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단편소설] 김영 ‘나미가 오지 않는 저녁’
[2020 불교신문 신춘문예 당선작/ 단편소설] 김영 ‘나미가 오지 않는 저녁’
  • 김영
  • 승인 2019.12.31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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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가 오지 않는 저녁

김영


까무룩 잠들었던 당신이 눈을 떴다. 형광등 불빛이 파편처럼 두 눈을 찔러댔다. 눈물인지 눈곱인지 끈적거리는 액체가 눈언저리에 고여 있었다. 당신은 눈을 다 비비고 나서야 의사가 눈을 비비지 말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육이오 참전용사협회 기증이라 쓰인 둥근 벽시계가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백내장 수술을 했는데도 눈앞이 뿌옇고 몽롱한 증상은 여전해서 아침인지 저녁인지 또 헷갈렸다.

요의를 느낀 당신이 주섬주섬 홑이불을 걷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변이 마려울 때마다 대문 옆 화장실까지 가는 게 여간 성가시지 않았는데, 가사도우미가 방안에 갖다 놓은 플라스틱 우유 통은 변기통으로 요긴하게 쓰였다. 마음과는 달리 손은 느리고 뻣뻣하기만 했다. 딴엔 주둥이를 바짝 들이댄 채 볼일을 본다고 보았지만, 동글납작한 마개가 거치적대는 바람에 그만 아랫도리가 젖어버렸다. 어쩔 도리 없이 또 속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삽화=손정은
삽화=손정은

“할아버지!”

초름하니 하얀 핫팬츠를 입은 이웃집 소녀, 나미가 벌컥,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내년에 중학생이 되는 나미는 골목 초입 원룸에 사는 조선족 가사도우미의 딸이다. 당신은 소녀가 젖은 팬티를 못 보게 슬그머니 뒷짐을 지고 등 뒤로 감추었다. 호기심 많은 소녀의 커다란 눈이 그걸 놓칠 리 없었다. 소녀가 앙증맞은 부채로 코를 막으며 그 자리에 오뚝 멈춰 섰다.

“저 바쁘단 말이에요. 빨리 방에 들어가서 누우세욧!”

특유의 억양이 묻어나는 소녀의 재촉에 당신은 수돗가에 놓인 세숫대야에다 팬티를 던져 넣고는 천천히 서두르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소녀는 손으로 연신 코를 감싸면서도 제집인 양 익숙한 걸음으로 당신을 앞질렀다.

“에어컨 좀 켜도 되죠?”

부채를 홑이불 위에 날리듯 던져놓은 소녀는 당신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리모컨의 전원을 눌렀다. 거실 창 위쪽에 달린 벽걸이 에어컨이 경쾌한 신호음과 동시에 냉기를 뿜어냈다. 소녀의 단발머리가 볼 옆으로 살짝 흩날렸다. 앞머리로 이마를 가린 앳된 얼굴과는 달리 소녀의 뒷모습과 전체적인 실루엣은 다 큰 처녀 같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소녀를 뒤따르던 당신이 숨을 고르며 보료 위에 누웠다. 후텁지근하던 실내가 환기라도 되는 듯 한결 정신이 맑아졌다. 곧 소녀의 손가락이 당신의 아래 눈꺼풀에 와 닿았다. 당신은 조건반사처럼 눈을 위로 치켜떴다. 소녀가 안약을 두어 방울 떨어뜨렸다. 안약은 당신의 두 눈 속에 정확하게 스며들었다. 소녀의 손놀림은 한 달 전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때보다 훨씬 부드럽고 능숙해졌다.

딱, 딱, 소리 내어 껌을 씹어대는 소녀는 두 번째 점안을 위해 잠시 기다리는 동안, 당신과 말을 섞지 않으려는 듯 곧바로 텔레비전을 켰다. 죽은 다이애나비의 둘째 아들 해리 왕자와 할리우드 여배우 메건 마클의 결혼식이 거행되었다는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소녀가 채널을 고정했다. 할리우드 혼혈 여배우 메건 마클은 해리 왕자보다 3살 연상에 이혼 경력이 있어, 둘의 만남은 처음부터 세간의 화제를 모았다. 눈을 감고 누워있는 당신의 눈앞에, 친정아버지 대신 시아버지인 찰스 왕세자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신부의 모습이 떠올랐다. 당신은 눈을 뜨고 있는 동안에는 거의 텔레비전을 켜두었으므로 웬만한 뉴스와 프로그램은 꿰고 있었다. 연변에서 온 가난한 소녀에게 그 특집프로는 다른 어떤 화면보다 화려하고 흥미로울 것이었다.

소녀는 당신이 헛기침을 몇 번이나 하고서야 다음 단계의 안약을 넣어주었다. 당신은 이국에서 온 여자아이가 날마다, 그것도 하루 세 차례나 붙어 앉아 그 앙증맞고 보드라운 엄지와 검지를 꼼지락거려 눈꺼풀을 열고 안약을 넣어주고 간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어쩌면 꿈을 꾸는 중인지도 몰랐다. 당신은 그 달콤한 꿈이 깨지 않기를 바라며, 소녀가 5분 후에 또 점안해줄 때까지 눈을 지그시 감았다.

“참, 할아버지, 이제 저 안 와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거든요.”

