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山寺
하늘 땅 산 경계 없는
적멸의 시간으로…

#1

내 여행 습관 중에 하나는 목적지로 출발하기 전 자동차나 버스, 열차, 비행기 안에서 잠시 눈을 감고 오늘의 여행을 영화를 보듯 순서대로 돌려보는 것이다. 현실을 사느라 담아 온 생의 무게를 잠시 멈추고 일상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순간을 느끼려는 나만의 의식이다. 새로운 것을 담기 위해서는 언제나 버리는 시간이 필요하고, 잠시라도 미련 없이 아름답게 내려놓기에 좋은 시간은 여행이다.

자동차가 마을길로 들어서자 창밖은 온통 흰색뿐이었다. 백색이 이렇게도 눈부셨던가.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른 채 절집에 들어섰고 일주문과 여러 전각을 통과해 이끌리듯 나한전 앞에 도착했다. 살짝 열린 문 사이로 아침 햇살을 받기 시작하는 불단이 보였다. 빛을 받은 부처님의 모습을 담고 싶어 순간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는데 플레어가 들어간 사진 속 모습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2

삶을 여행처럼 살면 어떨까하는 마음은 항상 여유롭고 행복한 여행 중에 들었다. 오랜만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여행이라 그런지 모든 것이 편안했다. 여유로운 일상의 하루하루를 느긋하게 바라보는 것, 먹는 것마다 맛있고 그 맛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행복이 있었다.

일상의 삶에서도 이렇게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매일 반복되는 하루도 여행만큼이나 설레고 멋지지 않을까하는 마음 말이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고 하지만 막상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그 마음은 이미 어디에도 없었다. 

가지런히 놓인 스님의 신발 하나에 마음이 편안해지면서도 고요한 공간에 들어서야하는 부담감에 망설이고 있을 때 낮고 선명한 스님의 독경 소리가 들렸다. 계산이 너무 많아 틈이 없는 마음을 멈추어야할 때였다. 신을 벗고 법당에 들어서 손을 모았다. 
 

#3

언젠가 사진에서 배롱나무에 감처럼 주렁주렁 연등이 달린 모습을 본적이 있었다. 사실 만연사를 찾은 이유가 이 순간을 직접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늘과 땅, 산을 구분할 수 없이 눈이 내리는 날 배롱나무에 열린 빨간 연꽃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황홀하고 비현실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실제 모습은 상상한 것 이상이었다. 눈이 쌓이는 소리만 들리는 그곳에서 사진을 찍느라 이리저리 움직이다보니 내 발소리만이 눈치 없이 소음을 만들고 있어 자리에 멈춰 섰다. 겪어보지 못한 적멸의 시간이었다. 

배종훈 bjh4372@daum.net 

[불교신문3548호/2020년1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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