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불교신문 창간 60주년 특집’
전통을 넘어 미래를 향하다


오는 3월 불사 회향 목표로
내소사영산회괘불 모사 한창
30명 참여 10개월 공동작업

양선희 단청장전수조교 주도
옛 기법·지혜 볼수록 놀라워
“원작 혼까지도 닮겠다” 다짐

국보 제1호 숭례문 소실 이후 주요 국가지정문화재에 대한 정밀조사가 활기를 띠었다. 원형 또는 원본의 문화재가 멸실될 경우를 대비할 필요성을 절감한 탓이다. 괘불과 불화 모사작업도 이때 비로소 시작됐다. 부안 내소사도 지난해 5월부터 보물 제1268호 내소사 영산회괘불탱 보존처리와 모사 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모사작업은 불화와 단청 복원을 추진해온 업체 금화(대표 정선희)가 주도해 양선희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전수교육조교를 도감으로 진행 중이다. 

내소사 괘불 영산회괘불탱 모사 불사가 만봉스님으로부터 사사 받은 양선희 단청장 전수조교가 도감을 맡아 한창이다. 전통의 맛과 특징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미래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지닌 작품을 만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3D스캔을 통해 1:1 비율의 괘불을 놓고 초를 뜨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사팀.
내소사 괘불 영산회괘불탱 모사 불사가 만봉스님으로부터 사사 받은 양선희 단청장 전수조교가 도감을 맡아 한창이다. 전통의 맛과 특징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미래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충분히 지닌 작품을 만들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3D스캔을 통해 1:1 비율의 괘불을 놓고 초를 뜨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모사팀.

소사 주지 진성스님의 발원으로 시작된 괘불 모사 불사가 진행되고 있는 곳은 전북 전주 인후동에 있는 문화재보존처리업체 작업장이다. 만봉스님 문하생인 양선희 단청장 전수조교가 도감을 맡았다. 양선희 도감은 조계종총무원이 주최하는 대한민국 불교미술대전 대상을 수상하는 등 불화와 단청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불모다.

괘불은 야외의 설치대에 걸 수 있도록 제작된 대형 불화다. 크기가 크고 바람과 무게를 견뎌낼 수 있도록 특별한 제작과정을 거친다. 여기에 모사는 불화 재료와 색감, 제작기법 등을 그대로 따라야 하기 때문에 철저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작업과 오차를 최소화하는 작업이 추가된다. 그러기에 더 특별하다고 한다. 문화재청이 괘불과 불화의 모사에 예산을 반영하고 모사과정을 면밀히 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사는 그림을 본떠 똑같이 제작한다는 이유로 가벼이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은 모사가 새로운 불화를 제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지 때문이다. 오히려 모사는 과거로부터 내려온 전통을 그대로 이으면서도 또다른 작품을 만들어내야 하기에 원본에 버금가는 예술혼이 투영된다고 할 수 있다. 

내소사 괘불 모사는 현재 배접 작업이 한창이다. 모사현장을 찾던 날, 10여명의 장인들이 내소사 괘불을 모사할 바탕재를 넓게 펴고 한지를 붙여나가고 있었다. 한줌의 공기도 들어가지 않도록 풀칠을 하고 한장 한장 붙이는 과정을 반복했다. 작업은 조를 나누어 철저하게 분업으로 진행됐다.

삼베를 연결한 바탕재가 평평하도록 작업, 기준선을 맞추고 한지를 붙이는 작업, 바탕재를 밟지 않기 위해 한칸 한칸 바닥을 대는 작업, 풀칠을 하는 팀, 한지를 작업장으로 나르는 사람, 붙여진 한지를 또다시 두드려 빈틈을 없애는 작업 등 일사분란하게 작업을 이어갔다.

양선희 도감은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선이 틀어질까, 빈 공간이 생겨날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한겹의 배접을 하는 동안 모두가 긴장상태를 유지했다. 

1배접이 마르면 또 한겹의 배접을 하는 식으로 7배접을 해야 한다. 불화는 일반적으로 5배접을 하지만 내소사 괘불은 11배접이다. 7배접이 끝나면 32cm폭의 삼베 7줄을 덧대야 한다. 배접 속에 7폭의 삼베가 들어가 있는 사례는 흔치 않다고 한다. 내소사 괘불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강도를 높이고 펴고 접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훼손을 줄이기 위한 특수한 제작법이 들어있다. 7배접 후 삼베를 덧댄 뒤 추가로 4배접을 해야만 배접이 비로소 마무리된다. 

배접은 불화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거의 마무리 단계다. 바탕재 제작, 출초, 교반수, 상초, 채색, 배접 순서가 일반적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배접과 상초, 채색을 바꾸어 하거나 동시에 진행하기도 한다. 중요하지 않은 과정은 없다.

경전에서는 불화 제작과정에 참여하는 이들로 하여금 천으로 입을 가리고 하루세번 목욕을 하며 흰 옷을 정갈히 입도록 했다. 일체의 불순물도 허용하지 않는 제작법이다. 정갈한 몸가짐에 더불어 청정한 마음상태를 유지할 것도 일러놓았다. 불사를 책임지는 도감과 불모, 이를 돕는 이들까지 예외가 아니다. 
 