소녀가 세 번째 안약을 넣어주며 당신의 귓가에다 속삭였다. 당신이 한 번에 잘 떠지지 않는 눈을 몇 차례 껌뻑거렸다. 당신의 두 눈이 온전히 다 떠지기도 전에 소녀가 현관문을 밀고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텔레비전과 에어컨은 이미 꺼졌다. 방안은 삽시에 다시 적막에 들었다. 후텁지근한 기운도 되살아났다. 왜 당신의 아들은 다 늙어빠진 당신의 눈을 수술해주었을까. 하긴, 당장 죽는 것도 아닌데 눈앞은 침침하니 흐려서 살아있는 건지 꿈을 꾸는 건지 몽롱한 날이 이어져 죽겠다고 하소연한 것은 당신이었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당신의 아들이 내린 처사는 당연하고도 고마운 것이었다. 한동안 소녀의 방문에 익숙해져 있던 당신은 새삼 허전하고 서글퍼져 눈물마저 핑 돌았다.

갈증을 느낀 당신이 자개 문갑 위에 놓인 보리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입에 머금은 물에서 시큼털털하니 떫은맛이 났다. 당신이 토악질하며 삼킨 물을 뱉어냈다. 도우미가 언제 끓여 둔 물인지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그녀가 언제 왔다 갔는지조차 아리송했다. 빨래하고 식사를 챙겨주는 조선족 가사도우미는 주말과 한 달에 한두 번 임의로 쉬는 날도 있어 방문하는 날이 일정치 않았다. 어린 딸 대신 가끔 안약을 넣어주러 오기도 했기 때문에 더 헷갈렸다. 그러잖아도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은 날들이 이어졌다. 소녀에게 엄마가 언제 오느냐고 물어볼 걸 싶었다.

당신이 컵 속의 물을 버리고 냉장고의 물을 따라 조금씩 들이켰다. 차가운 물이 식도를 타고 내리면서 내장이 꿈틀거렸다. 허기를 느낀 당신이 냉장고에서 죽이 든 냄비를 꺼냈다. 당신은 매일 끼니를 챙겨 먹는 일이 무슨 의무처럼 느껴졌다.

어금니가 없는 당신은 매 식사때마다 밥 대신 죽을 먹었다. 틀니가 있었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먹는 것이, 아니 씹는 일이 귀찮았다. 도우미는 쌀과 쇠고기를 갈아 며칠 분량의 죽을 끓여 냄비째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당신은 반찬도 없이 식어 빠진 쇠고기 죽을 매번 죽지 않을 만큼 조금씩 덜어 먹었다. 죽을 먹을 때면 당신의 귀에는 어김없이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한쪽 눈이 없는 어미 고양이, 나비의 가느다란 목소리도 섞여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신은 도우미가 끓여준 쇠고기 죽을 고양이들과 나눠 먹곤 했다. 생전의 아내는 보일러실 더그매에 보금자리를 튼 길고양이 일가를 살뜰히 보살폈다. 임신한 어미에게 나비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고양이 전용 참치도 사다 먹였다. 난데없이 시작된 아내의 동물 사랑을 당신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외눈박이 나비의 처지를 떠올리며 눈감아 주었다. 갑자기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내는 잠시 정신이 돌아오자 나비의 안위부터 물었고, 유언처럼 끼니를 당부하고는 영영 먼 길을 떠나버렸다.

편수 냄비 속에는 차갑게 엉긴 죽이 달의 분화구처럼 패여 있었다. 당신이 물기 고인 구멍을 피해 숟가락을 꽂았다. 보리차 물을 죽에 붓고 약한 불에 뭉근하니 한소끔 끓여내면 먹기가 한층 수월할 거라고 도우미가 몇 차례 일러주었지만, 당신은 부엌으로 가 가스 불을 켜는 것부터가 번거로웠다. 변을 자주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먹는 양을 줄여야 했고, 양을 줄이기 위해서는 음식 맛이 없는 편이 나았다. 식은 죽이 맛있을 리 없었다. 당신의 변은 고양이의 그것처럼 크기도 양도 줄어들었다.

수유 때문인지 나비는 한동안 야위어 갔다. 젖살이 통통하게 오른 새끼들은 노르스름한 털에 윤기가 흘렀다. 새끼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당신은 녀석들의 변도 치워야 했다. 예의도 예외도 없는 철부지 녀석들은 베란다에다 김이 나는 똥을 여기저기 싸질러놓고 장난을 쳐댔다.

도우미는 온 집안에 배어든 지독한 냄새를 당신이 속옷에다 똥을 지려놓고 숨기는 줄 알고 노골적으로 의심했다. 아무리 걷기가 불편하다기로서니 화장실을 코앞에 두고 자기 옷에다 똥을 싸질러 놓는 노인네가 있을까. 턱도 없는 일을 가정하고 기정사실화시켜버린 도우미를 당신은 속으로만 미워할 뿐이었다. 도우미는 곳곳에 방향제를 사다 놓고 락스를 뿌려 청소했다. 자주 오줌을 지리는 당신은 혹 당신에게서 나는 냄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도우미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비굴해지는 걸 느꼈다. 늙은 것도 혼자 사는 것도 서러운데, 그런 기막힌 누명까지 쓰다니.

집안에서 나는 냄새의 진원지가 녀석들임을 뒤늦게 알아차린 당신은, 억울하고 서운한 감정을 나비 일가를 내쫓아버리는 것으로 풀었다. 도우미를 도와 보일러실 천장을 나무토막과 헝겊으로 막아버렸고,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녀석들에게 두 번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 음식물을 일절 바깥에 내놓지 않았다. 아내가 떠나고 난 뒤 집안엔 먹거리가 굴러다닐 여지도 없었지만, 그나마 머리맡에 두던 빵조각이나 두유도 냉장고에 다 집어넣어 버렸다.

