면 마음이 다 밝아지는 듯 하다. 이미 익숙한 곳이라 그냥 지나치기 쉬운 도시 안양(安養), 마음을 편히 하고 몸을 쉬게 한다는 지명처럼 관악산 줄기 삼성산 깊은 곳에 ‘작은 극락’ 염불사가 수줍은 듯 자리하고 있었다.

주지 향림스님(사진 오른쪽)과 재무국장 금륜스님이 지난해 크리스마스날 신도들과 함께 케익을 자르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훈훈한 시간을 보냈다.
주지 향림스님(사진 오른쪽)과 재무국장 금륜스님이 지난해 크리스마스날 신도들과 함께 케익을 자르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훈훈한 시간을 보냈다.

12월25일, 모처럼 찾아온 ‘빨간날’ 임에도 이른 아침부터 경내가 붐볐다. 이날은 이웃 종교의 아기 예수 탄신을 함께 축하하고 염불사의 지난 1년을 돌아보는 송년회가 있는 날, 신도들이 각자 음식을 해 와 다 같이 나누는 이른바 ‘포틀럭(potluck) 파티’ 준비가 한창이었다.

“우리 스님들 드리겠다고 옥희언니가 김밥해 온대요” “점심 공양 준비하려고 오늘은 조금 일찍와 기도 먼저 끝냈지요.” “계란 삶아오는 거는 스님들이 별로 안 좋아하는 거 잘 알고 있는데 그래도 오늘은 예외에요. 우리 절에서 오늘만큼은 해오고 싶은 음식 다 해와도 괜찮다고 했거든요.”

기도 소리 멈추지 않는 도량이라 소문났을 만큼 여느 사찰보다 진지하고 엄숙한 기도도량이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염불사 신도들은 1년에 한번, 허리띠를 풀고 먹고 싶은 음식을 나눈다. 음식과 함께 꾹꾹 눌러 담았던 속마음도 꺼내 놓는다.

밥과 국은 공양주 보살이, 나머지 반찬은 신도들이 마음을 내 준비한다. 새우 샐러드, 홍어 무침 등 사찰에서 보기 드문 해산물 요리부터 김밥, 호박죽 등 새벽잠 떨치고 일어나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까지, 신도들 만큼이나 가지각색 요리들이 접시에 올랐다.

소박하면서도 풍성한 한 끼에 신도들 마다 “잘 먹었어요” 소리가 바삐 오갔다. 한달 만에 마주한 아들 아침도 못 차려주고 새벽부터 김밥을 싸 오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장옥희(54) 씨는 “아침부터 고생했다”는 신도들 인사에도 연신 “18줄 밖에 못 싸와 아쉽다”며 “스님과 신도들 입에 밥 들어가는 걸 보기만 해도 배부르다”고 했다. 

손녀딸과 함께 온 김영희(69) 씨는 염불사 사시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밤 일부러 아들집에 와 잠을 청했다. “오늘 이런 행사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덕분에 맛있는 음식도 먹고 참 좋네요. 저는 법회 때문에 왔어요. 여기 스님이 기도를 참 열심히 하거든요. 저도 독실한 불자라 통도사, 적멸도량 등 안 가 본 데 없이 다녔는데 이상하게도 여기 염불사는 자주 오게 돼요. 집에서 거리가 좀 있는데도 이상하게 일부러 오게 되네요.”

신도들 말처럼 염불사는 누구에게나 친숙한 곳이다. 산 속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음에도 하루에 드나드는 방문객들이 적지 않다. 지난 동지 때는 800인분 팥죽이 반나절이 채 되지 않아 동이 났을 정도다. 다른 사찰처럼 도심 속에 위치해 접근성이 좋은 것도, 포교 프로그램이 다양해 재가자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도 아니지만 분별없이 모든 이들을 한 가족처럼 품어 안는 덕이다. 

사찰을 찾는 이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는 경내 곳곳에서 빛난다. 향림스님이 주지로 부임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도량 정비. 나이가 많거나 몸이 불편한 신도들을 위해 썩어가는 나무계단부터 돌계단으로 바꿨다. 날이 추워지고 바람이 불 때마다 깨질 위험이 도사리던 촛대 유리판도 일반 미닫이에서 열고 닫기 편한 샷시틀로 교체부터 했다.

전각마다 이어지는 길목에 안전 손잡이를 설치해 미끄러질 일이 없게 배려한 것도 눈에 띄지 않는 세심한 배려다. 경내 안팎으로 드나드는 등산객들에게 ‘주의’ ‘경고’를 주기보다 지장전 옆 큰 돌을 깎아 쉼터를 만들고, 따로 정수기를 설치해 1년마다 주기적으로 필터를 바꾸는 일까지 손수하는 게 바로 염불사 스타일이다.
 

주지 향림스님(사진 오른쪽)과 재무국장 금륜스님이 지난해 크리스마스날 신도들과 함께 케익을 자르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훈훈한 시간을 보냈다.
주지 향림스님이 부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산신각 오르는 기존 나무계단을 돌계단으로 교체한 일이다.