내소사 영산회괘불탱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아미타불과 다보여래, 문수·보현보살,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7존으로 도상화한 가로 8.51m, 세로 8.7m 크기의 괘불이다. 호남지역에서 활동한 화승 천신스님의 주도로 1700년 제작됐다.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영산회상의 도상이 오종범음집에 의거해 의식을 위한 7존 형태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바탕재, 출초, 교반수, 상초, 채색, 배접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괘불이 완성된다. 각 과정 마다 온 정성을 다해야 한다. 바탕재에 쓰이는 삼베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말리는 과정과 삼베의 올을 죽이기 위한 다듬이질, 초본을 얻기 위한 출초 과정을 사진으로 담았다.
바탕재, 출초, 교반수, 상초, 채색, 배접의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괘불이 완성된다. 각 과정 마다 온 정성을 다해야 한다. 바탕재에 쓰이는 삼베의 불순물을 제거하고 말리는 과정과 삼베의 올을 죽이기 위한 다듬이질, 초본을 얻기 위한 출초 과정을 사진으로 담았다.

내소사 괘불 모사 불사는 지금까지 바탕재, 출초, 교반수가 마무리됐다. 가장 먼저 진행된 바탕재는 불화를 그리는 베를 마련하는 작업이다. 내소사 괘불은 26폭의 삼베를 붙였다. 24폭은 세로로 길게, 양끝의 2폭은 짧은 조각으로 가로로 이었다.

양선희 도감은 매우 과학적인 제작법이라고 설명했다. 힘의 균형을 맞추고 우는 현상을 막아주는 비법이 내소사 괘불 제작에 사용됐다. 바탕재는 삼베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과정과 올을 죽이는 다듬이질을 거쳐 이어붙이는 바느질까지의 작업이다.

바탕재를 제작하는 팀과 다르게 내소사 괘불 원본을 출초하는 팀도 동시에 작업에 나섰다. 출초는 똑같은 그림을 얻어내기 위한 본뜨기 작업이다. 괘불 원본과의 오차값을 최소화하기 위해 이번 모사 불사에는 사진 대신 대형 선박 건조에 사용되는 광대역 스캐너를 이용한 3D정밀스캔이 채택됐다.

렌즈를 거친 사진은 왜곡이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1 데이터를 확보해 조금의 오차도 만들지 않으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색감에 있어서도 최대한 동일한 값을 얻어내기 위한 절차를 거쳤다.

3개월여의 바탕재 제작을 거쳐 진행된 교반수는 아교와 백반을 혼합한 물을 바탕재에 입히는 작업이었다. 교반수를 거쳐야 바탕재가 물감을 잡아준다. 바탕재의 올 사이사이의 골을 메워 채색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과정이다. 양선희 도감은 교반수를 가로와 세로를 교차해 여섯 번 반복했다. 교반수까지 마친 바탕재에 비로소 불화를 그릴 수 있다. 

불화를 그리는 작업인 상초와 채색에 앞서 배접을 먼저 시작한 것은 내소사 괘불의 크기가 너무 커서 그림을 잡아주는 쟁틀이 자리잡을 공간이 없어서다. 쟁틀에 바탕재를 단단하게 묶어 앞면에 상초와 채색을 마친 뒤 그림을 공중에 띄운 채로 뒷면에 배접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은 것이다. 

옛 선조들은 불화와 괘불을 오래도록 보존하기 위한 제작기법을 제작공정에 세심하게 포함시켰다. 하나하나 뜯어보지 않고서는 발견할 수 없는 선조들의 지혜와 기술이 곳곳에 숨어 있다. 

상초와 채색은 7배접이 마무리되면 진행되는 작업이기 때문에 1월 중 진행된다. 상초는 최대한 같은 불화를 얻기 위한 가장 직접적인 작업이다. 바탕재에 먹선으로 초를 놓는 것이다. 선의 굵기와 강약, 먹의 농도를 맞춰야 한다. 심지어 원본과 같은 선을 얻기 위해 불모들이 호흡까지 맞추는 필법을 구사한다고 한다.   

양선희 도감은 내소사 괘불을 정밀 분석하며 놀라는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했다. 채색 역시 놀라움의 한 과정이었다. 평면처럼 보이지만 평면이 아니라 입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채색의 두께를 달리하고 맑고 투명하게 겹쳐서 채색이 이뤄졌다. 평면의 그림을 입체화시킨 것이다.

옛 불화에서 느낄 수 있는 깊이는 종교적 예술혼에서 비롯됐음을 깨달았다. 모사 불사를 주도하고 있는 양선희 도감은 원본을 제작한 화승 천신스님의 화현이 되겠다는 자세로 매일 현장에 선다. 원작자의 혼까지도 닮아야 한다.

그럼에도 과거와 같은 괘불일 수는 없다. 외형은 같을지라도 지금 시대의 기술과 기법이 가미됐으니 또다른 작품으로 불리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양선희 도감 역시 이를 잘 알고 있다. 천신스님의 원작이 지금의 문화재라면 모사로 탄생하는 작품은 미래의 문화재가 될 수 있도록 매순간 최선을 다할 뿐이다.

전주=박봉영 기자 bypark@ibulgyo.com

[불교신문3547호/2020년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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