졸지에 집을 잃어버린 나비는 힘없이 울며 아내를 부르는 듯 화단 앞에 어슬렁거렸다. 당신은 자신을 누명 씌운 나비 새끼들을 노려보며 다른 데로 가라고 훠어이, 손을 내저었다. 죽도 내어주지 않았다. 시위하듯 녀석들의 울음소리가 단체로 들려왔다. 당신은 귀를 막고 모른 척했다. 아내의 관심과 사랑을 흔전만전 받았던 나비 일가가 번번이 허탕을 치면서 어느 때부턴가 보이지 않았다. 베란다가 더럽혀지는 일도 없었다. 녀석들은 몸집이 실하고 모지락스러운 도우미는 물론, 더는 기댈 곳도 기대할 것도 없는 당신을 피해 멀리 가버린 것이 분명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주쳐 가족 같았던 나비 일가를 당신이 내쫓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나비 일가가 당신을 버리고 떠나버렸는지도 몰랐다. 차갑게 굳어버린 죽을 몇 숟갈 더 떠먹고 나니 한여름인데도 온몸에 냉기가 돌았다. 귀에는 이명처럼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다시 안방으로 건너와서 보료 위에 올라앉았다. 한쪽으로 몰려있던 이불자락 사이에 소녀가 흘리고 간 부채가 눈에 띄었다. 반달 모양으로 활짝 펼쳐진 푸른 부채 속엔 크기가 다른 하얀 나비 두 마리가 하얀 꽃밭 위를 날았다. 마치 소녀 모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새로운 세상을 찾아 국경을 건너고 바다를 건너, 어쩌면 죽음까지도 각오했을 이방인들. 풍요롭고 기름진 삶을 갈구하는 그들의 바람처럼 부채의 선면은 반지르르 윤기가 흘렀다. 보랏빛 선추가 달린 앙증맞은 비단부채는 손때가 묻었지만 단아하고 격조가 있어 무언가 사연을 지닌 물건 같았다. 당신은 한 뼘 길이의 그 합죽선을 하릴없이 접었다 펼쳤다 반복해보았다. 소녀가 금방이라도 부채를 찾으러 올 것 같았다. 당신은 부채를 가지런히 접어 보료 밑에 숨겨두었다.

자리에 누운 당신에게 졸음이 몰려왔다. 식곤증은 식사만큼이나 규칙적인 습관이었다. 까무룩 잠이 든 당신이 꿈을 꾸었다. 당신은 같은 꿈을 자주 꾸었다. 당신의 바람처럼 당신이 죽는 꿈이었다. 죽은 당신은 택배 상자에 구깃구깃 담겨 쓰레기인 양 대문 앞에 버려졌다. 핏물이 배어난 셀로판 상자 밑으로 추깃물이 흘러나와 대문 아래 계단과 골목길을 흥건하게 적셨다. 당신은 당신의 주검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잠에서 깨어났다.

태어나는 것과 죽는 것을 선택할 권리가 없는 인간에게 신은 잠을 주고 꿈이라도 실컷 꾸게 하는지 몰랐다. 잠을 자다 죽는 것이 소원인 당신은 아무리 잠을 자도 죽지 않았다. 꿈에서 깨어난 당신은 언제나처럼 또 살아났다. 꿈에 죽으면 오래 산다는 속설을 굳게 믿고 있었기에, 당신은 쉽사리 죽을 것 같지 않아 불안했다. 그러나 언젠간 죽을 것이므로 신의 가호로 자다가 죽고 싶었다. 이왕이면 다가오는 아내의 기일과 맞추어 주셨으면 싶었다.

당신이 팬티를 빨기 위해 다시 마당으로 나갔다. 도우미는 속옷도 세탁기를 돌리면 된다고 빨래바구니에 그냥 담아두라고 했지만, 러닝셔츠는 몰라도 팬티를, 더구나 오줌이 묻은 팬티를 어떻게 그냥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인가. 수돗물을 틀어놓고 지린내 나는 팬티를 주무르느라 쪼그리고 앉아있자니 서글픈 생각이 온몸에 스멀스멀 돋아났다. 당신은 비누 거품이 가득한 대야의 물을 쏟아냈다. 수챗구멍으로 흘러가던 구정물이 당신의 슬리퍼 앞부분을 적셨다. 당신의 발가락이 다 젖었다. 속수무책 흐르는 세월에 젖어버린 생은 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 돌아본들 돌아갈 수 없는 생이 여기까지 흘러왔다. 당신은 물기와 함께 처연한 느낌도 꼭 비틀어 짜서 빨랫줄에 펴 널었다. 한나절 햇살에 잘 마른빨래들은 빳빳하니 풀을 먹인 듯 힘이 들어있었다. 흐늘흐늘 늘어진 늙고 추한 육신은 한여름 땡볕에 아무리 잘 말린다 해도, 다시는 팽팽해지고 젊어질 수가 없었다. 인제 그만 아내처럼 이승의 옷을 벗어버리고 싶었다.

아내는 해마다 여름이면 풀을 빳빳하게 먹인 모시 저고리를 다림질해 입혀 주곤 했다. 겉옷뿐 아니라 속옷에도 풀을 먹여서 무더운 여름날을 시원하게 지낼 수 있게 해주었다. 부드러우면서도 각이 선 옷감이 살갗에 닿을 때마다 저절로 등이 펴졌다. 육이오 때 오른쪽 엄지발가락을 다쳐 걸음걸이가 시원찮았지만, 그런대로 자세가 반듯한 것은 그런 아내 덕분이었다. 당신이 빨래집게를 당겨와 팬티 중앙을 꼭 집었다.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던 햇살 한 자락이 당신의 눈을 찔렀다. 눈앞에 지렁이들이 꿈틀거렸다. 눈을 껌뻑일 때마다 지렁이 개수가 늘어났다. 눈 아지랑이도 아른거리며 난무했다. 오래된 비문증 또한 당신의 시선을 어지럽히며 비현실적인 느낌을 부추기는 요소 중 하나였다.

