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신은 무상하거늘 우리는 왜 불상 앞에 앉았는가

무불상 시대 부처님 모습 대신
보리수 수레바퀴 발족적 표현

간다라, 마투라서 불상 조성해
무역로 따라 고구려 백제 전래

붓다의 참모습 인식 서로 달라
지역 민족 시대마다 다른 모습

“진짜 형체는 형체가 없고 법신(法身)은 무상(無相)하니 형상으로는 붓다를 구할 수가 없다. 그런데도 고해(苦海)의 미혹한 윤리와 번뇌의 고통에서 괴로워하는 중생을 구제하려고 불상을 만드는 의식에 의탁하고 있다.” 
-상주 남장선원 금당 목조관음보살좌상 중수발원문, 조선시대 1701년

 

인도 불상은 무역로를 통해 1세기 중엽 불교와 함께 중국 후한으로 전래됐다. 이후 4세기 전진과 동진을 거쳐 고구려 백제로 전해졌다.
인도 불상은 무역로를 통해 1세기 중엽 불교와 함께 중국 후한으로 전래됐다. 이후 4세기 전진과 동진을 거쳐 고구려 백제로 전해졌다.

불교적 관념에서 보면, 우리는 2500년 전, 인간 세상에 일곱 번째로 왔다 갔던 석가모니 붓다와 그의 열반 후 56억 7000만년 뒤에나 여덟 번째로 올 미륵불(彌勒佛)의 세상 사이에 살고 있다. 우리는 석가모니 붓다든 미륵불이든 그 어떤 붓다에게도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미혹과 번뇌의 고통을 참아낼 수밖에 없는 사바(裟婆) 세상에 살고 있다. 남장선원 목조관음보살좌상의 발원문은 조선시대 후기의 상황을 기록한 것이지만,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불상 조성의 목적은 사바 세상에서 감내해야할 미혹과 번뇌의 고통에서 조금이라고 벗어나기 위한 것임은 분명하다.

사실 석가모니 붓다는 열반에 즈음하여 제자들에게 자신의 모습(형체)을 만들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행여 만들어진 자신의 모습, 즉 불상(佛像)이 그의 참 모습(형체)을 왜곡할까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불상은 진짜 붓다를 대신할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석가모니 붓다께서 불상을 만들지 말라는 당부를 열반 후 약 500년간 지켰고, 이 때 보리수(菩提樹, 깨달은 붓다), 수레바퀴(설법하는 붓다), 사라쌍수(紗羅雙樹, 열반한 붓다)가 붓다를 대신하였다. 

1세기 무렵, 불신관(佛身觀, 붓다에 대한 생각)이 변하면서 인도의 간다라(지금의 파키스탄)와 마투라 지방에서 처음 불상을 만들기 시작하였다. 불상은 사람들의 상상 속에 만들어진 붓다의 허상에 불과했지만, 사람들은 진짜 석가모니 붓다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불상을 만들었다.

이들 인도 불상은 무역로를 통하여 1세기 중엽에 불교의 전래와 함께 중국의 후한(後漢), 동한東漢)으로 전래되었고, 4세기 말, 중국의 전진(前秦)과 동진(東晋)에서 고구려와 백제로 불교와 불상이 전해졌다. 이후 불상은 붓다의 참모습에 대한 인식이 지역, 민족, 시대에 따라 다름으로 인해 다양한 모습으로 조성되었다.

불상(佛像, 佛相)은 붓다(佛陀, Buddha)의 모습이다. 갓 태어난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를 본 아시타 선인(仙人)은 미래에 아버지 숫도다나왕의 뒤를 이어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거나 정신적인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태자는 왕이 되기를 포기하고 고행, 선정, 명상을 통하여 붓다(깨달은 분)가 되었다. 붓다의 모습을 상像으로 만든 것이 불상이다.

1세기 무렵에 인도에서 처음 만든 불상은 그 때까지 구전되어 오던 붓다의 실제 모습과 당시 인도에서 가장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여기던 것에 기초하여 만들어졌다. 붓다의 모습을 기록한 경전들(물론 후대에 전기 작가들이 쓴 것이지만)에 의하면, 싯다르타 태자는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날 때부터 초인간적이고 이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32가지의 큰 특징(대상, 大相)과 80가지의 작은 특징(종호)을 갖추고 있었다고 한다. 즉 40개의 치아를 가지고 있었고, 머리카락은 남색이었으며, 피부는 금색이었다. 정수리에는 육계(肉髻)가, 미간에는 백호(白毫)가,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었다. 이와 같이 불상은 붓다와 이상적인 인간이 갖추어야할 32가지의 큰 특징과 80가지의 세부적인 특징(80종호種好)을 참고로 하여 만들어졌다.

불상의 모습을 상호(相好)라고 하는 것도 이 대상과 종호에서 따온 말이다. 이후 불상의 조성은 기본적으로 32상 80종호에 근거하였지만, 실제로 불상에서는 이 중에서 육계, 백호, 삼도 등 몇 가지 특징만 적용된 것을 볼 수 있다. 

불상은 다양한 손 모양(수인, 手印)으로 자신이 어떤 붓다인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를 전달한다. 수인은 여러 붓다에 통용되는 통인(通印)과 특정 붓다만이 결하는 별인(別印)으로 나뉜다. 선정인(禪定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설법인(說法印), 시무외인(施無畏印)․여원인(與願印) 등이 통인이며, 비로자나불의 지권인(智拳印), 아미타불의 아미타구품인(阿彌陀九品印) 등은 별인이다. 
 

