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
“선 채로 천년을 살면 무엇이 보일까…”
  • 허정철 기자
  • 승인 2020.01.09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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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이상 내공 쌓아온
시인, 사진작가 힘 모아
국보, 보물 등 70여 기
우리 탑에 숨결 불어넣다

“석탑은 우리 민족의 역사
선조들의 예술혼 느껴져”

이달균 지음 / 손묵광 사진 / 마음서재
이달균 지음 / 손묵광 사진 / 마음서재

“시인 떠나보내고 오늘은 탑 구경간다/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라니/ 소낙비 내려도 좋고 흙먼지 일어도 좋다// 시인이 있었고 시 한편이 있었다/ 버려진 이 누구이며 사라진 이 누구인가/ 옛 절집 흔적 없어도 탑 하나면 족한 것을”(‘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 중에서)

우리나라 전국 산사 일원에 조성된 탑은 불교와 함께 인도에서 전래됐지만 이후 불교사상에 우리의 정신문화와 문화예술이 집약된 미(美)의 결정체로 꼽힌다. 또한 왕조의 흥망과 전쟁의 참상을 목도하고 풍찬노숙의 세월을 견디며 이 땅을 지켜온 역사의 증인이기도 하다.

창원에서 활동 중인 손묵광 사진작가와 이달균 시인은 각각 사진과 문학 분야에서 40년 이상 내공을 쌓은 작가들로, 각자의 방식으로 탑에 숨결을 불어넣은 순례기 <탑>을 최근 펴냈다.

사진작가는 탑과 자연이 어우러진 가장 아름다운 한순간을 앵글에 담았고, 시인은 탑에 얽힌 사연과 역사를 전통의 시가인 시조로 노래한 탑 기행문이다.

손묵광 사진작가는 문화재로 지정된 200여 기의 탑을 촬영하기 위해 지난 2년 동안 5만여km를 누볐으니 그 거리가 자그마치 지구 한 바퀴에 이른다. 하나의 탑을 찍기 위해 서너 번 답사는 예사였고, 인적 없는 고요한 때를 기다리며 차 안에서 밤을 지새운 날도 부지기수였다. 돌의 질감을 깊이 있게 표현하기 위해 흑백사진으로 작업했다. 천편일률적 구도로 찍어낸 안내 도판 같은 사진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으로 색다른 탑의 모습을 보여준다.

“석탑도 요염한 맵시 뽐낼 때가 있다/ 밤이면 비단 자락 날리며 하늘 오르다/ 낮이면 짐짓 모른 척 침묵으로 서 있다// 팔부신중 구름에 앉아 세상 굽어보고/ 천인상(天人像) 기단을 나와 은하에 닿아라/ 서라벌 천년의 노래가 이곳까지 들려온다”(‘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중에서)

“우뚝한 남산 바위를 기단으로 했으니 산이 탑을 받친 것인지, 탑의 뿌리가 산을 이룬 것인지 그 위용이 대단하다. 한동안 서 있다 보니 차라리 절 없는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둘러보면 멀고 가까운 산들이 가람이 된 듯하고, 풀과 나무들이 나한처럼 그윽하다. 굳이 풍경 울고 목탁 소리 들려야 절인가. 이 탑 앞에 서면 바람과 새소리가 곧 법문이다.”(‘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중에서)
 

사진과 문학 분야에서 40년 이상 내공을 쌓아 온 손묵광 사진작가와 이달균 시인이 각자의 방식으로 탑에 숨결을 불어넣은 순례기 '탑'을 최근 펴냈다. 사진은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 전경.
사진과 문학 분야에서 40년 이상 내공을 쌓아 온 손묵광 사진작가와 이달균 시인이 각자의 방식으로 탑에 숨결을 불어넣은 순례기 '탑'을 최근 펴냈다. 사진은 원주 거돈사지 삼층석탑 전경.

또한 이달균 시인은 사진작가와 함께, 혹은 혼자서 탑을 답사할 때마다 한 편의 시조를 남겼다. 여기에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해설을 덧붙여 탑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래서 책장을 넘기면 탑의 조형미는 물론이고 탑이 품은 사연과 옛사람들의 간절한 염원까지 읽힌다.

한 장의 사진에 마음이 흔들리고, 한 편의 시조에 마음 깊숙한 곳까지 울림이 전해진다. 그렇게 두 작가가 만들어준 만남의 장에서 탑을 마주하고 있으면 탑이 차가운 돌덩어리가 아니라 영혼을 지닌 무념무상의 인격체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 책은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탑 68기와 지방 문화재 1기, 비지정 문화재 1기까지 총 70기의 탑을 소개한다. 백제 무왕 때 세워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탑인 익산 미륵사지 석탑부터 조선 후기에 중건된 산청 대원사 다층석탑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기억하고 보존해야 할, 죽기 전에 꼭 만나야 할 시대의 걸작들을 지역별로 엮었다.

백제, 신라, 통일신라, 고려, 조선 등 조성 시기별로 탑들이 어떤 특징을 보이는지, 탑의 양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어 더욱 흥미롭다.

이달균 시인은 “내가 먼저 영혼을 불어넣지 않으면 탑은 돌로 쌓아 올린 옛사람의 흔적에 불과하지만, 다가가 마음을 열면 탑도 스르르 문을 열어준다”면서 “탑도 우리의 발자국을 기다리고 있으며, 별이 깃들고 녹슨 바람이 쉬었다 간다는 것을 그 때 우린 알 수 있다”고 남다른 의미를 전했다.

손묵광 작가도 “석탑은 우리 민족의 역사이고 혼이며, 종교와 예술의 소재로서 민족문화를 쌓아온 문화의 옹기”라며 “온갖 풍상을 견디며 오늘에 이른 석탑을 통해 우리는 선조들의 감성과 예술혼을 느낄 수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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