장독대 그늘을 찾은 당신이 담장에 세워 둔 하얀 스티로폼 방석을 가져다 앉았다. 언젠가 횟감을 담아 왔던 부직포 뚜껑에 당신의 아내가 천을 씌워 재활용한 것이다. 임신한 나비를 위한 침대였는데 슬그머니 당신의 의자가 되었다. 매일 앉다시피 한 그것은 적당히 딱딱해져서 당신 몸의 일부인 듯 딱 맞았다. 아내가 살아있을 때는 지하철을 타고 한 달에 한 번 참전용사 모임에 나가기도 했는데, 지금은 작은 너럭바위 같은 그 방석에 앉아 나비가 돌아다니던 화단을 바라보거나, 열릴 듯 닫힌 대문을 쳐다보며 도우미를 기다리는 것이 당신의 유일한 바깥 활동이었다.

“실례합니다!”

대문 밖에서 중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물가물 졸음이 오던 당신은 혹 신 여사가 왔는가 싶어 눈을 번쩍 떴다. 당신이 쪽문 손잡이를 힘껏 밀어젖혔다. 대문 층계 맨 아랫단에 양산을 접은 낯선 여인 둘이 미소를 머금고 서 있었다. 당신과 눈이 마주친 그들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두 여인은 곧장 층계를 올라와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얌전한 투피스 차림의 두 여인은 천박하게 화려한 신 여사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서그러워 보이는 여인들은 스스럼없이 당신에게 다가와 당신의 야윈 손을 붙잡았다. 당신의 팔이 맥없이 흔들렸다.

“어르신, 저희들 물 한 잔만 주시겠어요?”

당신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여인들을 노려보았다. 이마의 땀을 손수건으로 훔치던 여인들이 가방 속에서 광고지를 꺼내 당신에게 내밀었다.

“저희는 굶주리는 북한과 아프리카의 어린이들을 돕는 일을 하고 있어요.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는 귀한 일이지요. 어르신, 편안한 마음으로 저희 얘기 한 번 들어보실래요?”

당신이 엉겁결에 받아 든 홍보물에는 수줍게 미소 짓는 다이애나비와 낯익은 중견 탤런트 부부의 흔흔한 미소가 컬러로 인쇄되어 있었다. 후원한다는 단체도 텔레비전에서 자주 들어본 이름이었다. 당신의 시큰둥하니 느린 반응에 여인들은 더욱 상냥하게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후원자 명단 작성을 위해 주민등록 번호를 좀 알려 주십사 하는가 싶더니, 저어하시다면 폰 번호나 집 전화번호라도 알려달라며 재촉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후원하기만 하면 곧장 천국에 이름이라도 올릴 듯 볼펜을 들고 서둘렀다. 당신은 아내가 전도지를 내밀던 사람들을 대하던 것이 생각났다. 불청객을 내치려면 아무 대답도 하지 말아야 했다. 잘 훈련된 사람들과 말로 맞서는 것이 계란으로 바위 치기임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신은 말없이 광고지를 돌려주고 물도 주지 않고 대꾸도 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이 제풀에 꺾여 스스로 걸어 나가게 했다. 여인들은 생각보다 막무가내가 아니었다. 그들은 순순히 자발적으로 대문을 나섰다.

막다른 골목을 돌아나가는 여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당신은, 문득 그들이 당신을 버려두고 떠나버리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당신이 그들을 거부한 게 아니라 그들이 당신을 거부한 것 같았다. 그들도 나비 일가처럼 당신을 버려두고 떠나는 것 같았다. 무더위에 얼마나 걸었던지 이마의 땀을 연신 닦아내던 그들에게 물 한 잔이라도 대접할 수 있지 않았나, 뒤늦게 자책하는 마음이 일었다. 이러나저러나 심심하던 참이었는데 아무 얘기나마 들어볼걸, 새삼 후회가 되었다. 공연히 울적해진 당신이 전화기 앞으로 다가갔다.

“아, 아버지, 웨, 웬일이세요?”

반가운 건지 귀찮은 건지, 더듬거리기까지 하는 아들 선재의 목소리가 스피커폰으로 흘러나왔다.

“몸은 괜찮으시죠? 시간 나면 한 번 들를게요. 수업이 있어 이만 끊습니다.”

원래 말이 빠른 선재가 제 할 말만 내뱉고는 전화를 끊었다. 당신은 진즉에 선재에게 알아보고 싶은 것이 하나 있었다. 워낙 짧은 통화라 그 말은 꺼내지도 못했지만, 선재의 말투로 보아 당신이 염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은 듯했다.

지난 명절에 큰아들 선재는 슬그머니 요양병원 얘기를 꺼냈다. 도우미는 상냥하고 재바른 편이었지만 당신의 행동거지를 아들에게 일일이 일러바치는 눈치였다. 요양병원으로 가지 않으려면 도우미에게 더는 허점을 보이지 않는 게 좋았다. 한 달에 한두 번 전화할까 말까 하는 선재에게 안부 겸 전화를 넣어 도우미의 상태를 간접적으로나마 알아보고 싶었다. 직접 물어보진 못했어도 선재의 무심한 태도로 보아 도우미는 신 여사 건을 선재에게 고자질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몇 달 전 안과병원 대기실에서 알게 된 자칭 신데렐라, 신 여사는 당신보다 열두 살이 어린 띠동갑이었다. 처음 볼 때부터 화려한 의상과 짙은 화장이 눈에 띄더니, 싹싹하고 언변까지 좋아서 당신뿐 아니라 주변에 앉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신 여사는 초면인 당신에게도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당신이 애써 무덤덤한 표정으로 대답을 하는 중에 농담 삼아 집 주소를 알려주었는데, 하루는 신 여사가 정말 소주를 사 들고 찾아왔다. 신 여사는 혼자 사는 당신을 위로한답시고 우스갯소리를 해댔고, 내 나이가 어때서, 라는 유행가를 즉석에서 개사해 부르며 흥을 돋웠다. 신 여사는 준비해온 포도와 땅콩을 안주로 소주 두 병을 거뜬히 비워냈다. 기분 좋게 취한 신 여사는 자정이 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도 신 여사는 가끔 당신의 집을 방문했다. 그때마다 당신은 택시비라며 지폐 몇 장을 쥐여주곤 했다.