불상과 보살상의 명칭도.

불상은 양쪽 어깨를 모두 가린 통견(通肩) 방식과 오른쪽 어깨를 노출하고 왼쪽 어깨만 가린 편단우견(偏袒右肩) 방식으로 법의(法衣)를 착용한다. 통견 방식으로 법의를 입을 때에는 옷 주름이 밭고랑의 모습(상, 相), 즉 복을 일구는 밭(복전, 福田)의 모습이 되어야 한다.

경전에 의하면, 국왕으로부터 먹을 것을 받을 때, 마을에서 걸식할 때, 좌선(坐禪)하여 경전을 외울 때, 나무 밑을 거닐 때 이 방식으로 법의를 착용한다고 한다. 편단우견 방식으로 법의를 입는 것은 스승에 대한 존경을 뜻하는데, 공양하거나 일할 때 오른손의 놀림을 편하게 하기 위함도 있다.

이 착의법은 유교 사회였던 중국에 처음 소개되었을 때 부모의 장례식에서 상주(喪主)가 오른쪽이나 왼쪽 어깨를 드러내고 입던 상복과 별반 차이가 없었기 때문에 유학자들이 왜 사문(승려)들은 흉례(凶禮)에서나 하는 단복(袒服, 한쪽 어깨를 드러내며 입는 것)을 착용하는가 하는 사문단복론(沙門袒服論)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한편 우리가 조형언어로서 불상이라고 말할 때, 석가모니 붓다의 몸인 불신(佛身) 외에 몸에서 나오는 빛을 표현한 광배(光背), 딛고 서 있거나 앉아 있기 위한 대좌(臺座)도 포함된다. 불신을 에워싸고 있는 광배는 석가모니 붓다가 탄생할 때부터 열반할 때까지 몸에서 나온 일정한 크기의 빛-상광(常光)-을 표현한 것이다. 빛은 발밑, 무릎, 음장(陰藏), 배꼽, 가슴의 중심, 양 손, 머리, 입, 혀, 백호, 모공으로부터 나온다.

붓다의 가르침은 입을 통하지 않고 빛으로 하기 때문에 광명설법(光明說法)이라고 하는데, 광배는 이것을 표현한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근기(根機, 경험치)에 따라 붓다의 몸에서 나투는 빛(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정도가 달랐다.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광배가 붓다의 가르침 그 자체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대좌는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가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 동남서북으로 일곱 발자국을 걸을 때마다 피어났다는 연꽃과 보드가야(불타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이루어 붓다가 될 때 깔고 앉았던 길상초(kusa)가 그 기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교 세계관에서 보면 대좌는 수메루산(Sumer, 수미좌, 須彌座)을 상징하는 것이다.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에는 깨달음을 이룬 석가모니 붓다가 삼매(三昧) 속에서 펼쳐 보였던 불교의 세계관인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의 중심에 수미산(수메루산)이 있다고 한다. 또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는 석가모니 붓다가 열반 후 이 수미산 중턱부터 산 위에 있는 28개의 천상 세계를 지나 더 이상 윤회하지 않는 곳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우리가 불상의 대좌를 수미좌(수메루산)라고 하는 것도 석가모니 붓다가 수미산 위 천상 세계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대좌에는 중대에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새겨서 이곳이 수미산 중턱에 있는 사천왕천(四天王天)임을 알려주기도 한다.

또한 약사불(藥師佛)의 동방유리광정토(東方藥師琉璃光淨土)와 아미타불(阿彌陀佛)의 서방극락정토(西方極樂淨土)도 수미산 위 동쪽과 서쪽에 있기 때문에 약사불상과 아미타불상의 대좌도 수미좌로 볼 수 있다. 불상 대좌의 대부분이 연꽃으로 장엄되어 있는 것은 수미산 세계가 거대한 연꽃 속에 있다는 연화장세계의 관념과 연관된다. 물론 연화대좌에 연꽃이 지닌 청정함의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지 않는 것은 아니다. 

불상은 붓다에 대한 생각이 바뀜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으로 조성되었다. 1세기 경, 무불상 표현의 시대에 붓다의 모습을 대신하던 보리수(菩提樹)와 수레바퀴 등이 있던 자리에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을 한 보살상과 석가모니불상이 나타난다. 이후 대승불교경전들이 나오면서 미륵불상, 아미타불상, 약사불상, 비로자나불상 등 다양한 불상이 출현한다.

사실 이들 불상 조성의 배경이 된 대승불교경전들은 엄밀하게 말해서 석가모니 붓다가 직접 가르쳤던 내용은 아니며 후대의 불교 전기 작가들에 의해 꾸며진 것들이다. 경전의 주인공인 붓다와 보살들은 석가모니 붓다와 같이 과거와 미래에 인간 세상에 왔다 갔거나 올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때로는 이미 왔던 붓다를 상으로 만들기도 하고, 자기가 사는 세상과는 너무나도 먼 미래의 인간 세상에 올 붓다를 미리 만들면서 그들의 현세적·내세적 바람을 추구하였다.
 

배재호
배재호

배재호 교수는…
국립대만대학 예술사연구소에서 석사 수료 후 홍익대 대학원 미술사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불상의 세계> <연화장세계의 도상학> <중국의 불상> <당대불교조각> <중국사원 문화기행> <나의 불교미술이야기> 등의 저서가 있다. 현재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이며, 이코모스(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한국위원회 이사, 한국미술사학회 이사.

 

 

[불교신문3548호/2020년1월8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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