밖으로 티나는 일 없이 깍듯한 예우는 외부인 뿐 아니라 신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초하루, 일요 법회는 물론 때마다 얼굴을 마주할 일을 만든다. 매년 12월31일, 철야 정진 후 새해맞이 행사를 함께하는 것도 그 중 하나다. 스님과 신도들은 새해 하루 전날 모여 철야정진을 갖는다.

좌담회를 통해 1년 간 있었던 일을 나누고 불자로서의 심신을 단련하는 것은 물론 국기봉에 올라 함께 일출을 보고 떡국을 나눠 먹는다. 1년에 두 번 봉정암 성지 순례를 가는 일, 방생철이 되면 다 함께 고민해 물고기를 풀어주거나 이웃을 찾아 소극적 선행을 펼치는 일 등 모두 꾸준하면서도 빠짐없이 해온 일들이다. 

그중에서도 으뜸은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는 것이다. 주지 스님을 포함해 기도 스님, 재무국장 스님 등 사중 3~4명 스님이 매일 3~4곳 전각마다 들어가 기도를 올리고 염불을 왼다. 신도가 있든 없든 새벽예불, 사시예불, 저녁예불 등 때마다 끊이지 않고 울리는 기도 소리 덕인지, 염불사는 ‘염불 소리 끊이지 않는 곳’이라는 농담반 진담반 소리가 파다하다.

“염불사가 다른 사찰에 비해 규모나 신도들 숫자에선 크게 뒤질 수도 있지만 기도만큼은 웬만한 교구본사 못지 않다”는 게 주지 향림스님 자부심이다.

지역에서 ‘회향하는 사찰’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도 일신우일신이다. 염불사는 2017년 경기 안양 만안구와 ‘사랑의 쌀 후원’ 협약을 체결한 후 지속적으로 안양 지역 내 취약계층을 위한 일에 앞장서고 있다. 자비 나눔엔 지역 분별도 없다. 경기도 의왕시 사랑채복지관, 인천노인복지관 등 곳곳에 나누는 쌀만 1년에 평균 1만kg(125가마)에 달한다.

계절마다 잊지 않고 수건, 비누, 칫솔, 치약 등 생필품 선물도 한다. 자비나눔을 위한 물건마다 다음같은 문구를 새겨 넣는 일도 잊지 않는다. ‘이 공양은 불보살님께 공양을 올리고 일체 중생께 회향합니다.’ 매 순간,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을 잊지 않기 위함이다. 

1년 365일 멈추지 않는 기도, 쉴 틈 없는 도량 정비, 신도들의 신행활동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자비나눔 실천을 위한 사회적 회향, 이 모두 ‘작은 극락’을 만들기 위한 염불사의 노력들이다.

총무원에서 조사국장 소임까지 맡고 있는 염불사 주지 향림스님은 “바쁜 일정으로 어쩌다 기도라도 한번 빠지게 되면 밥값을 못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다”며 “염불 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의 수행이자 기도다”라고 말했다.

스님이 생각하는 포교, 전법 방법은 따로 있지 않았다. ‘꾸준함’과 ‘진정성’이 전부. 향림스님은 말했다. “기도 소리가 들리는 사찰이라야 신도들이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 언제와도 기도 소리가 신도들을 반기면 신도들 또한 사중 일을 자신의 일같이 여긴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지 스님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 주지가 움직이면 사중 스님들이 움직이고 그러면 신도들도 자연스레 그걸 보고 따라한다. 항상 도량을 깨끗이 하고 잘 정비하는 것도, 기도에 빠짐없이 동참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게 부처님 제자로서 모든 사부대중이 함께 잘 사는 길이라 생각한다.”
 

등산객을 위해 설치한 식수대. `      
등산객을 위해 설치한 식수대.

■ 염불사는...

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 말사로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첫째는 고려 태조 왕건의 창건설이다. 태조가 고려를 건국하고 926년 후백제를 공격하기 위해 남행을 할 때 삼성산 아래를 지나던 중 산모퉁이에 오색구름이 영롱하게 서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다가갔는데 그 곳에 능정대사가 좌선삼매에 들어있었다. 태조는 대사의 법력에 탄복해 대사가 좌선하던 곳에 사찰을 세우도록 명했다. 그 이름이 안홍사로 바로 염불사의 전신이다.

두 번째는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 등 세 성인이 창건했다는 설이다. <염불암중수기>에서 이 같은 내용이 확인된다. <염불암중수기>에 따르면 세 성인이 도를 깨치고 염불을 하던 곳이기 때문에 ‘삼성산’이라 이름 지어졌고 염불하던 정토라는 뜻으로 ‘염불암’이라 불렸다고 한다. 현재의 건물은 1910년 지어졌으며 6·25전쟁을 겪으면서 퇴락한 것을 1956년 중수한 것이다.  

안양=이경민 기자 kylee@ibulgyo.com

[불교신문3549호/2020년1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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