어느 날, 주량을 초과한 신 여사는 술주정하느라 자정을 훌쩍 넘겼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다음 날 해가 중천에 뜨도록 내쳐 자다가 속옷 차림으로 도우미와 맞닥뜨렸을 때 세 사람은 제각각 얼마나 놀랐던지. 신 여사는 당신의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도우미가 오지 않는 날이라고 착각한 당신은, 도우미는 물론 신 여사 보기가 민망하기 이를 데 없었다. 도우미가 자리를 피해 부엌으로 가 일을 하는 동안, 신 여사는 부리나케 옷을 챙겨 입고 인사도 없이 가버렸다. 도우미는 신 여사의 존재를 무시하는 건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당신은 그런 도우미가 더욱 신경이 쓰였다. 평생을 교직에 몸담았다 정년퇴직한 점잖은 어른이라는 이미지에 손상이 간 건 분명할 터였다. 당신은 창피함을 무릅쓰고 금일봉이 든 봉투를 도우미에게 내밀며 아들 선재에게는 비밀로 해 달라고 당부했다.

신 여사는 그 날 이후 당신의 집을 방문하지 않았다. 마침 당신이 눈 수술을 했고, 도우미의 어린 딸이 매일 안약을 넣어주러 오는 바람에 지금은 신 여사와의 통화도 뜸해진 상태였다. 당신은 내친김에 신 여사에게도 전화를 넣어보았다. 신 여사는 오매불망, 당신의 호출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랐다. 전화를 받은 신 여사는 언제나처럼 소주병을 안고 득달같이 달려올 것이다. 장독대에는 아직 버리지 못한 빈 소주병들이 항아리 하나에 가득 담겨 있었다. 당신은 검은 비닐봉지 속에 숨겨놓은 그것을 아들과 도우미 몰래 갖다 버려야 하는 숙제를 안고 있었다.

신 여사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신 여사에게 무슨 변고라도 생긴 걸까. 비록 술고래에 천박한 구석도 없지 않았지만, 혼자 사는 당신으로서는 쾌활한 신 여사의 방문이 싫지 않았다. 팔순이 넘은 동료 교사들은 대부분 죽어버린 데다 이웃이나 친척은 물론, 유일한 의지처인 큰아들 선재도 조선족 가사도우미를 구해주고는 거의 연락을 끊다시피 살고 있었다.

형편이 딱하긴 선재도 마찬가지였다. 오십 중반에 들어선 선재는 아내도 딸도 없이 하나뿐인 아들을 군대에 보내놓고 뜬금없이 영어 학원을 운영하며 저 혼자 밥을 해 먹는 눈치였다. 손자가 입대하고 난 뒤 유난히 탈영과 총기 난사 사건이 잦았다. 군대에서의 사건 사고가 보도될 때마다 당신은 손자의 안위가 궁금해 손가락이 근질거렸다. 참다못한 당신이 전화했을 때, 의대 출신 군의관 손자가 뭐가 걱정이냐며 선재는 당신의 염려와 조바심을 일축해버렸다. 다 늦게 홀아비 신세가 된 부자지간은 서로 연락을 않는 것이 덜 껄끄럽고 더 속 편할지도 몰랐다.

반반한 외모에 결혼 전부터 속을 끓이던 큰며느리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자 기다렸다는 듯 이혼을 해버렸다. 선재 부부가 별거 중이었다는 것을 아내에게 들어 이미 알고 있었던 터라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적잖이 서운하고 충격을 받은 것이 사실이었다. 며느리는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거나 설득하는 일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장례식 내내 보여줌으로써 어쭙잖은 미련이나마 남지 않게 도와주었다. 선재가 잘 다니던 대기업을 조기퇴직하고 나온 것도 원만하지 못한 부부관계에서 비롯되었을 거라는 추측을 어렵잖게 해볼 수 있었다.

아내는 며느리를 들이면 딸처럼 대할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지만, 큰며느리는 처음부터 거리를 두며 데면데면 서먹하게 굴었고, 성악을 전공한 둘째 며느리는 결혼하자마자 선호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버렸다. 아내는 며느리들의 얼굴을 보기는커녕 전화조차 제대로 해 볼 수 없었다. 선호부부는 여태 공부를 하는지 어쩌는지 아직 귀국하지 않고 있었다. 버킹엄궁 앞 파릇한 잔디밭에서 아들 부부가 찍어 보낸 신혼 사진 하나로 버티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갔다. 금의환향은커녕, 아이도 낳지 않고 그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소식이 희소식이겠거니 체념한 지 오래였다. 아내 장례식 때에도 며느리는 공연 일정을 취소할 수 없다며 참석하지 않았다. 뒤늦게 혼자 나타난 선호는 제 와이프가 거기서 또 이탈리아로 유학을 갔다고 했다. 아들이 혹 며느리와 헤어졌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모양새였다. 선호는 워낙에 밝고 활달한 성격이어서 차라리 다시 결혼한다는 소식을 기다리는 게 빠를 것 같았다.

