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종교구 첫 십선계 수계식
음주문화 만연한 현대사회
불음주계 장벽 의외로 높아
십선계 생활지침으로 제시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 제안으로, 군종교구가 1월11일 논산 육군훈련소 호국연무사에서 십선계 수계법회를 처음으로 봉행한다. 최원섭 동국대 철학박사가 군 장병들이 일상에서 실천할 생활지침이 될 십선계의 의미를 소개한 글을 본지에 보내왔다.

 

최원섭
최원섭

부처님 제자가 몇 명 되지 않으면 잘못된 행동을 할 때마다 바로바로 부처님이 직접 고쳐주시면 됩니다. 하지만 제자의 수가 많으면 일일이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이것은 어떻게 처리해야 합니까?” 하고 여쭈어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예 부처님이 계시는 데서 멀리 떨어져서 살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해답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부처님 제자는 이렇게 하면 된다는 규칙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계율입니다. 그런 점에서 계율은 집단의 입장에서는 집단의 구성원들이 일률적으로 통일된 위의를 갖추게 하는 기능을 하고, 구성원의 입장에서는 그 계율을 지키는 일이 바로 그 집단의 구성원임을 인정받게 하는 증명인 셈입니다.

계율이라고 한 단어로 쓰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계(śīla)와 율(vinaya)로 구분됩니다. 계는 자발적으로 악하고 그릇된 것을 그치고 예방하겠다는 다짐이고, 율은 타율적인 규칙입니다. 5계, 10계, 250계 등을 받을 때 스스로 지키겠다는 다짐을 하고 늘 그 계를 지키면서 자신의 안에 선한 것을 쌓습니다. <사분율>, <오분율>, <십송률>처럼 계를 다 모아서 승가의 전체적인 규율로 제시되는 것이 율입니다.

조금 구체적으로 구분하자면 계를 어기면 벌칙이 따르지 않지만 율을 어기면 벌칙이 따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계와 율이 이렇게 무 자르듯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어서 승가 차원에서 제시된 계율이 바로 자신이 수행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흔히 ‘계’와 ‘율’을 합해서 ‘계율’이라고 부릅니다. 

불교 신자라는 말은 불교계에 입문해 있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불교계에 입문했다는 인정은 5계로 합니다. <율장>의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의 규정이 있지만 5계를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어떠한 처벌을 받거나 불교 신자로서의 불이익은 없습니다.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않겠습니다. 내 것이 아닌 것을 함부로 갖지 않겠습니다. 사음을 하지 않겠습니다. 거짓말하지 않겠습니다. 술을 마시지 않겠습니다.”

이 다섯 가지의 다짐을 지키지 못했으면 나는 이미 불교 신자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다섯 번째가 늘 꺼림칙합니다. 열아홉 살을 벗어나는 12월31일 자정만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가 공식적으로 술잔을 기울이는 것이 트렌드처럼 되어있는 현실에 무작정 불교신자이니 술 마시면 안 된다고 하기 난감합니다.

재치를 발휘해서 다섯 번째는 자신 없으니 나머지 네 가지만 받겠다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네 가지만 받으려면 5계가 있는 의미가 없습니다. 어떤 곳에서는 술을 완전히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취하지 않게 먹으라는 뜻이라고 이해시키기도 한다지만 어느 정도가 취하지 않게 마시는 것일지 가늠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래저래 쉽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5계에서 말하는 ‘술’이 ‘술’만이 아니라 ‘중독성 있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게임도 술이고 인터넷도 술이 될 수 있습니다. 자칫하면 꽤 많은 요즘 사람들을 통째로 등 돌리게 만드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십선계(十善戒)를 생활지침으로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천수경>에도 나오는 그 십선계입니다. 행동으로 하는 세 가지 선한 일, 입으로 하는 네 가지 선한 일, 마음으로 하는 세 가지 선한 일입니다. 5계와 네 가지가 겹치는 데다 조금만 자세히 보면 5계가 자세하게 확장된 것으로도 보입니다.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을 사랑하겠습니다. 청정한 마음으로 보시하겠습니다. 몸과 마음에 청정행을 닦겠습니다. 거짓 없는 마음으로 진실한 말을 하겠습니다. 꾸밈없는 마음으로 바른 말을 하겠습니다. 화합하는 마음으로 칭찬하는 말을 하겠습니다. 부드러운 마음으로 좋은 말을 하겠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헛된 욕심을 내지 않겠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언제나 웃음을 짓겠습니다. 지혜를 밝혀 바른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책상에 붙여놓고 하루 한 번 다짐하는 새해맞이 다짐 같아 보이지 않나요?

[불교신문3549호/2020년1월1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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