실은 선호 아래로 아들이 하나 더 있었다. 막내 선우였다. 선우는 고등학교 3학년 때 가출하다시피 집을 나가 광주에 있는 한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그해 오월, 전시도 아닌데 총탄에 맞아 죽었다. 아직도 선우 일은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당신은 그 꿈같은 현실을 도무지 인정할 수 없었다. 아버지, 하며 현관문을 들어설 것 같은 가망 없는 희망은 오랫동안 당신의 가슴 깊은 곳에서 너덜거렸다. 당신의 꿈속에는 여전히 까까머리 고등학생 선우가 까만 교복을 입은 채 살고 있었다.

어쩌면 꿈이 현실이고 현실이 꿈일는지 몰랐다. 꿈과 현실이 되풀이되는 나날 속에서 현실은 당신이 꾸는 꿈이고, 꿈은 당신의 현실일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꿈이든 현실이든 지금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하면 사는 일이 조금 수월해졌다. 현실은 꿈이므로 고민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어떠한 악몽이라도 꿈만 깨면 되니까. 그러나 그렇게 마음을 먹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간신히 마음먹었다 해도 오래가지 않았다. 그 상태를 유지하려면 계속 그런 마음을 먹어야 했다. 마음은 밥처럼 자꾸, 또 새롭게 먹어주어야 했다. 아니, 밥보다 더 자주 매 순간 먹어주어야 했다. 이 땅에 살아있는 한 하늘나라로 옮겨가지 않는 한, 되풀이될 것이었다.

당신은 착하고 공부 잘하는 두 아들을 소위, 엘리트로 키워내며 그 세월을 용케 버텨왔다. 그리 살가운 부부는 아니었지만, 아내와의 사별은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삶의 이유를 소멸시켰다. 혼자 사는 일은 편한 듯 불편했다. 안통에 침침하고 눈물 고이는 눈 때문에 글 한 줄 마음대로 읽을 수도 없으니, 하고 싶은 일도 해야 할 일도 없었다. 당신은 그저 숨을 쉬고 살아있을 뿐이었다. 죽지 못해 살고 있다는 말이 딱 맞았다. 살아있는 한 삶이 죽음이고 죽음이 삶인 것 같은 혼돈의 시간이 계속될 것 같았다. 사람의 몸에 살면서 죽음을 재촉한다는 삼시충이 당신의 몸에만 없는 게 아닐까. 아직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 걸까. 여태 하지 못한 당신의 숙제는 무엇일까.

그 알 수 없는 숙제를 하지 못했으니, 당신은 아주 오래 살 것 같았다. 인제 그만 이승의 사슬을 끊고 싶었다. 당신을 둘러싼 운명인지 숙명인지에서 벗어나 훨훨 자유롭게 떠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평생을 학생들에게 윤리 도덕을 가르쳤던 선생이 스스로 죽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막막한 세월에, 흘러가는 시간의 물살에 몸을 맡긴 채 나날이 조금씩 죽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전장 같은 이 세계를 단번에 탈출한 아내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이상구 씨, 등기 왔습니다! 도장 좀 주세요.”

가방을 멘 집배원이 목청껏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현관으로 들어섰다. 가끔 우편물을 전해주는 그는 여느 때처럼 꾸벅 인사하고는 마루에 걸터앉았다. 그가 도장 대신 당신의 지장을 찍고 두툼한 봉투를 건네주었다. 보내는 사람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세종로 1번지 청와대,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당신이 눈을 부릅뜨고 수신인란에 또박또박 적힌 당신의 이름을 재차 확인해보았다. 이, 상, 구, 당신의 이름이 틀림없었다. 순간, 꿈인지 생시인지 당신은 벅차오르는 감동을 삭이느라 몇 차례 헛기침을 뱉어냈다.

흥분한 당신이 가위를 찾아 떨리는 손으로 봉투의 입구를 잘랐다. 봉투 안에 봉황이 그려진 하얀 봉투가 들어있었다. 봉투 속엔 검은 벨벳 주머니가, 주머니 속엔 노랗고 큼직한 금빛도 찬란한 메달이 하나 들어있었다. 당신의 손으로 뽑은 대통령이 당신에게 보낸 것이었다. 당신이 돋보기를 끼고 메달에 새겨진 글자를 한자씩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육이오 참전용사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노구를 위로한다는 문구가 테두리를 따라 동그랗게 원을 이루고 있었다. 당신이 두 손으로 메달을 높이 치켜들었다. 메달의 크기로 보나 무게로 보나 진짜 금은 아니어도, 나라의 최고 통치자로부터 제법 피부에 와 닿는 예우를 받는 느낌이었다. 불끈, 자부심에 어깨가 으쓱해진 당신이 목에 메달을 걸고 거울 앞에 다가섰다. 당신은 벽에 걸린 아내의 칠순기념 사진을 올려다보며 보고하듯 경례도 올렸다. 누런 안색의 마르고 낯선 노인이 거울 속에서 당신을 빤히 쳐다보았다. 당신은 그만 메달을 벗어 아내의 사진 액자 위에 포개 걸어놓았다.

당신은 화면으로나마 대통령에게 인사를 할까 하여 리모컨을 찾았다. 텔레비전을 켜자마자 70대 노파가 숨진 지 5년 만에 백골로 발견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친구도 없었던 노파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데, 유일한 혈육인 이복동생은 시신 수습을 거부했다는 내용이었다. 목장갑을 끼고 겨울옷을 아홉 겹이나 껴입은 채, 홀로 좁은 방에서 죽어가는 동안 아무도 노파를 찾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뉴스 전용 채널에서는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이 이어졌다. 생때같은 고등학생들의 영정사진과 합동분향소 장면이 지나갔다. 애끊는 부모들의 절규가 화면에 가득했다. 며칠 전, 사설 해병대캠프에 갔던 명문고 아이들이 어른들의 부주의로 9명이나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원인과 구조 상황들이 속보 형태로 연일 보도되었고, 당신은 그 뉴스를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고 갑갑해져 요 며칠 텔레비전을 잘 켜지 않았다. 몇 해 전에도 온 나라를 충격과 슬픔에 빠트렸던 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던가. 역사는 되풀이된다더니 비슷한 사고도 해마다 되풀이되는가 싶었다. 다 늙은 목숨이나 데려가시지, 당신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텔레비전을 꺼버리고 마당으로 나왔다.

아내가 가꾸어놓은 꽃밭에 고춧잎이 무성하게 자랐다. 빈 화단의 기름진 흙을 본 도우미가 고추 모종을 사다 심었고, 소일삼아 당신이 물을 준 결과였다. 크고 싱싱한 풋고추들이 이파리 사이로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내년에도 고추밭을 볼 수 있을까. 그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그럴 수 있을까. 햇볕이 내리쬐는 화단 주위로 파리 한 마리가 날아다녔다. 통통한 똥파리는 당신 앞으로 더욱 다가와 보란 듯 어지러이 날았다. 당신은 장독대에 놓인 파리채를 찾아 파리를 내리쳤다. 똥파리는 당신을 놀리듯 요리조리 날아올랐다. 무성한 고춧잎 사이로 파리가 몸을 숨겼다. 당신을 따돌리며 힘이 넘치는 똥파리는 영악하기까지 했다. 파리 한 마리를 잡으려다 고춧잎을 다 상하게 할지 몰랐다.

당신은 파리채를 힘없이 내려놓았다. 어느새 파리 한 마리조차 잡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아내처럼 단박에 갈 수 있다면, 그래도 된다면 그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타고난 명줄은 어찌할 수가 없는가 보았다. 당신은 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에서도 살아 돌아온 몸이었다. 누구보다 질기고 징한, 귀하디귀한 생명의 소유자였다.

그해 여름, 당신은 농민 고등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중 단체로 징집되었다. 교복을 입은 채였다. 책가방과 교복을 전달받은 홀어머니는 놀란 가슴을 진정할 틈도 없이 소를 팔고 논을 팔았을 것이다. 장부 같았던 어머니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급전을 만들어 당신을 수소문해 찾아냈고 꿈처럼 면회를 왔다. 솟값은 당신의 목숨값이 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당신은 결국 살아 돌아왔다. 전방으로 배치된 친구들은 학도병으로 총알받이가 되어 대부분 전사하고 말았다.

당신의 코앞에서 배추흰나비 두 마리가 보란 듯이 춤을 추며 팔랑거렸다. 원무를 그리던 나비들은 천천히 화단을 넘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날아갔다. 당신의 시선이 허공의 나비를 따라가다 어느 순간 놓쳐버렸다. 무료해진 당신이 고추를 하나둘 따기 시작했다. 도우미를 위한 싱싱한 고추 한 바가지를 옆에 두고 당신이 스티로폼 방석에 풀썩, 주저앉았다. 숨이 찬 당신이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지! 부채 찾으러 왔어요.”

소녀가 여느 때처럼 껌을 씹으며 대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소녀는 주저하는 기색 없이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거침없이 집 안으로 들어간 소녀가 금세 바깥으로 튀어나왔다. 소녀의 손에 푸른 부채가 들려있었다. 따로 일러주지 않았는데도 소녀는 당신이 보료 밑에 감춰둔 부채를 순식간에 찾아 나왔다. 나미는 한 마리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나타났다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당신의 눈앞에는 희미하니 소녀의 잔상만이 남아 어른거렸다. 그제야 당신은 어어, 쉰 소리를 내며 대꾸했다.

무슨 신호처럼 말매미들이 울기 시작했다. 무더위를 더욱 심화시키는 말매미 소리가 방충망 곳곳을 찔러댔다. 좀처럼 더위를 느끼지 못하던 당신의 이마에도 땀이 맺혔다. 갈증이 난 당신이 냉장고의 물을 꺼내 마셨다. 물을 마시고 난 당신이 쇠고기 죽을 덜어 먹었다. 조건반사처럼 당신의 귀에 또 나비의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환청인 듯 실제인 듯 당신의 귀에는 일정하게 자꾸 들려오는 데, 아무리 살펴봐도 나비 일가는 보이지 않았다. 당신은 또 잠이 들었다. 잠든 당신이 꿈을 꾸었다. 여지없이 당신이 죽는 꿈이었다.

요의를 느낀 당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볼일을 보았다. 당신의 머리맡에 고여 있는 강, 이 고요한 강을 버리고 그 머나먼 요단강에 가 닿으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언제나처럼 아랫도리가 젖었다. 당신은 속옷을 갈아입는 대신 리모컨을 찾아 텔레비전을 켰다. 뉴스가 흘러나왔다. 사건 사고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었다. 새로운 사건 사고가 이전의 사건 사고를 덮는 식이었다. 어제가 흘러갔고 오늘이 흘러가고 또 하루가 흘러갈 것이었다. 당신이 무심코 눈을 비볐다. 눈을 자꾸 비비면 재수술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주의를 당부하던 선재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이 멈칫, 손을 멈추고 두 손을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마른장마를 볼모로 더위가 더욱 기승을 부렸다. 세상에 남아있는 계절은 여름밖에 없다는 듯 무더운 날이 계속되었다. 환장할 더위였다. 생에 이렇게 더운 여름이 있었던가. 낮은 하늘이 아슴푸레하니 흐린 기운을 띠고 있어 초저녁인지 아침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둥근 벽시계가 또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집안의 불을 모두 끄고 자면 꿈속에서 길을 잃는다는 어릴 적 어머니의 말을 믿어서라기보다는, 아내가 죽은 뒤 홀로 맞는 어둠이 싫어 밤낮없이 불을 켜두는 당신에게, 숫자 6은 아침인지 저녁인지 가장 헷갈리고 애매한 시간이었다. 굳이 밤낮을 구분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 눈을 뜨면 낮이요, 감으면 밤인 셈이었다. 인적 없는 집은 적막강산이었다. 고요와 적요, 침묵이 싫은 당신이 또 텔레비전을 켰다. 녹화 테이프를 켜둔 것처럼 엇비슷한 사건과 사고가 보도되었다.

낮 최고 기온이 40도를 넘었다고 했다. 북태평양 고기압이 예년보다 오래 정체하면서 밤 기온도 27도를 넘나드는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열대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죽겠다며 아우성을 쳐댔지만, 소나기가 내리듯 당신에게는 잠이 쏟아졌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괭이잠과 토막잠, 밤낮없이 꾸는 꿈 때문에 시간의 경계가 허물어져 현실이 꿈같고 꿈이 현실 같았다. 죽은 듯 살아있는 시간은 하릴없이 되풀이되었다. 이미 죽은 게 아닐까, 오래전에 죽었지만 살아있다고 있다고 착각하는 건 아닐까.

갈증을 느낀 당신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을 마셨다. 허기를 느낀 당신이 냉장고의 죽을 꺼내먹었다. 죽을 먹으면 먹을수록 허기가 더해졌다. 냄비의 죽을 다 먹었는데도 허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독한 허기는 당신이 살아있는 한 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당신의 귀에 이명처럼 또 나비 일가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 단편소설 당선소감 / 김영

“함께 한 문우들과 기쁨 나눌 것

김영

아버지, 가시나무가 이렇게 많은 산은 처음 봐요. 저 숲을 뚫고 어떻게 덤프트럭이 달려나갈 수 있죠. 길바닥 가득 흙이 쏟아져 내리는 걸 보고도 어찌 아무 말씀도 안 하세요.

하루에 세 번 당신에게 안약을 넣어주었던 이웃집 소녀 나미의 모습을 떠올려봅니다. 북향집 뒤뜰 후미진 보일러실 더그매는 지금도 따뜻할까요. 애꾸 눈 나비의 후손들은 잘 자라고 있을까요. 그 많던 화초들이 내뿜던 향기는 어디로 스며들었을까요.

꿈결인 듯 당선 전화를 받았습니다. 인자 나는 갈란다, 너거 엄마한테로, 하시던 당신의 마지막 음성이 오늘따라 더욱 생생하게 들려옵니다. 텅 빈 이층집에서 삼 년을 홀로 지내신 당신, 이제 그곳에서 두 분이 나란히 주무시겠죠? 오늘은 이 외투를 벗어놓고 저도 잠시 누울게요.

제 일처럼 기뻐하며 함께 눈물 흘려준, 오래도록 함께했고 앞으로도 함께 할 문우들과 이 기쁨을 나눕니다. 등불이 되어 주시고, 좋은 말씀으로 이끌어주시는 선생님께 존경과 감사의 인사 올립니다. 막무가내로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아들과 남편, 고맙고 사랑합니다. 은혜로운 계절에 기쁜 소식 전해주신 심사위원님과 불교신문 관계자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 단편소설 부문 심사평 / 한승원 소설가

“금년 응모작, 어느 해보다 질 높아”

한승원

살아 있다는 것, 살아 허기가 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가 써내는 한 편의 소설은 독자 앞에 제시하는 하나의 커다란 비유 한 덩이(손가락질)인 것이고, 그 비유를 통해 달에 대하여 묻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구경의 삶, 실존에 대한 슬픈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금년 응모작품들은 여느 해보다 질이 높다. 나는 <그 집의 마지막 순간> <다가오는 것들> <누나와 학> <라망(羅網)> <은빛 달> <너를 지키는 이유> <나미가 오지 않는 저녁>등 7편을 본심에 올리고 깊이 읽었다. 이 작품들은 다 문장이 아름답고 밀도가 짙고 나름대로의 삶의 무게를 싣고 있다.

나는 이들의 장점만 찾아 즐기며 읽었다. 이들 중 어느 것을 밀어도 당선작으로 손색이 없겠다 싶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경우 나는 손가락질의 밀도와 짜임새와 달을 제시하는 솜씨를 기준으로 가릴 수밖에는 없었다.

<은빛 달>은 삶의 향기가 무엇인지 아는 작품이다. 여행 중 강도를 만나 속속들이 털리고 나서 만나는 달을 보는 시선은 진신 사리를 보는 듯 향기롭다. <너를 지키는 이유>는 군더더기가 없고, 허위와 참 삶이 어떤 것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데, 견고한 문장과 사유가 밑받침해주고, 밀도가 짙어 숨을 막히게 한다. 단편소설의 촌철살인 같은 맛을 느끼게 한다.

<나미가 오지 않는 저녁>은 인간의 절대고독과 실존을 형상화하고 있다. 시들어져 가는 것과 싱싱하게 살아 있는 것들을 대비시키는 솜씨가 가상하다.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이고 살아 허기진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극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다만 살아 있되, 왜 살아 있어야 하는가 하는 희망의 빛을 작품 속에 심을 줄 알았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안타깝다.

<너를 지키는 이유>와 <나미가 오지 않는 저녁>은 상대적이다. 앞의 것이 여고생의 이야기라면 뒤의 것은 죽음을 앞둔 노인의 이야기이다. 둘 다 만만치 않은 실력인데, 나는 둘을 다 선택할 수 없는 것을 슬퍼하며 뒤의 작품 <나미가…>에 기회를 드리기로 했다. 당선을 축하한다.

[불교신문3547호/2020년1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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